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언프리티 소셜 스타>는 SNS 세계를 너무 가볍게 본다
2018-03-08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위험한 건 인스타그램이 아니네

맷 스파이서의 <언프리티 소셜 스타>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 아직 영화를 보지도 않은 나에게 온 것은 아마 내가 <씨네21>에서 연락이 닿는 사람들 중 가장 중증의 SNS 중독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영화를 보지도 않았던 내가 이를 덜컥 받아들였던 것도 내부인의 관점으로 몇 마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SNS의 영토는 광대하고 지역마다 성격이 다르며 같은 지역의 거주민이라고 해도 행동방식이 다르다. 나는 페이스북(게임 계정 등록용)과 인스타그램(연예인 스토킹용)에 가입되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트위터 사용자이다. 인스타그램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언프리티 소셜 스타>의 이야기는 나에게 좀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고 우긴다면 그건 거짓말이 될 것이다.

SNS의 허약한 관계를 현실로 끌고왔을 때

현실 세계와 비교했을 때 SNS의 가장 큰 특징은 관계 맺기가 굉장히 쉽고 가볍다는 것이다. 이 세계의 관계 맺기는 <심즈> 게임의 직장 생활과 비슷해서 현실 세계에서 실제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노력과 시간과 돈과 기타 등등의 자원을 들여야 할 필요가 없다. 현실 세계의 관계가 굵고 질기고 끈적거린다면 SNS의 관계는 거미줄처럼 가늘고 허약하다. 여기서 ‘가늘고 허약하다’는 나쁜 뜻이 아니다. SNS는 현실 세계 관계의 끈적거림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로 그런 특성 때문에 이상적인 도피처이다.

문제는 SNS의 관계가 가볍고 허약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제품 특성이며 SNS는 바로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세상엔 이 제품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부작용은 제품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멋대로 사용할 때 발생한다.

<언프리티 소셜 스타>의 주인공 잉그리드(오브리 플라자)가 겪는 문제점도 여기에 있다. 잉그리드는 자신이 팔로하는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에게 현실 세계의 진지하고 무겁고 끈적거리는 관계를 원한다. 도입부에서부터 이 사람은 고장나 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잉그리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을 초대하지 않은 인스타그램 사용자의 결혼식에 침입해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잉그리드의 SNS 생활은 내 SNS 생활과 정반대이다. 나에게 트위터는 나의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고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내 목소리를 전파하며 다양한 의견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공격하거나 놀려대거나 귀여워하는 곳이다. 하지만 잉그리드가 사는 인스타그램 세상은 자신과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노출하는 것이 먼저이다. 얼굴 없는 투덜꾼들만 부글거리는 트위터는 잉그리드에게 별 재미없는 곳일 것이다.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SNS의 교류만으로도 충분치 않다. SNS의 교류가 현실 세계의 관계로 연결되어야 비로소 만족한다. 결혼식을 망친 첫 번째 사람과의 관계도 아마 그런식으로 발전되지 않았나 싶다. 아주 문제가 있는 고객인 셈이다. 병원에서 나온 잉그리드는 다음 타깃을 노린다. 타깃은 테일러 슬론(엘리자베스 올슨). 소위 SNS 스타이다. 남편과 함께 캘리포니아에 살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조작된 라이프 스타일의 이미지를 팔아 유명해진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다. 유사 연예인이고 잉그리드와 같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 아주 취약한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잉그리드가 테일러에 대해 가진 관심이 어떤 종류인지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테일러의 인스타그램에는 이 사람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 전혀 없다. 트위터 예를 든다면 사용자의 개성은 140자 또는 280자로 톡톡 치는 문장들을 통해 드러난다. 그것이 사용자의 실제 개성이나 인품과 완벽하게 일치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도 개성은 개성이다. 이미 대중에게 노출된 연예인이라면 이미 다들 익숙해진 이미지를 연장해 재생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테일러의 경우는 정말로 투명하기 짝이 없다. 찍어 올리는 사진들은 정갈하고 예쁘지만 그뿐으로 테일러 슬론이라는 사람의 내면 또는 내면처럼 위장된 무언가를 반영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잉그리드의 관심은 철저하게 랜덤인 것처럼 보인다. 테일러 슬론이라는 개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이 사람이 무개성적으로 대표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

야유하기는 쉽다

테일러가 자신이 보낸 코멘트에 답글을 보내자, 잉그리드는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겨준 6만달러 조금 넘는 돈을 챙겨들고 테일러가 사는 서부로 간다(이 영화의 원제는 ‘Ingrid Goes West’이고 이는 잉그리드의 인스타그램 아이디이기도 하다). 그리고 테일러의 집 근처에 집을 빌리고 우연을 가장해 친구가 된다.

여기서부터 나는 영화가 SNS 풍자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느낀다. 이후, 잉그리드와 테일러에게 일어나는 일들 대부분은 SNS 시대 이전에도 꽤 자주 일어났었다. 잉그리드는 신분을 위장해서 테일러에게 접근하면서 점점 테일러의 라이프 스타일을 모방하는데, 이건 <위험한 독신녀>에서도 일어났었다. 그리고 그전에는 전설적인 톰 리플리 선생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적어도 결말이 이르기 전까지 두 사람은 살해당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걱정했는데, 그건 내가 이 이야기를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렌즈를 통해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최첨단 디지털 유행의 위험성을 경고하려고 시작했던 이야기가 아주 오래된 이야기 틀의 전형성으로 안착하는 것이다. 잉그리드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지금과는 다른 삶을 누리고 싶다. 인스타그램은 이 욕망의 문을 열어주는 입구일 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잉그리드가 벌이는 모험에서 인스타그램은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잉그리드가 테일러 앞에서 조작한 자신의 이미지는 대부분 인스타그램의 도움 없이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졌다. 잉그리드의 이중성 역시 인스타그램과 큰 상관이 없다. 그리고 잉그리드는 현실 세계에서 의외로 유능하다. 톰 리플리처럼 냉정하거나 영리하지는 않지만,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을 조종하고 기만하는 실력은 상당하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의도와 상관없이 미국 총기 규제 반대자들의 주장과 은근슬쩍 비슷해진다. 위험한 건 SNS가 아니라 잉그리드이다. 인스타그램이 없었어도 잉그리드는 기어코 타깃을 찾았을 것이다. 테일러 슬론과 같은 사람은 흔해 빠졌고 이 미친 영혼이 원하는 건 테일러라는 구체적인 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면 SNS의 문제점을 대표하는 건 테일러인가? 물론 테일러는 공허하다. 하지만 이 사람의 공허한 번지르르함은 익숙하기 짝이 없으며 그게 대단한 문제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대부분 사용자들은 바로 그 공허한 번지르르함 때문에 테일러의 계정을 팔로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가 아이돌 팬질을 하는 게 그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보았기 때문인가? 우리가 제정신으로 살아남으려면 삶의 무게가 제거된 얄팍한 허상이 필요하다. 인스타그램은 이를 제공해주는 수많은 통로 중 하나일 뿐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영화는 잉그리드의 SNS 위치를 역전시키는 반전을 연출한다. 이 반전은 정곡을 찌르는 야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역사를 시작한 이 세계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야유는 쉽다. 어려운 건 미래의 비전을 통해, 세계의 가능한 모든 복잡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반지르르한 얄팍함 너머에 숨어 있는 게 설마 저런 공허함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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