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렛 더 선샤인 인> ‘이자벨’은 오늘도 ‘누군가’를 만난다.
2018-04-25
글 : 임수연

파리의 아티스트 이자벨(줄리엣 비노쉬)은 남편과 이혼한 후 진정한 사랑의 실체를, 특별한 사람과의 남다른 관계를 갈구한다. 은행가부터 직업배우, 마지막에 등장하는 점쟁이까지 다양한 군상의 남자를 만나지만 그들과의 인연은 원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끝맺음된다. 격렬한 숨소리로 시작하지만 이자벨에게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한 채 허무하게 종결되는 섹스를 보여주는 오프닝은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를 암시하는 단서다. 섹스 때문이든 정서적 교감의 문제든 이자벨과 남자들의 관계는 내내 덜컹거린다.

<렛 더 선샤인 인>을 이끄는 것은 주로 남녀의 끊임없는 대화 장면이다. 클레르 드니와 로맨틱 코미디의 조합도 생소하지만 대화의 형태에 영화의 성패를 건다는 점 역시 감독의 새로운 면모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크리스틴 안고트가 함께 쓴 시나리오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각색한 결과물이다. 클레르 드니는 “원작이 그렸던 극심한 고통의 컨셉을 기본적으로 따라간다”고 설명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원작과 차별화된다. 씁쓸하거나 황당한 코미디가 주를 이루고 이혼 후 자유로운 몸이 된 50대 여성 아티스트의 특수한 욕망을 구체화하는 데 보다 집중했다. 로맨스가 진전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의 결함에만 있지 않다. 낯선 자에게서 너무 쉽게 진정한 사랑의 여지를 발견하는 이자벨의 모습은 종종 코미디의 재료로 쓰일 만큼 황당하고,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한편 점쟁이를 연기한 제라르 드파르디외 등 여러 남자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원톱극을 이끌어간 줄리엣 비노쉬의 뛰어난 균형감이 돋보인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주저하거나 혼란에 빠지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등 감정 변화의 진폭이 큰 캐릭터지만 과장되거나 넘치지 않게 그려낸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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