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life]
연극으로 돌아간 배우들의 공연 4선
2018-04-25
글 : 김송희 (자유기고가)
문화가 있는 날

지금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은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나온 게 아니라 대중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연극무대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며 여러 역할을 소화해왔다.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는 25년 만에 연극으로 돌아온 배우 최불암의 포스터로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현장에서 불편한 선배가 될까봐 한동안 연기를 쉬었다던 대배우는 극본이 주는 울림에 다시 무대를 선택했다.

또한, 배우 박철민은 스테디셀러 연극 <늘근도둑이야기>에 출연하며 ‘대표 도둑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아내 혹은 엄마로 드라마에서 익숙해진 배우 장영남과 서이숙, 예수정은 그리스 고전을 바탕으로 한 연극 <엘렉트라>에 출연한다. 강동호, 신보라가 출연하는 <젊음의 행진>도 4월에 주목할 만한 뮤지컬이다. 이 공연들은 문화가 있는 날 홈페이지(www.culture.go.kr/wday/index.do)를 통해 특별 할인된 가격으로 볼 수 있다.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기간 4월 18일∼5월 6일 / 장소 예술의전당 / 문의 02-580-1300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는 <하나코> <해무> 등에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탐구해온 김민정 작가의 창작극이다. 작가는 천문대에서 별을 보다 극작의 영감을 얻었다.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노인과 만나며 성장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소극장 세트를 블랙박스 구조의 소우주로 만들었고, 무대 위부터 관객석까지가 하나의 우주처럼 느껴지도록 극을 연출했다. 우주에서 지구가 한없이 작은 존재인 것처럼, 현대의 인간이란 먼지처럼 미미한 존재다. 우주에서 볼 때 빛나는 점에 불과한 지구, 여기 수많은 인간 중 작은 먼지에 불과한 나,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우주에서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는 난해한 질문을 평범한 인물들의 중첩되는 에피소드 속에 녹여낸다. 인간을 우주에 비교하면 한없이 작지만, 또 그래서 인간의 내부는 광활한 우주처럼 불가사의하다. 마치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의 이 문장처럼 말이다. ‘우주탐사선 1호에서 우주를 탐사하다 지구쪽을 촬영했을 때 명명한 이름, 지구는 수많은 별과 드넓은 우주 속에서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연극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불가사의한 노인 역할을 맡은 배우 최불암이다. 최불암은 2016년 <아인슈타인의 별>이라는 이름으로 초연된 연극을 보고 “이런 메시지를 담은 연극이라면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며 출연을 결심했다. 1993년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각색한 연극 <어느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연극 무대는 25년 만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연극 <해무>의 연출가 안경모와 작가 김민정 콤비가 다시 손잡은 창작극이다.

<엘렉트라>

기간 4월 26일∼5월 5일 / 장소 LG아트센터 / 문의 02-2005-0114

<엘렉트라>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를 살해하는 주인공 엘렉트라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딸이 아버지에게 애정을 품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여 반감을 갖는 경향을 가리키는 정신분석학 용어 ‘엘렉트라 콤플렉스’도 이 고전에서 비롯되었다. 장영남이 엘렉트라를, 그녀와 대적하는 클리탐네스트라를 서이숙이 맡았다는 점도 기대를 더한다. <맥베스> <리처드 3세> <세일즈맨의 죽음> <유리동물원> 등 영미 희곡과 고전을 연출해온 연출가 한태숙은 엘렉트라를 그리스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동시대의 총을 든 게릴라 여전사로 묘사한다. 엘렉트라는 정부군에 대항하는 게릴라들의 리더로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어머니 클리탐네스트라를 인질로 붙잡아 벙커에 가둔다. 엘렉트라에게는 그녀만의 ‘복수의 정당성’이 존재하지만 또 반대편에 선 어머니 클리탐네스트라 역시 자신의 논리로 이에 맞서며 두 여자 사이의 갈등은 깊어진다. 수없이 무대 위에서 재연되어온 화두, ‘과연 사적 복수는 정당한가’, ‘무력에 무력으로 맞서는 것은 타당한가’의 질문을 <엘렉트라>는 관객에게 던진다. 엘렉트라를 돕는 게릴라 역에 <신과 함께-죄와 벌>의 예수정이 출연하며 그외 베테랑 연극배우들이 다수 출연해 힘있는 무대를 완성한다.

<늘근도둑이야기>

기간 7월 31일까지 /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3관 / 문의 02-3672-0900

스테디셀러 시사 코미디 <늘근도둑이야기>는 초연 이후 해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폭넓은 관객에게 사랑받은 연극이다. 유쾌한 웃음으로 세태를 꼬집는 풍자극 <늘근도둑이야기>의 인기 요인은 아무래도 자주 호흡을 맞춘 ‘도둑’ 역할의 배우들일 것이다. 특히 박철민은 ‘대표 늘근도둑’이라고 할 만큼 이 역을 여러 번 맡았으며 배우 스스로도 이 연극에 대한 애정을 인터뷰를 통해 드러낸 바 있다. 박철민은 올해에도 ‘덜 늘근도둑’ 역할을 맡아 허풍과 거짓말로 능청스런 만담을 선보이고 있다. 대통령 취임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난 두 늙은 도둑이 노후 대책을 위한 마지막 한탕을 꿈꾸며 유명인의 미술관에 잠입한다.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권위를 자랑하는 ‘그분’의 미술관에는 세계적인 미술작품이 소장되어 있지만 작품의 가치를 모르는 도둑들은 오직 금고만을 노린다. 금고 앞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다 옥신각신 다투던 두 도둑은 결국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경비견에게 잡혀 조사실로 끌려간다. 있지도 않은 범행 배후와 사상적 배경까지 밝히라고 윽박지르는 수사관, 그의 앞에서 한심한 변명만을 늘어놓는 어리숙한 도둑들. 이들의 대화는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과정에서 진짜 이 사회의 도둑이 누구인지를 풍자하는 시사 코미디 연극이다.

<젊음의 행진>

기간 3월 13일∼5월 27일 / 장소 충무아트센터 / 문의 1666-8662

영심이와 왕경태가 어느덧 추억의 애니메이션 주인공이라니. 뮤지컬 <젊음의 행진>은 애니메이션 <영심이>의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되지만 이야기보다는 8090시대의 가요와 춤을 무대에 재현하는 데 더 공을 들인 뮤지컬이다. 천방지축에 실수투성이 여고생이었던 영심의 나이도 어느덧, 서른다섯. 공연 기획자가 된 영심은 한때 인기 스타였던 형부와 함께 콘서트 <젊음의 행진>을 준비하던 중 공연장에서 왕경태와 우연히 만난다. 과거를 추억하며 함께 공연을 준비하던 영심과 경태, 이들이 부르는 첫 번째 노래는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이어서 지누션의 <말해줘>와 송골매의 <모여라>, 윤시내의 <공부합시다>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과 박진영의 <허니>,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등 30여곡의 흘러간 가요가 흘러나온다. 오영심 역할에는 개그우먼 신보라, 안경태 역할에는 강동호 등이 캐스팅되었다. 동시대에 함께 듣고 즐겼던 음악을 뮤지컬로 즐긴다는 것에서부터 <젊음의 행진>의 타깃 관객은 명확하다.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시즌 때마다 사랑받았듯이, 언제나 10대에 들었던 음악의 힘은 강하다. 뮤지컬이라기보다 콘서트에 가까운 <젊음의 행진>은 딱 그 시대의 음악을 사랑했던 이들을 위한 공연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