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위근우의 <내일을 위한 시간> 절망의 이유
2018-03-21
글 : 위근우 (칼럼니스트)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 출연 마리옹 코티야르, 파브리지오 롱기온, 올리비에 구르메, 캐서린 살레 / 제작연도 2014년

감히 시니컬해질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의 엔딩을 본 후 먹먹하게 화면을 응시하던 몇분 동안이 그러했다. 원제 ‘두번의 낮, 한번의 밤’, 즉 1박2일 동안 복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산드라(마리옹 코티야르)의 모습을 드라마틱한 요소 없이 건조하게 따라가는 이 영화에서 세상을 절망으로 바라볼 증거는 차고 넘친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그렇다. 휴직 중이던 산드라는 복직을 앞두고 해고를 통보받는다. 이유는 더 기가 찬다. 산드라의 복직과 개인이 받을 보너스 중 하나를 택하라는 사장의 제안에 동료들은 투표를 통해 보너스를 선택한 것. 회사에서 버림받고 동료들에겐 배신당했다. 여기 어디 희망이 있을까.

그럼에도 투표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제보로 이틀 뒤 월요일 아침 재투표를 하기로 했고, 남은 시간 동안 산드라는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제발 자신의 복직에 한표를 던져달라고 통사정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너무나 고통스럽다. ‘희망고문’이라는 조어는 이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보너스를 선택한 자신에 대해 눈물로 후회하며 산드라를 돕겠다는 동료를 만날 땐 아주 작은 희망의 증거를 본 듯하지만, 매몰차게 냉대하는 동료를 보는 순간 작은 희망은 더 큰 절망을 위한 미끼였음을 알게 된다. 마리옹 코티야르의 엄청난 연기력과 함께 산드라에 이입한 1박2일을 지나 재투표의 순간을 마주할 때 모든 오감은 투표 결과에 집중되며, 찬반 동률로 결국 복직이 무산된 순간 어떤 허탈함, 어쩌면 절망보다 나쁠 냉소가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놀랍게도 영화는 산드라를 통해 다시 희망을 말한다.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찬반 동률을 만들어낸 산드라의 노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사장은 굳이 보너스를 취소하지 않고도 계약직인 노동자 한명(그는 산드라의 복직에 찬성표를 던졌다)과 재계약하지 않으면 산드라의 복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지금껏 동료들의 선택에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던 산드라는 단호히 거절한다. 그것은 또 다른 해고일 뿐이라며.

회사를 나온 뒤 남편과 웃으며 대화하고 삶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산드라의 모습은 판타지일까. 감히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여기서의 희망이란 막연히 있음직하기에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절망의 이유 안에서 재구성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물론 세상에는 비관주의의 손을 들어줄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단념하고 두손을 들어버리는 것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시나리오를 따르도록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것이 서사 장르의 의무나 윤리까진 아닐지언정 존재 이유의 가장 빛나는 부분일 것이며, 희망을 찾되 수많은 절망의 이유와 부딪히길 겁내지 않는 것이야말로 창작자의 양심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고마워요 다르덴 형제.

위근우 칼럼니스트·전 <아이즈> 취재팀장, <프로불편러 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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