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데이비드 매켄지 <로스트 인 더스트>와 사프디 형제 <굿타임>
2018-03-01
글 : 박수민 (영화감독)
The Pure and the Damned
<로스트 인 더스트>

데이비드 매켄지의 <로스트 인 더스트>(2016)에서 미국 텍사스 주에 사는 형제, 태너(벤 포스터)와 토비(크리스 파인)는 은행 빚으로 압류당하기 직전의 농장 땅에 석유가 묻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대를 이어온 지긋지긋한 가난을 끝내려면 원래 응당 자기들 것이었던 땅을 며칠 내에 자본으로부터 되돌려받아야 한다. 무슨 수로? 은행 돈을 훔쳐서 은행 빚을 갚아버리는 거야. 범죄를 통해 그들이 얻는 것은 일확천금이 아니라 원점이다. 망가진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점. 그러나 그건 형과 동생 중 한명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도 그랬지만, 테일러 셰리던의 각본은 영화 밖의 현실을 직조하는 무서운 알레고리를 담는다.

애초에 모른 척할 수 없는 관계

나는 헉, 하고 고향에 계신 내 아버지가 홀로 버티는 방법이었던 역(逆)모기지론을 떠올렸다. 우리 부자가 살았던 작고 낡은 5층짜리 아파트는 재개발 광풍이 휘몰아친 후 초호화 고층 아파트가 되었지만 그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했다. 집을 내어준 대가로 우리가 얻은 건 빚이다. 영화 속 텍사스가 남의 동네처럼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저긴 석유가 묻혀 있기라도 하지. 이 좁은 나라의 땅덩어리는 아무것도 없이 비싸다. 영화를 보다가 한순간 눈물이 흘렀다. 극장에서든 어디든 나는 영화를 보다 곧잘 우는 편이고, 그런 내 눈물을 혐오한다. 주변에서 이미 헤프다고 소문난 나의 눈물샘은 희한하게 신파에는 작동을 안 한다. 울어야 할 감정은 따로 있다. 나는 분통이 터지거나 미안할 때 운다. 영화에서 어린이가 어른에 의해 고통을 당하면 트라우마로 인해 울고, 여성이 남성에 의해 고통을 당하면 부끄러움 때문에 우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정신질환적인, 히스테리성의 눈물. 남자들끼리만 서로 고통을 주고받으면 반대로 희열을 느끼는데 이 영화에선 아니었다.

남자 영화에서 눈물이 나는 경우는 내 안에 있는 어떤 진실이 건드려졌을 때만이다. 극장을 나서면서 내가 왜 울었는지 생각했다. 어느 지점에서 내 형(兄)을 떠올렸던 것 같다. 나 혼자 도망쳐 나와서 여기 처박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아버지에겐 별로 미안한 게 없었다. 근데 형한테는 이상하게 뭔가가 항상 미안했다. 영화는 그 감정을 건드렸다. 형과 동생이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잘 알고 있으니까 엿이나 먹으라고 답하고 하나는 죽으러 남고 다른 하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hell or high water) 지켜야 하는 것을 지키러 갈 때, 이 사랑은 남성 폭력영화의 유사형제간 동성애적 연대- 소위 ‘브로맨스’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진짜 혈연관계의 브러더에게 이건 로망 따위가 아니라 심각한 우리 집안 문제다. 한쪽이 완전히 박살나더라도 다른 한쪽만 멀쩡하면 소멸하지 않은 것으로 치는, 자신마저 뛰어넘은 기이한 자존심이다. 맨날 인종차별적으로 놀려먹던 유사형제였던 알베르토(길 버밍엄)를 잃은 보안관 해밀턴(제프 브리지스)이 형을 죽이고 남은 동생을 만나러 갔을 때, 동생은 자기 자식들에게 신탁으로 박아놓은 농장 땅 위에서 당당히 고개를 쳐든다. 서로 각자의 형제를 죽이면서 어쨌든 이쪽의 친형제가 지킨 것은 땅 자체가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이런 형제(자매)애는 뭐라고 딱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히 혈연에 의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어떤 숙명적인 연대감에 가까운 감정으로 느껴진다. 우정과도 다르며 의리도 아닌 것 같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함부로 형이 되고자 하는 자들이 동생으로 부리려는 이에게 곧잘 의리를 요구하곤 한다. 그러나 의리는 내 생각에 남녀간의 연애에 훨씬 어울리는 개념이다. 의리란 어디까지나 인간 사이의 도리인데, 형제애는 애초에 모른 척할 도리가 없는 사랑이다.

