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월터 머치 / 출연 페어루자 보크, 니콜 윌리엄스, 진 마시 / 제작연도 1985년
물론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칼럼의 제목에 맞는 영화를 떠올리다보니 역시 결론은 하나다. 내 인생의 10년가량, 그러니까 6살 때부터 10대 후반으로 접어들 때까지 거의 매일 밤 머릿속에 떠오르며 나를 벌벌 떨게 한 영화. 이 정도면 가히 인생 영화라 칭할 만하다.
내 나이 만 6살. 나는 영국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확인해보니 당시 영국에서 전체 관람가인 U등급으로 개봉했다. 다시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디즈니가 제작한 이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의 속편으로, 제목 그대로 도로시가 오즈에 다시 가서 겪는 모험을 그린다. 그러나 이야기나 인물은 중요치 않다. 방점은 이미지, 이미지, 그리고 이미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충격적인 공포에 시달렸다. 끔찍할 정도로 무서웠으며 옆자리의 엄마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에 압도당한 나는 입을 꾹 닫고 나를 잠식한 스크린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더 놀라웠던 건 영화가 끝나고 내려오는 통로에서 두명의 20대 금발 청년들이 나누던 대화다. 나는 간신히 지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은, 세상에 이런 유치찬란한 영화가 있나, 라며 낄낄댔다(그때는 지금보다 영어를 잘해서 다 알아들었다). 그 반응이 너무 의외라, 이 영화를 떠올릴 때 자동 연상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내 기억에 각인된 장면은 대략 이런 식이다. 황량한 야외에서 머리 잘린 동상들이 원을 그리고 서 있다. 벽장마다 들어찬 머리들이 눈을 끔뻑인다. 괴이하게 생긴 여자가 열쇠로 벽장 문을 열고 그중 머리 하나와 자신의 머리를 바꾼다. 벽장 속 머리들이 눈을 번쩍 뜨고 소리친다. 땅이 일어나 진흙괴물이 되어 무시무시한 공격을 펼친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영화를 본 후 몇년 동안 밤에 혼자 화장실에 못 갔다. 좀더 커서 본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준 공포도 이 영화가 준 시각적 충격에 비하면 후발주자일 뿐이다.
지난해에서야 나는 불현듯 유튜브에서 영화를 검색했고 32년 만에 공포의 근원과 재회했다. 감상은? 첫 번째로는 6살 때의 기억이 이토록 정확하다는 사실에 놀랐고, 두 번째로는 금발 청년들이 부리던 어른의 호기를 이해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진정 괴작임에 틀림없다. 괴작에 세월이 더해지면 간혹 저주받은 걸작이라 평가받기도 한다. 이제 보니 취향과도 맞아서, 나 역시 적절한 시기에 봤더라면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에 반했을 것 같다.
하지만 6살에게는 무리다. 확인해보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Princess Mombi part2’를 찾아보면 된다. 다시 봐도 생생한 이 장면은 과연 6살에게 10년의 트라우마를 일으킬 만하다!(당시로선 꽤 독창적인 장면이라 미술하는 사람들은 감상해봄직도 하겠다. <스타워즈>와 <레이더스>의 아트디렉터인 노먼 레이놀즈가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았다).
여하튼 내 인생의 영화에 대한 결론은 이렇다. 어린이에게 과한 시각적 자극은 상상 이상의 충격과 긴 시간 동안 악영향을 안길 수 있다. 요즘 같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선 더할 거다. 아이들에게 얼핏얼핏 보여지는 영상에 부디 조심하고 조심하기를. 매우 계몽적인 결론이지만 세월로 견뎌낸 경험에서 나오는 간곡한 당부다.
손원평 소설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등을 연출했으며 2001년 <씨네21> 영화평론가 공모전에도 당선됐다. <아몬드> <서른의 반격>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