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소지섭 - 첫사랑처럼
2018-03-06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소지섭과의 ‘취향 토크’는 조금씩 예상을 빗나갔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예술영화를 수입하고 있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첫키스만 50번째>. 처음에는 웃긴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슬프고, 또 보니까 안에 드라마가 있어서 가끔 꺼내서 본다. VHS가 보편적이던 시절에는 <나인 하프 위크>의 미키 루크에게 반해서 그의 출연작을 모두 모았고, 한창 추리소설을 좋아할 때는 정신의 학쪽만 읽다가 호텔로 넘어가고 했단다. 그러니 그가 이따금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에 출연한다거나 <군함도>가 끝나자마자 한국영화계에서 거의 씨가 말랐던 멜로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선택한 것이 그리 의외의 일은 아닐 것이다.

-동명의 원작 일본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의 타쿠미가 그랬던 것처럼, 우진은 매사에 어설프고 건강이 좋지 않으며 남들이 챙겨줘야 하는 남자다. 소지섭이란 배우가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와는 좀 다르다.

=특별히 아픈 설정에 맞는 신체를 만들지는 않았다. 스스로에게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연기를 하는 게 보는 관객에게도 편할 것 같았다. 또한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나는 나를 알지 않나. 촬영하면서 오히려 우진과 내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제작발표회에서 말하기를 “나는 수아(손예진)와 지호(김지환)가 제일 멋진 골을 넣을 수 있게 멋진 패스를 해주는 사람이지 내가 골을 넣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다고. 감정 굴곡이 꽤 있어서 연기적으로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캐릭터였는데 조력자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영화를 끝까지 보고난 후 관객에게 강하게 남는 캐릭터는 엄마와 아들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우진이 무언가를 욕심내서 한다면, 영화의 느낌이 많이 바뀔 것 같더라. 뒤에서 수아와 지호의 감정선이 이어지도록 받쳐주면, 결과적으로 우진에게도 그 영향이 올 거고.

-아빠 연기는 처음이다. 아빠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 것 같나.

=일단 아이가 아들이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 (웃음) 아역배우와 만나자마자 “아빠라고 불러”라고 말하고 가까워졌는데, 몸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더라. 특히나 발목 잡고 들어주는 것을 좋아해서, 나중에는 너무 힘들었다. (웃음) 그렇게 스킨십을 자주 하면 좀 힘들긴 한데, 기분도 좋고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 아이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자연스럽고 내가 아이를 만지는 것도 자연스럽고, 자연스럽게 아이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거다.

-극중 32살이지만 죽은 아내가 기억을 잃은 상태로 돌아온 후에는, 마치 풋풋한 첫사랑을 하듯 연기해야 했다. 그간의 필모그래피에서 이렇게 첫사랑 감성을 담은 잔잔한 멜로물도 없었던 같다.

=손잡고 처음 데이트를 하고 첫 키스를 하는 장면을 찍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 실제 우진처럼 설레더라. 첫사랑이 고1 때였다. 그때는 손 한번 잡으려고 굉장히 고민하고 뜸들였다. (웃음) 그렇게 첫사랑을 대했던 방식이 우진 캐릭터와 닮아서 굉장히 공감하며 찍었다.

-개인적으로 중년에 접어든 한국 남자배우들은 이른바 ‘남자영화’를 선호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의외의 선택을 한 경우도 많더라. <주군의 태양>(2013), <오 마이 비너스>(2015) 등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에 출연하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같은 멜로영화도 찍는다.

=아무래도 영화의 경우 중복된 캐릭터는 연달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서 좀 센 작품 다음에는 멜로를 하는 식으로 작품을 고르는 것 같다. 드라마는 보는 사람이 즐겁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사실 해외에서는 영화보다 드라마가 파급력이 크다. 나를 위해 하는 것도 있지만, 후배들이 계속 멀리 나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인지도 있는 선배 배우들이 드라마를 꾸준히 해서 한국 드라마를 알려야 한다. 그렇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그 끈을 이어갔으면 하는 거다.

-예술영화 수입 일을 병행하는 등, 배우 외에도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숟가락만 얹은 거다. 그분들이 좋은 작품을 가져오면 그중 내가 관심 있는 것을 선택한다. 사실 이게 단순히 돈이 있어서 취미로 하는 일은 절대 아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더 좋은 영화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 기회가 되면 회사 분들과 해외 필름마켓도 가보고 싶다. 지금까지는 그 기간에 일정이 겹치곤 했는데, 마켓에서 직접 영화를 보고 고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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