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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유지영 감독 - 실패해도 괜찮아, 삶은 그래도 계속되니까
2018-04-19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치열하게 살아라 치열하게.” 대구에 사는 희정(이세영)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하기 위해 치열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치열하게 편입시험을 준비한다. 책과 밥 외에는 마음 쏟는 게 없는 동생 희준(남태부)에게 희정은 운동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치열하게’ 살 것을 조언한다. <수성못>은 유지영 감독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지만 넘어지고 아파하기 일쑤였던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며 쓴 이야기다. “치열하게 살아라”라는 대사 역시 감독이 20대 시절 자주 하던 말이라고 한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20대의 이야기 <수성못>은 대구에서 나고 자란 유지영 감독이 대구를 배경으로 찍은 장편 데뷔작이다. 유지영 감독은 홍익대학교 영상영화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해 졸업영화로 <수성못>을 만들었다.

-첫 장편이 곧 개봉한다.

=개봉을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감회가 새롭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장편 제작연구과정을 통해 매년 두세편의 장편이 만들어지는데 개봉지원은 한편만 받는다. <수성못>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개봉하는 작품이 아니다. 뒤늦게 인디스토리에서 이 영화를 배급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올해 1월 1일, 마음 잡고 새 시나리오를 쓰려고 내려간 제주도에서 인디스토리의 전화를 받았다. 새해 첫날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니, ‘진짜 잘 개봉해서 보내줘야겠구나, 이젠 <수성못>과 작별할 시간이구나’ 싶다.

-<수성못>은 대구의 수성못이라는 공간에 먼저 매혹을 느껴 시작된 영화인 것으로 안다.

=장소에 영감을 받거나 장소에서 파생된 이미지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편이다. 5, 6년쯤 전이었나. 비가 많이 오던 한적한 어느 날 아침, 답답한 마음에 수성못으로 산책을 나갔다. 우산을 쓰고 수성못을 한참 맴돌았다. 처량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그날의 내 모습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박혔던 것 같다. 처음엔 수성못을 배경으로 대사도 없고 포토제닉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희정이란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만들어지면서 내가 통과한 20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20대 땐 희정처럼 하루빨리 대구를 뜨고 싶었나.

=20대 때는 그랬다. 서울에 가면 더 많은 문화적 혜택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고, 가족으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20대 중·후반에 대구를 벗어났다. 희정과 다르게 나는 편입에 성공해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느꼈다. 나는 서울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대구를 벗어나고 싶은 거였구나. 학교를 졸업하고 나선 서울에서의 생활을 감당하기 벅차 다시 짐을 꾸려 대구로 왔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많이 울었다. 대구에서도 영화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스스로가 정체되고 도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시기에 <수성못>이라는 시나리오를 썼다. 그 시기를 모두 통과해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대구가 내게 안정을 주는 곳이 됐다. 이제는 더이상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다.

-희정이란 캐릭터를 써내려가면서 자신의 20대 시절을 대면하는 느낌이었겠다.

=희정의 에피소드가 꼭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고유한 성격과 본질은 나를 닮았다. 20대 땐 희정처럼 굉장히 열심히 살았다. 희정은 자신이 뭘 공부하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코앞의 것만 보고 경주마처럼 달려간다. 그러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내 20대 때가 꼭 그랬다. 열심히 엇나간 방향으로 달려갔던 거다. 뭐든 가장 열심히 하는 게 20대지만 실패도 가장 많이 하는 게 20대라는 생각이 든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희정을 안아주고 싶었다. 꼭 바퀴에 구멍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애 같더라. 넘어져도 되는데, 넘어져서 하늘도 보고 들풀도 보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희정의 성장통이 영화의 중심축이지만, 영목(김현준)을 중심으로 한 자살클럽 이야기나 희정의 동생 희준의 이야기 또한 비중 있게 그린다.

=첫 장편이라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고 욕심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세 캐릭터 모두에게 내 모습이 반영됐는데, 희정이 열심히 살던 때의 나라면 영목은 좌절하고 절망해서 관성적으로 살던 때의 나라고 할 수 있다. 희정과 영목은 서로 대척점에 놓인 인물이다. 희정은 삶, 영목은 죽음, 희정은 빛, 영목은 어둠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동생 희준이 있는데, 희준은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찰자 역할을 한다. 세 인물의 입장과 태도와 시선이 제각각인 만큼 그들의 앙상블이 중요했다. 희정이 주인공이지만 세 캐릭터를 통해 20대의 모습이 다면적으로 보이길 바랐다. 이 영화는 20대라는 그 시절이 주인공인, 20대에 대한 영화다.

-치열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편입 준비를 하던 희정도, 영목과 희준도 나름의 실패를 경험한다. ‘실패’가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키워드 같았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도 실패할 수 있다. 20대 땐 특히 실패를 경험할 일이 많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반드시 실패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수적인 대구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20대 땐 나 역시 “치열하게 살아라”,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제는 좀 게을러도 괜찮다, 늦어도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다. 중요한 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는 거니까. 희정 역시 실패를 경험하고 난 뒤에야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배신당하지?’라는 생각을 한다. 생각 없이 앞만 보고 살던 희정이 비로소 ‘사고’라는 걸 하게 된다. 그러니 실패해도 괜찮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에도 특별히 신경 썼을 텐데.

=처음엔 사투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캐릭터를 얼마나 이해하고 잘 표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세영 배우가 자신은 반드시 대구 사투리를 쓰겠다, 그리고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겠다고 의욕을 보이더라. 그래서 사투리 연습을 오래 했고, 나중엔 현장에서 이세영 배우와 대구 사투리로 대화를 할 정도가 됐다. 그런데 영화에 달린 댓글을 보니까 사투리가 어색하다는 지적이 있더라. 나나 대구 출신 스탭들이 보기에 이세영 배우는 훌륭하게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다. 아마도 사람들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부산 사투리, 과장된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해져서 대구 사투리를 어색하게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꼭 말하고 싶다. 이게 요즘 젊은 친구들이 쓰는 리얼 대구 사투리다. (웃음)

-서울독립영화제2017 개막작 <너와 극장에서> 중 단편 <극장 쪽으로> 역시 대구 오오극장을 배경으로 한다. 두편 연속 대구 로컬 시네마를 찍었는데.

=지역영화의 발전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소속감 같은 건 전혀 없다. 다만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찍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동하는 것 같다. 내가 잘 아는 감정에 대해 찍고 싶은 것처럼 내가 잘 알고 있는 장소에서 찍고 싶고 그 장소에서 느껴지는 공기를 담고 싶다.

-두 번째 영화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생각인가.

=내 이야기를 충분히 한 것 같다. <수성못>으로 내 감정과 이야기를 다 털어낸 것 같다. 이제는 바깥으로 눈이 간다. 사회의 현상이나 타인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생기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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