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레드 스패로> "죽든지, 레드 스패로가 되든지"
2018-02-28
글 : 김소미

도미니카(제니퍼 로렌스)는 병든 어머니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자 동료의 시기심으로 다리를 다친 비운의 발레리나다. 그는 러시아 정보국 간부인 삼촌의 계략에 빠져 어쩔 수 없이 스파이가 되는 길을 택한다. 탁월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이들에게 심리 조작술을 가르쳐 정보원으로 양성하는 ‘스패로 스쿨’의 인격 모독적인 훈련 과정이 서사 중반의 주요 긴장을 이룬다. 폭력과 고문, 성적 묘사도 빈번하다. 이후 미국과 러시아의 이중첩자를 가려내기 위해 CIA 요원 나다니엘(조엘 에저턴)에게 도미니카가 접근하면서 본격적인 첩보물이 펼쳐진다. 익숙한 구도지만 기어이 주의를 빼앗고 마는 첩보 스릴러 장르의 매력은 충분히 살아 있는 영화다. 임무를 위해 서로를 유혹한 요원들이 실제로 감정의 동요를 겪는다는 예상 가능한 위기 역시 큰 감상성 없이 비껴나간다. 다만 <레드 스패로>는 멜로드라마적 감정이든, 자유에 대한 갈망이든, 혹은 조국을 위한 철저한 퍼포먼스든, 도미니카의 심리를 두고 관객과 대담하게 줄다리기를 펼칠 수 있는 구간에서 다소 주춤거리는 모양새다. 지적이고 지독한 스파이영화의 깊이감을 기대한 관객에겐 아쉽고 둔감하게 느껴질 부분이다. 러시아 인물들이 일말의 열망과 신념을 품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 요원들은 흐리멍덩하고 허술하게 묘사되는 점도 아쉽다. 전직 CIA 요원이었던 제이슨 매튜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론 자국을 향한 냉소와 러시아에 대한 은근한 위협감이 내포된 결과물처럼 보인다. 제니퍼 로렌스가 자연스러운 러시아 악센트 연기로 푸틴 시대의 스파이를 능청스레 소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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