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레이디 버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영화
2018-04-04
글 : 이주현

영화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녹음 테이프를 차에서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녀를 비추며 시작한다. 운전석에 앉은 엄마(로리 멧커프)와 조수석에 앉은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은 곧 언제 함께 눈물을 훔쳤냐는 듯 투닥거린다.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지어준 크리스틴은 엄마가 자신을 레이디 버드로 부르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 게다가 뉴욕 소재의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하자 시립대에나 진학하라는 말에 발끈한다. 말로는 엄마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자 레이디 버드는 달리는 차 안에서 망설임 없이 뛰어내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가톨릭 고등학교 졸업반인 레이디 버드는 어떻게든 고리타분한 새크라멘토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단짝 친구 줄리(비니 펠드스타인)와 함께 들어간 연극반에서 여자친구의 순결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대니(루카스 헤지스)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것도 잠시. 대니의 성정체성을 확인한 뒤엔 카일(티모시 샬라메)과 연애를 즐긴다. 친구들과 무리지어 다닐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늘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는 카일은 사실 레이디 버드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듯 보인다. 우정도 사랑도 엄마와의 관계도 뜻대로 되지 않는 지금 여기에서의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레이디 버드에게 뉴욕행은 간절하다.

<레이디 버드>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영화다. 고향 새크라멘토에서 보낸 10대 시절에 대한 애정고백쯤 되는 이 영화가 개인적인 고백을 넘어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건 주인공 레이디 버드가 곧 무수한 소녀들이 한때 간직했던 마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존재이고 싶지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평범으로 수렴되는 현실. 그 속에서 악착같이 꿈을 꾸고 부딪혀보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존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하>(2012),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에 출연하고 각본까지 쓰면서 배우로서는 물론 각본가로서의 재능까지 선보인 그레타 거윅은 <레이디 버드>로 당당히 연출가로서의 비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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