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콜럼버스>는 현대건축을 영화에 완벽하게 이식시켰다
2018-05-16
글 : 윤웅원 (건축가)
건축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

영화 <콜럼버스>(2017)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콜럼버스의 건물들에 대해서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하다. 영화잡지에 쓰는 글에 건축가 이름을 나열하며 건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왔지만, <콜럼버스>는 어쩔 수 없는 영화다. 건축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콜럼버스는 미국 현대건축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다. 중서부 농장지역에 위치한 인구 4만명의 이 작은 도시에는,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대부분의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했다.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콜럼버스에 자리 잡은 엔진 제작 공장의 소유주 J. 어윈 밀러가 만들어낸 독특한 건축 지원 시스템에 있었다. 공공건물을 설계할 때 밀러 재단이 선정한 리스트에서 건축가를 선택하면 설계비 전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에로 사리넨, I. M. 페이, 로버트 벤투리, 리처드 마이어, 시저스 펠리, S.O.M 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축가들뿐만 아니라, <콜럼버스>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나오는 데버라 버크, 제임스 폴 의 건물들이 콜럼버스에 지어졌다. 대략 1940년에서 1970년 사이에 지어진 60여개의 건물들은 콜럼버스를 ‘모더니스트 건축의 메카’ 혹은 ‘대평원의 아테네’라는 별명을 갖게 만들었다. 도시 자체가 일종의 모더니즘 건축 박물관이다.

위에 언급한 건축가 중에서도 <콜럼버스>에서 건축가 에로 사리넨은 특별히 의미를 갖는다. 영화에서 그의 작품이 제일 많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아버지 엘리엘 사리넨의 건물이 같이 나오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름 때문에 아버지 엘리엘 사리넨과 아들 에로 사리넨을 동일한 사람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두 건축가는 부자 사이다. 영화의 도입 장면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건물이 아들 에로 사리넨의 밀러 하우스고, 바로 다음 두 번째로 나오는 건물이 아버지 엘리엘 사리넨의 교회 건물이다.

1873년에 태어난 엘리엘 사리넨은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로 핀란드에서의 성공적인 경력을 뒤로하고 1923년에 미국에 이주했다. 핀란드에서 그의 건축이 장식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던 반면, 미국에서의 작업들은 초기 모더니즘 건축들에서 나타나는 경향처럼, 점점 더 단순한 형태로 변화되었다. 영화에서는 그의 교회의 입면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봐요, 입면이 비대칭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균형은 유지하고 있어요.”

영화에서 건물을 주제로 이러한 대사를 듣는 것은 꽤 흥미롭다. 엘리엘 사리넨의 교회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문의 위치와 십자가 표식이 오른쪽으로 몰린 비대칭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평면상 한쪽으로 치우친 예배당 내부 공간이 자연스럽게 입면에 드러난 결과이지만, 문 옆의 다른 크기의 유리창과 배경의 그리드 패턴 등 세심한 디테일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상쇄되었다. 대사 내용 그대로 비대칭이지만 여전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 건축을 비례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대칭의 시대를 지나 비대칭의 시대로 변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엘리엘 사리넨은 정확하게 두 시대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아버지 사리넨과 아들 사리넨의 건축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건축가인 경우는 흔한 일이지만, 둘 다 자신의 독자적인 건축세계를 이루고, 그것이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아들 사리넨은 1910년에 태어나서 1961년 경력의 정점에서 사망했다. 유럽의 변방인 핀란드에서 자란 아버지 사리넨이 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점에 있었다면, 미국인인 아들 사리넨은 모더니즘 건축의 한가운데 있었다. <콜럼버스>에서 나오는 그의 ‘밀러 하우스’와 ‘어윈 컨퍼런스 센터’가 모더니즘 건축적이라면, 그의 사후에 완성된 ‘교회’(North Christian Church)는 좀더 에로 사리넨적이다. 그의 건축의 특징을 센트 루이스의 게이트웨이 아크나 뉴욕 JFK공항의 TWA터미널처럼 미래파적인 형태언어 혹은 조각적 형태로 흔히 설명하지만, 콜럼버스의 교회는 구조에 대한 이성적인 해석을 통해서, 영화의 대사로 나오는 ‘영혼이 있는 모더니즘’으로 나아갔다고 설명할 수 있다.

엘리엘 사리넨과 에로 사리넨의 부자관계가 건축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반대로 에로 사리넨과 그의 아들 에릭 사리넨은 건축 때문에 멀어졌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서 2016년에 제작한 에로 사리넨에 대한 프로그램에서, 할리우드 촬영감독으로 일하는 아들 에릭 사리넨은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한다. 예술가 아버지를 미워하는 아들은 이제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그는 아버지 에로 사리넨이 가족보다 건축이 전부인 사람이었고, 자신과 아버지 사이에는 어떤 친밀감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 것을 미워했었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덧붙인 말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콜럼버스>는 강연을 위해 콜럼버스에 온 한국인 건축이론가가 갑자기 쓰러진 후, 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찾아온 한국계 미국인 진(존 조)과 어릴 때부터 콜럼버스에서 살아온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가 모더니즘 건축을 통해서 서로를, 아니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가 건축에 빠져서 자신을 소홀히 했다고 생각하는 진은, 의식불명 상태의 아버지 때문에 들어본 적도 없는 작은 도시에 발이 묶인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케이시는 약물중독 과거를 갖고 있는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콜럼버스를 떠나지 못하고 시 도서관 임시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케이시가 힘든 삶의 순간에서 찾은 것은 특이하게도 건축이다. 주변의 흔해빠진 건물들 사이에서 발견한 현대적인 은행 건물에서 그녀는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그 계기를 통해서 그녀는 음악이나 문학에 심취하는 것처럼 건축에 빠져들었다.

<콜럼버스>는 부모와 자식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건축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영화에서 건축의 피가 흐르는 부자의 관계는 진의 아버지와 케이시다. 진의 아버지의 강연을 기대했던 케이시는 진을 통해서 진의 아버지와 대화한다. 그리고 건축을 싫어했던 진도 케이시를 통해서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한다. 진은 아버지의 숙소에서 발견한 수첩 속 건축에 대한 메모들을 해독하려 하고, 케이시는 자신이 왜 콜럼버스의 건축들을 좋아하는지 진에게 설명한다. 아니 진과 케이시가 하는 대화의 상대는 건축 자체다.

영화는 케이시가 진의 도움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 콜럼버스를 떠나고, 진은 아버지의 곁을 지키기 위해 콜럼버스에 남으면서 끝이 난다.

나는 항상 영화에서 ‘건축가 건물’을 앞에 내세우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건축은 서사보다는 이미지로만 표현될 수밖에 없고, 또한 건축가의 개인적인 스타일이 현실에 바탕을 둔 서사를 방해한다고 생각해왔다. <콜럼버스>는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영화다. <콜럼버스>는 현대건축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사용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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