<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1979년 6월,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복합적 작업에 착수한다. 살해당한 세 친구들을 통해 미국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메드가 에버스, 마틴 루서 킹, 맬컴 엑스. 30페이지밖에 쓰지 못한 이 글의 제목은 <리멤버 디스 하우스>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복합적 작업’(complex endeavor)이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에는 볼드윈이 남긴 미완의 글에 대한 라울 펙 감독 자신의 해석과 평가가 담겨 있는데, 그것은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라는 영화에도 잘 어울리는 말이다. 라울 펙은 볼드윈의 글에서 어떤 복합성을 감지했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그 풍부한 뉘앙스를 한편의 영화에 온전하게 담아내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 영화는 제임스 볼드윈의 문학적 에세이(또는 글쓰기를 위한 노트)를 충실하게 번역한(또는 완성한) ‘에세이 필름’이고, 한 인물의 삶을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그 인물이 겪어낸 강도 높은 삶의 어떤 순간에 집중하여 그려내는 라울 펙식의 ‘전기영화’이며, 미국의 대중문화(특히 할리우드영화)와 그 안에 담겨 있는 어떤 ‘신화’(myth)를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성찰적인 ‘파운드 푸티지 작품’이기도 하다.
라울 펙은 15살 때 제임스 볼드윈의 글을 읽은 이후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티 출신이지만 어려서부터 콩고,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을 떠돌며 ‘유목적 삶’(nomadic life)을 살았던 라울 펙이 자신 못지않게 떠도는 삶을 살았던 제임스 볼드윈의 글에 깊은 공감을 느낀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라울 펙은 볼드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볼드윈은 나에게 어떤 목소리, 낱말들, 수사법을 제공해주었다. 내가 본능적으로 또는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던 모든 것에 이름과 형태를 제공해주었다. 나는 내가 필요로 했던 모든 지적인 무기들을 얻게 되었다.” 떠돌이로서의 삶의 역정이 반드시 유목적인 삶의 윤리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 그 역정은 그 누구보다 강한 정주에의 욕망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아직 제임스 볼드윈의 글을 읽은 적이 없지만) 라울 펙의 영화를 통해 전해 듣게 된 볼드윈의 말과 글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윤리적 질문과 성찰의 정신이다. 볼드윈은 사생아로 태어났고 흑인이자 게이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그 질곡의 삶을 원한의 정치학을 위한 자산이 아니라 윤리적 성찰의 질료로 삼았던 예술가이자 사상가이다. 볼드윈은 한 출판사 에이전시에게 보내는 <리멤버 디스 하우스>라는 글의 제안서에서, 자신이 ‘혼란스러운 마음’(a somewhat divided frame of mind)으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라울 펙은 그 표현을 ‘복합적 작업’이라는 말로 옮겼다. 그 표현 속에는 현실이 ‘정체성의 정치’를 강요하지만, 그 투쟁을 수행하는 과정에 놓여 있는 어떤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적 성찰의 정신이 담겨 있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거의 전적으로 제임스 볼드윈의 글과 말에 기대어 진행되는 매우 독특한 에세이 필름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언어는 볼드윈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다(‘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라는 제목 또한 볼드윈의 글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 영화는 볼드윈의 13편에 이르는 텍스트로부터 차용한 글과 몇몇 기록영상에 남아 있는 볼드윈의 말을 (재)몽타주해서 볼드윈의 미완의 유작 <리멤버 디스 하우스>를 영화적으로 완성해 보려고 시도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우선, 세개의 시간대가 공존하며 얽혀 있기 때문이다. 미국 흑인민권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50~60년대의 시간, 볼드윈이 그 운동에 대해 성찰적인 회고를 수행하던 시점이자 그 운동에 대한 반격(backlash)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기도 한 70년대 말의 시간, 그리고 일련의 사태(가령 1991년의 ‘로드니 킹’ 사건, 2014년의 ‘퍼거슨 사태’ 등)를 목격하며 라울 펙이 절실하게 볼드윈 사유의 현재적 필요성을 느끼게 된 2010년대의 시간이 그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볼드윈의 사유 속에 자신의 유년 시절이라는 먼 과거에 대한 성찰적 회고와 그만큼 먼 미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예언적 질문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까만 피부, 하얀 가면’으로 살아야했던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한 회한 어린 회고, 미국의 ‘흑인 문제’는 단지 흑인 대통령이 나온다고 해서 일거에 해결될 수 없으며 여전히 지난한 성찰과 노력이 요구되는 ‘미국 사회의 문제’로 남게 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예언적 질문이 그것이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에는, 그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시간과 사유의 흐름에 대한 이정표처럼, 6개의 소제목이 등장한다. ‘노력’(Paying my duties), ‘영웅들’(Heroes), ‘증인’(Witness), ‘순수’(Purity), ‘흑인 팔아넘기기’(Selling the negro), 그리고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가 그것이다. ‘노력’ 부분에는 자신이 미국으로 돌아와 흑인민권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백인들의 멸시와 조롱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학교에 등교한 15살 흑인 소녀 도로시 카운츠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의 조우)가 담겨 있다. ‘영웅들’ 부분에는 흑인 아이에게 ‘까만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콤플렉스를 만들어내는 미국 대중문화(특히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회고적인 성찰이 담겨 있다, ‘증인’ 부분에는 흑인민권운동에 동참하고자 미국에 왔으나 자신은 (그 투쟁 과정 속에서 죽임을 당한 세명의 친구들처럼) 행위자(agency)가 될 수 없었고 글로 그들의 삶에 대해 증언하는 증인으로 남게 된 자신에 대한 양가감정(‘혼란스러운 마음’)의 고백이 담겨 있다. ‘순수’ 부분에는 백인의 흑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사실은 불가능한 인종적 순수성에 대한 신화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공포의 표현일 뿐이라는 깊은 성찰이, ‘흑인 팔아넘기기’ 부분에는 흑인의 노예노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번영을 부인하고자 하는 백인의 위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에는, 흑인으로서의 나는 백인이 공포와 무지로 만들어낸 ‘깜둥이’(negro)가 아니라 단지 ‘피부색이 검은 사람’(blackman)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일 뿐이라는 자기 긍정의 태도가 담겨 있다.
라울 펙이 세계영화계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작품은 <루뭄바: 한 예지자의 죽음>(Lumumba: Death of a Prophet, 1992)이다(이 영화는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콩고 공화국의 토대를 세운 독립운동가이자 그 나라의 첫 수상이 된 정치가였던 파트리스 루뭄바의 삶을 픽션적 재연을 통해 그려낸 전기영화다. 이 영화는 루뭄바의 삶을 연대기적 나열이 아니라 비극적이며 강렬했던 그의 마지막 삶의 순간을 통해 그려낸 ‘영화적 초상화’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역시 평범한 전기영화가 아니라 (비록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제임스 볼드윈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영화적 초상화’이다. 또한 볼드윈의 사유의 여정을 충실하게 뒤쫓으려 했던 라울 펙의 영화적 실험은 자연스럽게 매우 깊이 있고 흥미로운 ‘파운드 푸티지 작품’이 되었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제임스 볼드윈의 언어와 라울 펙의 실험적인 영화 언어가 뒤섞이고 공존하는 영화, 즉 진정으로 윤리적인 ‘자유간접화법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