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인가 퇴보인가. 과정인가 혼란인가. 71회 칸 국제영화제에 전에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개막 하루 전인 7일 오후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가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정을 굳이 추가한 건 올해 칸 영화제를 둘러싼 잡음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티에리 프레모는 이 날 기자회견에서 레드카펫에서의 언론 사전시사, 넷플릭스 등으로 대표되는 변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갈라 상영 이전에 있던 프레스 상영 시간을 갈라 상영과 동시 또는 이후로 변경한 것이다. 언론환경의 변화로 기사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라가고 빠르게 확산되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또한 레드카펫에서 찍는 셀피에 대한 지속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던 티에리 프레모는 올해는 셀피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넷플릭스의 테드 사라노스는 “앞으로 어떤 새로운 미디어가 칸의 타켓이 될지 모르겠다”고 평했다.
사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넷플릭스로 인해 비롯됐다. 작년부터 불거진 칸과 넷플릭스의 힘겨루기는 2막에 접어든 모양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대한 칸의 응답은 기본을 지키겠다는데 있다. 티에리 프레모는 개작 하루 전 회견에서 지속적으로 ‘영화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다. 흥미로운 건 칸 영화제 출품 철회를 선언한 넷플릭스의 컨텐츠 국장 테드 사란도스 역시 존중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테드 사란도스는 “경쟁부문 출품이 금지된 상황에서 비경쟁부문에 출품하는 건 작품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아니다”며 칸 영화제가 설정한 방향에 대해 날을 세웠다. 티에리 프레모는 단계적인 변화를 강조했지만 영미권 매체를 중심으로 고립을 자처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에 대한 존중의 방식, 어떤 영화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가 올해 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련의 흐름은 올해 칸의 면면을 장식한 영화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예년에 비해 이슈를 모으거나 압도하는 작품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신 장르, 세대, 미학적인 측면에서 고르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 4편의 프랑스영화에 미국, 이탈리아, 일본, 이란 영화가 각 2편씩 선정되었고 처음으로 경쟁부문에 초청된 감독도 7명으로 많은 편이다. <쓰리 페이스>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 <레토>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과 같이 자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출국이 금지된 감독들을 굳이 경쟁작으로 선정한 것 또한 상징적인 선택이다. 이와 같은 “과감하고 사회 참여적”(르몽드)이자 “최근 들어 가장 모험적이고 대담한 프로그램”(리베라시옹)이 가능했던 건 역설적이지만 넷플릭스와의 파워게임으로 인한 일종의 공백 덕분에 가능했던 도전일 수도 있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부분도 있다. 올해 칸의 화두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여성에 대한 존중이다. 올해 경쟁작에는 3명의 여성감독이 초청되는데 머물렀지만 심사위원단 등 영화제 측이 조정 가능한 조직 구성에는 남녀 동수 원칙을 이어가고 있다. 경쟁 부문 역대 11번째로 여성심사위원장인 케이트 블란쳇을 위촉했으며 9명의 심사위원 중 블란쳇을 비롯,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레아 세이두, <셀마>(2014)의 에바 두버네이 감독, 아프리카 브룬디 출신 가수인 카쟈닌 5명을 여성으로 구성한 것 역시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기자회견을 통해 “변화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성차별‧인종 다양성‧평등에 목소리를 내어 진정한 변화가 싹을 틔우겠다.”고 변화하는 칸의 선봉에 서 있다. 칸 영화제는 영화제 기간 동안 성범죄를 신고하는 전용 핫라인을 개설했고 12일 저녁에는 약 100여명의 여성영화인들이 레드카펫을 행진하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칸의 의지는 테리 길리엄의 저주 받은 꿈의 프로젝트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폐막작으로 선정한 것에서 정점을 찍는다. 법정 소송에 휘말린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5월 9일 법원최종결정에 따라 상영가능여부가 결정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칸은 테리 길리엄 필생의 프로젝트에 애정과 헌사를 보냈다. “칸은 언제나 논란의 가운데서 새로운 실험을 해왔다”는 티에리 프레모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긍정과 부정 양 쪽으로 동시에 읽힌다. 71회 칸영화제는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삐에로>(1965)의 한 장면을 공식포스터로 제작해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올해 경쟁부문에 장 뤽 고다르의 신작 <이미지의 책>을 초대했다. 시네마에 대한 최상의 존중은 끊임없이 영화를 만나고 발견하는 것이다. 12일간 이어질 실험의 결과가 시네마를 어디로 데려갈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