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김보람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작은 틈
2018-04-11
글 : 김보람 (영화감독)

감독 사라 폴리 / 출연 사라 폴리, 마이클 폴리 / 제작연도 2013년

“뭐 재미있는 다큐멘터리 좀 소개해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인지, 종종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저 없이 사라 폴리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추천한다. 사라 폴리는 캐나다 출신 배우이자 감독이며 작가다.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두편의 극영화를 연출했다. 나는 사라 폴리의 영화와 드라마를 모두 챙겨봤고,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2014년 3월 단지 사라 폴리가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정보없이 극장에 가서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봤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이 몇명인지, 아버지는 누구인지, 그들 중 누가 이혼을 했는지. 장성한 그녀는 금발이지만 태어났을 당시엔 빨간머리였다는 것까지도.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사라 폴리 자신과 그녀의 가족을 다룬, 지극히 개인적인 다큐멘터리다. 더 자세히는 이들의 엄마이자 아내였던 ‘다이앤’이 남긴 비밀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라 폴리의 아버지 마이클로, 역시 배우 출신이다. 첫 장면은 눈 내리는 창밖을 쳐다보는 기차 안에 있는 다이앤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마이클의 첫 대사는 이러하다. “본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사실,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혼돈이라 할 수 있죠.” 마거릿 애트우드의 <그레이스>에 나오는 구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가 ‘이야기’가 될 수 있겠느냐고 시작부터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몇년 전 독립 다큐멘터리 신에서 논쟁이 되었던 이슈가 있다. 거칠게 말해 사적 다큐멘터리가 사회 이슈나 논쟁적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비해 만들기 쉽고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정치적이기 위해 쓴다”고 말한다. 거창해 보이는 말이지만 대부분의 창작자는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관객을 압도하기 위해, 독자를 설득시키기 위해, 내가 느낀 감정을 세상에 전염시키기 위해. 그래서 내가 만든 이야기를 본 누군가가 울고, 웃고, 때로 어떤 결단에 이를 수 있게 하기 위해. 그것이 사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간에.

영화 속 가족들의 기억은 서로 충돌하고 교차한다. 그러면서 점점 다이앤이 남긴 비밀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질문한다. 다이앤은 누구였을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그녀가 정말 사랑한 건 누구였을까?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부재한 자리에서 사라 폴리의 가족이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다이앤이라는 한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낳아준, 나와 결혼한, 그리고 어느 시점에 우리 삶에서 사라져버린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나의 기억, 감정, 경험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정치적 과정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의 거미줄을 걷어낸 뒤 비로소 홀로 서 있는 한 인간의 얼굴을 발견한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시도는 내 삶을 다양한 이야기로 채운다. 타인을 탐구하려는 여정 끝에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작은 틈을 발견한다. 이야기는 그런 틈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내게 그런 틈이 되어주었다.

김보람 영화감독. 다큐멘터리영화 <피의 연대기>(2017)를 만들었다. 시트콤, 다큐멘터리, 소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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