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이 가져다준 또 다른 즐거움은, 여성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TV로 접하는 경험이었다. 안경 너머 예리한 눈, 튼튼한 팔뚝, 안전모에 눌린 머리칼, 포효와 눈물. 강하고 빠르고 정확한 그들은, 평소 우리가 미디어로 접하는 여성상이 얼마나 대동소이했는지 깨우쳐줬다.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에서 김보람 감독은 여성의 생리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찾아온 미의식 변화를 털어놓는다. 결점이 많다고 여겨온 자신의 몸,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자들의 신체가 드러내는 각양각색의 개성이 어느 날 귀엽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김승희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도 <피의 연대기>의 ‘심미안’을 완성한다. 움직이는 그림 속 여성들의 홀가분한 나체는 현실적 무게와 부피를 전한다. 그들은 남의 눈을 의식한 포즈를 취하지 않으며, 종종 자연스럽게 몸을 굽혀 본인의 성기를 들여다본다.
02/15
히어로 영화로서는 무겁고 복잡한 이야기를 짊어진 <블랙팬서>는 친숙한 외형을 택했다. 서사의 모델은 <라이온 킹>, 액세서리는 007 시리즈에서 빌렸다. 와칸다의 왕자 티찰라(채드윅 보스먼)는 사자 심바처럼 부왕을 완벽한 귀감으로 여긴다. 그리고 뒤늦게 안 과거 아버지와 숙부의 반목에 의해 시험에 든다. 티찰라가 결투 끝에 폭포에서 추락하는 숏은 정확히 <라이온 킹>의 무파사가 희생되는 낭떠러지 장면과 이어진다. 물론 <블랙팬서>의 가족 비극은 <라이온 킹>보다 뿌리도 열매도 복잡하며 오히려 셰익스피어의 가족 비극에 가깝다. 007은 뜻밖의 참고문헌이다. 비밀의 첨단 왕국 와칸다는 세계 곳곳의 정세를 탐지하기 위해 파견한 정부 요원을 다름 아닌 ‘스파이’라고 부른다. 티찰라의 전 애인인 나키아가 그중 한명이다. 티찰라에게 블랙팬서 슈트를 비롯한 각종 무기를 제공하는 공주 슈리(러티샤 라이트)는, 007 시리즈의 Q에 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부산 자갈치 시장 카지노 액션의 공간 설계와 동선, 의상은 아직 관객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은 <007 스카이폴>의 세트 피스를 곧장 인용한다. 그런데 문제의 자갈치 카지노 시퀀스에서 내가 제일 쾌재를 부른 순간은, 빨간 본드 걸풍 드레스로 위장했던 오코예 장군(다나이 구리라)이- 못해 먹겠다는 투로- 집어던진 가발이 적의 얼굴을 후려치는 찰나였다. 말을 이어가자면, <블랙팬서>는 인종뿐 아니라 젠더의 균형도 적절한 방식으로 회복한 블록버스터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의 로맨스에 쏟아진 실망을 돌이켜보자. 엄밀히 말해 블랙 위도우는 죄가 없다. 영화가 예컨대 남자 주연 다섯에 여자 한명 끼워주는 방침을 고집할 때, 유일한 여성 캐릭터는 전체 여성을 대변하는 일종의 대사(大使)가 되어버린다. 한 개인으로서 입체성만 갖추면 합격인 남성 캐릭터와 달리 홍일점 캐릭터는 다양한 여성의 욕망과 현실적 모순을 몽땅 반영해야 하는 불가능한 미션을 짊어지게 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블랙팬서>에는 이야기를 움직이는 복수의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이 어이없게 당연한 명제를 특별 언급해야 함이 벡델 테스트의 존재 이유를 말해준다). ‘미망인’(남편과 같이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차별적 단어와 동떨어진 여왕 라몬다(안젤라 바셋)를 비롯해 최고의 군인 오코예, 스파이 나키아, 과학자 슈리가 영화 초반부터 스크린을 채운다. 우선, 와칸다의 시민들이 삶을 미처 보여주지 못하는 영화에서 슈리는 전통과 기술을 이상적으로 결합한 가상 국가를 대변하는 존재다. 여럿인 덕분에 여자들은 매사에 한편일 필요가 없다. 멸사봉공 정신이 투철한 오코예는 누가 옥좌에 앉건 간에 명령체계에 충실한 공직자이며 와칸다 전통의 수호자다. 반면 스파이 나키아는 세계시민주의자이며 개인의 신념을 중시한다. 따라서 두 여성은 한 때 적으로서 맞선다. 오코예와 나키아는 극중 남성 캐릭터와 연인 관계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이 닥쳤을 때 오코예는 연인 편을 드는 대신 군인의 사명을 지킨다. 나키아와 티찰라가 헤어진 까닭은 외부 세계 동족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견해 차이로 암시된다(영화의 여정 끝에 설득되는 쪽은 티찰라다). 여성 인물이 딱 한명이 아니고, 그들이 영위하는 삶의 다른 중요한 영역이 충분히 재현되기에, 관객은 연애를 여성캐릭터의 족쇄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때로 양은 질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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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하 <셰이프 오브 워터>)은 기호의 가지런한 조합이다. 정치적 폭력의 시대를 무대로 한 판타스틱한 동화라는 점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전작 <크로노스> <악마의 등뼈>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와 맥을 같이하면서도, 한층 주류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이유다.
