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종말의 초기 단계로 보이는 가까운 미래, 이미 폐쇄된 뉴욕주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부부와 세 자녀가 맨발로 숨죽인 채 시골 마을의 식료품점을 헤맨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소리의 근원지를 파괴하러 달려오는 괴생명체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 이후 1년여의 시간을 지나친 영화는 어느덧 만삭의 에블린(에밀리 블런트)이 출산을 앞둔 시기에 관심을 맞춘다.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주는 쾌감은 주로 가족들이 쌓아올린 다양한 생존 전략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유효하게 기능할 때 발생한다. 청각장애를 지닌 맏딸 레건(밀리센트 시먼스) 덕분에 수화를 할 수 있다는 점, 가장 리(존 크래신스키)가 운영하는 지하실에 CCTV와 주파수 증폭기가 설치된 점 등 허투루 다뤄지는 세부가 없기에 더욱 깔끔하고 만족스러운 스릴을 낳는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관습, 한번쯤 본 듯한 호러영화의 컨셉을 안목 있게 선별한 뒤 경제적이고 영리하게 배합해낸 영화다. 가족주의적 드라마, 괴수의 형상을 점차 드러내는 방식, 서스펜스 상황의 완급조절 등 때때로 조금 넘치거나 조금 건조한 부분도 모두 대담하게 조율된 결과물로 다가온다. 작지만 강력하고 신선한 공포물의 출현임이 분명하다. 실제 부부인 존 크래신스키와 에밀리 블런트, 아역배우들의 호연이 극한의 공포 속에서 솟는 일말의 용기를 섬세히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