<굿타임>

형제는 다시 원점으로 간다

조시 사프디, 베니 사프디 형제가 공동 연출한 <굿타임>(2017) 역시 형제가 은행을 터는 이야기다. 현대 미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척박해진 탓인지 은행털이는 범죄 로망이 아니라 현실 기반의 소재가 되었다. 진짜 범죄자들은 카르텔, 기업화가 된 지 오래. 이제 이 바닥에 전문가는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아마추어 형제가 이런 짓을 벌인다. 그래도 텍사스주는 동네가 동네인 만큼 M4 자동소총이라도 들고 나오지만 이쪽은 권총 한 자루조차 없다. 뉴욕 변두리에 사는 코니(로버트 패틴슨)는 뭘 해서 먹고사는지 알 수 없는 청춘이다. 코니의 나이 많고 돈 많은 애인(제니퍼 제이슨 리)을 볼 때 아마도 그녀에게 기생해서 사는 다자이 오사무적인 실격 인간인 듯싶다고 추정할 뿐이다. 그에게는 지적장애가 있는 동생 닉(베니 사프디)이 있다. 글은 이렇게 썼지만 인물과 서사에 아무것도 쌓아놓지 않은 채 영화는 이미 일어나는 상황으로 퍽, 하고 시작하므로 코니가 대체 왜 은행털이에 동생 닉을 데려가는 패착을 저지르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그 결과 닉은 영화 시작 17분 만에 경찰에 붙잡히고, 나머지 러닝타임 동안 코니는 동생을 빼내기 위해 지극히 대책 없는 방향으로 동분서주한다. 거의 내내 클로즈업으로 가득한 영화는 동생 닉의 얼굴에서 시작한다. 처음에 나는 정말로 장애를 앓고 있는 배우를 캐스팅한 줄 알았다. 사프디 형제 중 역시 동생인 베니가 연기한 닉은 담당의와 상담하는 첫 장면에서 지적 능력 확인을 위해 문장과 단어의 의미를 문답하던 중 어느 순간 갑작스런 눈물을 흘린다. 왜, 왜 울지?! 불안하고 두려운 가운데 단어를 통해 떠올린 고통 때문으로 보이긴 한다. 이 장면에서 베니 사프디의 연기는 과장 없이 절제되었음에도 한쪽 눈에서 흐르는 두 줄기 눈물로 느닷없이 관객의 가슴을 친다. 장애를 가진 인물이 측은해 보였기 때문에? 아니다. 이전에 전혀 몰랐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인물이 갑자기 이 순간 관객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찰나적 감정이 아무도 모를 진실을 건드린 것이다. 단언하건대 이건 몇몇 영화만 도달하는 마법의 순간이다. 그리고 벌컥, 형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내 동생 왜 울려? 너도 울고 싶어? 닉을 데리고 상담실을 나오는 코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생을 끌어안고 훌쩍이며 말한다. “너와 나뿐이야. 난 네 편이야 알겠어? 사랑해.” 영화는 이 시퀀스 하나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상황에 대한 세팅을 끝내버린다. 둘에겐 서로가 전부이며, 코니는 닉이 없이는 어디에도 가지 못할 것이다. 앞 영화의 형제들이 은행 턴 돈으로 은행 빚을 갚았다면, 이 영화의 형은 은행 턴 돈을 당장 동생 보석금으로 다 써버리는데 그나마도 1만달러가 부족하다. 다시 원점으로 가야 한다.

동생이 경찰에 붙잡히고 오프닝 크레딧이 나온 이후 닉은 등장하질 않는다. 동생을 감옥과 병원에서 빼내겠다는, 단순하지만 막연한 목적을 형이 과연 성공시킬 수 있을지 마냥 따라가는 게 전부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황을 코니가 되는대로 헤쳐나가는 과정은 대범하지만 아마추어적이고 위태로우면서 우습다. 이 모든 상황에 2010년대 최신 유행식의 네온 조명이 펑펑 터지고,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의 거의 가당찮을 정도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트랙이 보태지면 도중에 길을 완전히 잃기도 하는 이 소동극은 이상한 경지에 도달한다. 관객이 의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연성이랄까, 영화가 가진 유일한 설득력은 저 멍청한 짓을 벌이고 있는 저 황당한 인간이 오프닝에서 뜻 모르게 울었던 동생의 하나뿐인 형이라는 사실이다.

코니는 이제 목적마저 모호해진 길 위에서 무력하게 발버둥치다 동생에게 도착하지 못한 채 퇴장하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닉에게로 돌아온다. 지금부터 들려줄 단어에 자신에게 속하는 진실이 있는 경우에만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라는 상담사의 말에 멀뚱히 서 있던 닉이 어느 단어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살아 있는 시체가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이기 팝의 노래 <The Pure and the Damned>가 들려온다. “순수한 사람도 저주받은 사람도 모두 사랑으로 행동한다네.” 동생은 형을 생각하며 저쪽에서 이쪽으로 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한다. 동생이 생각하니 형은 나를 위해 대신 저주받은 성인(聖人)이다. 그러니 형은 동생에게, 동생은 형에게 도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나로서는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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