물은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다. 물은 동그랗고 온유한 생명이자, 막을 길 없이 스며드는 힘이며 결국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영화는 물에 잠긴 방의 꿈에서 시작해 욕조에서 시작되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의 하루로 옮아가고 매일 끓는 물에 삶아 엘라이자가 청소부로 일하는 연구소로 가져가는 달걀은, 수조에 감금된 양서류 남자(더그 존스)와 그녀를 이어준다. 엘라이자는 물이끼 같은 청록으로 뒤덮인 아파트의 반원형 창에서 빗줄기를 내다보고, 출근하는 차창에 맺힌 물방울들이 서로를 향해 미끄러져 하나가 되는 모습을 행복하게 음미한다. 장력으로 각기 동그란 세계를 이루다가 마치 견딜 수 없다는 듯 합쳐져 더 큰 동그라미를 이루는 물방울의 춤은, 말할 나위도 없이 사랑의 이미지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갇힌 물은 반드시 흘러야만 한다. 강의 신으로 살아온 양서류 남자는 물탱크와 욕조를 벗어나야만 하고, 그와 엘라이자가 사랑을 나누는 욕실의 물은 건물의 골조 틈으로 분출해 아래층의 영화관을 적셔야만 한다. 영화관에서 새어나오는 음향과 빛에 젖은 엘라이자의 침대에서 시작한 <셰이프 오브 워터>는, 엘라이자와 양서류 남자의 섹스에서 흘러나온 물이 영화관에 내리면서 순환의 한 고리를 완결한다. 델 토로 감독에게 사랑과 시네마는 하나다. 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반드시 걸작들이 아니라 한때 명멸한 다음 잊힌 대중적 판타지와 서사극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델 토로는 영화 일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컬러의 사용은 거의 도식적이라고 해도 좋다. 엘라이자를 둘러싼 청록색과 미묘한 차이를 둔 녹색은 ‘미래의 색’이라고 극중에서 여러 차례 지칭되며 인물들을 위협하는 사물에 쓰였다. 지하에서 냉전을 수행하는 연구소, 엘라이자의 친구인 게이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가 억지로 그리고 먹는 젤리 디저트와 파이, 악역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가 성공한 자의 표상으로 구매하는 캐딜락과 습관적으로 먹는 사탕 등이 녹색이다. 신에 가까운 원시적 존재인 양서류 남자의 몸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색깔이 깃들지만 녹색만은 빠져 있다. 반면 초록의 보색인 빨강은 눈을 사로잡는 사랑의 표식으로 귀하게 쓰였다. 양서류 남자와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엘라이자는 붉은 외투와 구두, 머리띠를 착용한다. 그리고 말하나마나, 델 토로 감독이 남은 빨강을 퍼부은 공간은 영화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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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얼굴
마고 로비를 가장 뛰어난 미국의 스케이트 선수이자 악녀로 얼굴이 널리 알려진 토냐 하딩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 토냐>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썼다. 5개월의 스케이팅 훈련은 기본이고 1980년대 메이크업과 특수분장, 가발이 동원됐고 하딩이 체중관리에 실패한 1992년 알베르빌올림픽 장면에서는 살쪄 보이는 슈트를 이용했다. 경기 장면은 당연히 대역배우와 블루 스크린 연기의 복잡한 합성을 요했다. 그러나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은 고정 카메라를 쓴 인터뷰 재연부터 고난도 경기 신까지 마고 로비의 정면 얼굴에 시선을 못박는다. 빠른 스케이팅 와중에도 토냐의 눈과 표정은 작위적이리만큼 또렷한 포커스 안에 있다. 마고 로비의 토냐 하딩은 폭행과 경멸로 항상 멍들어 있으면서도 공격적 보디랭귀지와 눈빛을 잃지 않는다. 스캔들 복판에서 맞이한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대기실의 토냐 하딩은 무너지려는 얼굴을 붉은 메이크업으로 닦아세운다. 순간 마고 로비의 클로즈업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퀸보다 처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