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건 내가 보여준 최현수가 나의 최대치였다는 점이다. 여한이 없을 정도로 다 쏟아부었다.” 자신의 40대가 응축된 작품이라는 말에서도 류승룡이 <7년의 밤>에 쏟은 에너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최현수는 세령마을에 발을 디딘 첫날 교통사고를 내고, 차에 치인 소녀 세령의 시신을 호수에 유기한다. 우발적 사고 혹은 명백한 범죄 이후 현수는 개인적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딸 세령을 잃은 오영제(장동건)는 최현수에게도 아들을 제물로 내놓으라는 듯 목을 졸라온다. “과정도 행복하고 결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과정의 행복이라는 절반의 기쁨에 만족해야 했던 <염력>을 뒤로하고 <7년의 밤>으로 류승룡이 다시 돌아왔다.
-2016년 5월에 크랭크업을 했으니 개봉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꽤 길었다.
=소설의 영화화가 결정되고, 시나리오 최종고가 나오고, 촬영에 들어가고, 촬영이 끝나고 난 이후까지 모든 과정이 녹록지 않았고 모두가 신중했다. 추창민 감독님이 현장에서도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다. ‘100% 오케이는 없다. 분명 더 좋은 게 있을 수 있다.’ 정말 어떤 신도 허투루 찍은 게 없다. 매 순간이 완성을 향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창고에 오래 묵혀뒀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원작이 정유정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영화화 판권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7년의 밤>에 대한 배우들의 관심도 높았을 텐데,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나.
=어떤 역이든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다. 최근엔 <1987>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7년의 밤>도 어떤 역이든 좋으니 참여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서원(고경표)을 연기할 수도 없고. 승환(송새벽)을 하기엔 물이 무섭고. (웃음) 어쨌든 영제 아니면 현수인데, 기존에 강한 캐릭터들을 연기했기 때문에 내가 좀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영역은 영제쪽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반면 사슴눈을 가진 장동건 배우는 굉장히 선하고 젠틀하고 매너 있는 사람이지 않나. 감독님은 일반적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을 원하셨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나로서도 현수를 연기한다는 건 큰 두려움이고 숙제였다.
-영화는 사건보다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그만큼 극한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해야 했을 것 같다.
=영화가 계속 화두를 던진다. 너라면 어떡할래? 나라면 어떡할까? 어쩌면 죄에 대한 단죄는 쉬울 수 있다. 그런 단죄 말고 선악의 경계에 대해, 진정한 용서에 대해 감독님이 계속 화두를 던진 것 같다. 나 역시 그 답을 계속 찾아가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현수에겐 폭력적 아버지에 대한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다. 그 트라우마가 사고 이후 중요하게 작동하는데, 폭력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 인물의 인생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배우로서 감사하고 영광이었던 건 한편의 영화에서 이만큼 다양하고 깊은 감정을 토해낼 수 있었다는 거다. 금광의 수맥을 찾듯이 정확한 감정을 찾아서 표현하는 작업이 굉장히 짜릿했다.
-‘세령호 사건’ 발생 7년 후, 사형수가 된 현수가 다 큰 아들 서원과 대면하는 장면에서의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7년의 시간을 담아내는 눈빛, 그걸 표현하는 게 쉽진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느꼈을 공허함과 죄책감과 그리움을 표현하는 눈빛 말이다. 서원을 연기한 고경표 배우와는 그 신에서 딱 한번 같이 연기한다. 그 장면을 위해 일부러 촬영이 진행되는 몇 개월 동안 서로 만나지 않았다. 고경표가 아닌 서원으로, 류승룡이 아닌 서원의 아빠로 만나려고. 뭘 그렇게까지 유난을 떨면서 연기했냐고 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영화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모두가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했고, 모두가 이 영화에 깊이 빠져 있었다.
-몸고생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촬영 당시엔 전혀 못 느꼈다. 영화에 집중하느라 춥다는 생각도, 아프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촬영이 끝나니까 그제야 아프더라. 어깨 회전근도 상하고 새끼손가락도 다치고. (웃음)
-차기작은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다.
=그동안 좀 꺼려했던 소재들이 마약, 조폭, 형사 이야기다. 그런데 <극한직업>에 그 소재들이 다 나온다. (웃음) 이런 소재로 이렇게 신선하고 기발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구나 싶더라. 무엇보다 팀워크와 팀플레이가 중요한 영화라, 내가 더 힘을 뺄수록 영화가 풍성해질 것 같다.
-최근엔 예전만큼 다작을 하는 느낌은 아니다. 지금의 속도에는 만족스럽나.
=왜 진작 이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인생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중요한데, 이제 방향을 좀 잡은 것 같다. 행복하게 영화를 찍고, 그렇게 찍은 영화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행복과 사명 사이를 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