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눈꺼풀> 오멸 감독 - 처방을 위장한 영화, 그럼에도 만들어야만 했다
2018-04-25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한국 독립영화의 두 얼굴①

이 지면에서는 독립영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두 감독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눈꺼풀>(4월 12일 개봉)의 오멸 감독과 <당신의 부탁>(4월 19일 개봉)의 이동은 감독이 그들이다. 척박한 제작 환경 속에서도 타협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이들은 올해 4월 극장가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눈꺼풀>의 오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 사회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수많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눈꺼풀>은 지나간 시간의 어둠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망자들이 찾는 섬, 미륵도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떡을 만들고자 하는 노인의 모습을 담은 <눈꺼풀>은 졸음이 쏟아지자 눈꺼풀을 잘라버렸다는 달마의 이야기처럼, 해소되지 않은 고통으로 잠 못 이루는 산 자들의 마음을 응시하는 영화다. ‘세월호 영화’ <눈꺼풀>을 만든 오멸 감독을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4월 16일이었다. 지난 3년간 이 영화를 개봉시키는 데 난항을 겪은 오멸 감독은 모든 방송에서 일제히 세월호 보도를 쏟아내는 올해 4월이 새삼스럽다고 했다. “원래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을 멈췄다가 이제야 한다는 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4월이라니. 반가운 마음보다는 묘한 기분이 앞선다.”

-<눈꺼풀>을 만든 지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로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개봉하는 게 쉽지 않을 거란 얘기가 많았는데, 이제야 영화를 개봉하는 소감은.

=개봉한다고 행복하진 않더라. 작가로서 좀 참담한 기분이 든다고 할까.

-왜 참담한가.

=만들어놓은 영화가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이제야 개봉한다는 게…. 극장을 잡는 게 감독의 소관은 아니지만 결국은 나 역시 내가 만든 영화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지 못하고 영화가 개봉하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를 그냥 인정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3일 뒤 <눈꺼풀>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완전히 배가 사라졌을 때였는데, 그때가 가장 미칠 것 같았다. 아이들이 배 안에 살아 있을 것만 같고. 그러다가 새벽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절구 사진을 보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절구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더라. 왜 그런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 절구에 무엇을 빻는가? 쌀을 빻아 떡을 만드는 것이다. 떡은 왜 만드나? 아마도 중요한 손님이 오기 때문일 것이다. 식량을 빻던 이 중요한 도구를 우리는 지금 왜 쓰지 않게 되었는가? 시스템이 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스템의 변화에 대해 생각하며 한국 사회의 기형적 성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했던 과거의 도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성장만 추구했던 우리 사회가 성장이 낳은 시스템의 기형적인 모습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세월호 사고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 거다.

-<눈꺼풀>을 무인도에서 촬영했다. 영화를 만들 때 공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작품은 어땠나.

=다도해에 위치한 무인도를 찾되 진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실종자를 한창 수색 중인 곳 근처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건 너무나 큰 결례니까. 가장 척박한 느낌의 섬을 찾았고 답사를 갔는데, 본격적으로 섬을 둘러보기도 전에 이곳에서 찍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어디선가 지독한 냄새가 나서 가보니 바위 사이에서 검은 염소의 사체가 부패하고 있고 근처 벽에 구더기가 들끓고 있더라. 보들레르의 시 <썩은 시체 더미>가 생각났다. 썩은 시체 더미를 보며 파괴된 사랑의 원형과 본질을 기억하겠다는 구절과 똑같은 풍경이 미륵도(오멸 감독이 붙인 이름)에 존재하고 있었다. <눈꺼풀>이 세월호 사고를 모티브로 삶의 원형과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작품인 만큼 영화에 더없이 걸맞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극중 어디선가 계속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는 소통의 수단이지만 이 영화에서 소통은 단절되어 있다. 떡집 주인은 울리는 전화를 받지 않고, 그가 누군가에게 거는 전화는 응답하지 않는다.

=일차적으로는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불통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좀더 나아가서, 떡집 주인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망자들로부터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에게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는 고통이다. 죽음의 전화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전화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닌 더 큰 존재라고 생각했다. <눈꺼풀>은 생명과 미물에서 시작해 더 큰 형태의 존재를 향해 질문을 던지기도, 질문을 돌려받기도 하는 영화여서 걸려오는 전화와 거는 전화의 방향성이 다르다고 봤다.

-미륵도의 생명을 주의깊게 촬영했다. 파리, 달팽이, 염소, 지네 등 다양한 생물들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섬에 살고 있는 생명을 조명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우리가 오히려 이상한 시공간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달팽이가 연기를 너무나 잘했는데, 물 한 방울 주니 가슴을 쭉 내미는 게 놀랍지 않나. 평소 우리가 기형화된 구조의 도시 속에서 살고 있다면 미륵도는 원초적인 생명을 그대로 간직한 삶의 원형에 가까운 공간이다.

-이 영화의 유일한 악역은 ‘쥐’라고 할 수 있겠다. (웃음) 노인의 절구를 박살내는 데 일조하는 캐릭터인데, 으레 ‘쥐’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지 않나.

=MB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쥐를 그 양반의 상징적인 형태로 볼 수도 있겠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쥐라는 동물은 어떤 곳에 불안이 닥칠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 가장 먼저 신호를 주는 동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쥐가 보낸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절굿공이가 부러진 건 쥐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절구가 깨진 데에는 노인의 책임도 있다. 시스템은 하나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고 모두가 같이 만들어내는 상황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절굿공이가 부러지자 노인은 섬에서 발견한 미륵 모양의 돌을 내리쳐 쌀을 빻으려 한다. 이 장면이 무척 강렬하다.

=세월호 참사 때, 군인과 해경이 손 놓고 있자 우리는 무엇을 했나. 제발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나. 부처의 머리를 찧어서라도 떡을 만들어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었던, 하지만 그것마저 허락지 않는 시간을 떠올리며 이 장면을 만들었다.

-JTBC <전체관람가>에서 제작한 단편영화 <파미르>를 보았다. 세월호 사고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파미르>와 <눈꺼풀>의 공통점은, 망자의 소원을 어떻게든 이뤄주고자 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이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이미 헤아릴 수 없기에, 남겨진 사람들은 더이상 죽은 자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 그저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허우적거릴 뿐이다. 나는 유가족들에게 우리 영화 보러 오라고 죽어도 말할 수 없다. 그건 그냥 바람일 뿐이지 그들의 지옥 같은 시간을 영화를 통해 완화할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위로의 방법을 찾은 거다. 그들의 아픔에 처방은 없다. 처방을 위장한 예술적 행위가 있을 뿐이다.

-해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인어전설>(2016)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모태펀드 투자를 받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창업투자회사에서 ‘조건부 승인’을 했다. 스크린 수 300개관을 확보하면 투자를 집행하겠다는 거였다. 총제작비 9억원 영화에 3억을 투자하면서 300개관 계약서를 받아오라는 게 말도 안 되는 얘기지. 모태펀드에서 투자받을 줄 알았던 3억원이 빠지는 바람에 결국 예산 부족으로 영화는 엉망이 되었다. 권력도 문제지만 하수인들의 횡포도 문제다.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차기작도 세월호 영화가 될 예정이다. 자세한 건 밝히기 어렵다. 조만간 시나리오를 쓰러 잠수를 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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