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민아와 교사 서린(이유영)은 비슷한 수법을 이용한 성범죄의 피해자들로 등장한다. 음료수를 건네받고 정신을 잃은 이들이 사지가 묶인 채 조종당하는 영상이 유포된다. 얼마 못 가 영화는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것 같았던 두 사건이 실은 동일 인물에게 14년의 긴 시차를 두고 발생한 연쇄 범죄임을 밝힌다. 무방비로 언론에 노출된 피해자는 손쉽게 새 범죄의 타깃이 되고, 새로운 세대는 점점 더 빠르고 간편하게 모방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 서사다. 이처럼 실화를 모티브로 한 픽션을 내건 <나를 기억해>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청소년들이 직접 ‘소라넷’을 비롯한 각종 음란물 사이트를 통해 동영상을 제작, 유포하는 일각의 세태를 선명히 반영한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의 현재를 조명하려는 유의미한 시도와 달리 카메라의 시선은 번번이 시대착오적이다. 가해자의 시선에 담긴 피해자의 몸이 그대로 전시되고, 장르적 쾌감이 동원된 연출과 함께 가해 상황이 묘사돼 여성 관객은 극도로 괴로울 수도 있다. 중반 이후 서린이 자신을 돕는 형사 국철(김희원)과 함께 직접 추적에 나서는 복수극이 시작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숨바꼭질>에 이은 이한욱 감독의 새로운 범죄 스릴러로 장르적 긴장감은 유효한 편이나 여러 인물을 펼쳐놓은 서사가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인상이 강하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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