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데자뷰> 남규리 - 의외의 강인함
2018-05-22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데자뷰>에서 남규리가 연기한 인물 지민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영역을 시시각각 오가며 미스터리를 남기고, 끝내 애틋하게 사라진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인물인 지민을 연기하는 데 있어 배우 남규리의 실제 삶이 반영된 지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고, 강남 한가운데서 혼밥을 즐기고, 온라인 속 익명의 댓글에 무덤덤하다는 그의 말은 여리고 화사한 첫인상과 놀라운 괴리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몰랐던, 혹은 그사이 더욱 변모한 배우 남규리가 <데자뷰>를 통해 오랜만에 스크린을 찾았다.

-<고死: 피의 중간고사>(이하 <고死>, 2008) 이후로 장편영화의 주연은 10년 만이다.

=그동안 꾸준히 기다렸다. 기다리면 언젠가 내게 맞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확신이 강하게 있었던 것 같다. 또 <고死>의 경험을 통해서 영화가 매우 인간적인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여러 사람과 어울려서 작업하고 결속력을 다지는 현장의 분위기에 매료됐다.

-<데자뷰>의 개봉을 기다리는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잠을 못 잔다. (웃음) 이번 작품을 하면서 영화 작업에 엄청난 돈과 시간이 투자되고, 많은 스탭들이 삶을 걸고 일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책임감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런 것까지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감독님은 처음에 나를 두고 역할에 비해 성숙한 느낌이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첫 미팅 때 평소 모습대로 갔더니 사진과는 전혀 다르다며 놀라시더라. 솔직하게 “회사에서 인터넷 정리 조금 해줘야 하는 거 아녜요?”라고 물어보시기에 “그건 제 영역이 아니어서요”라고 했다. 평소에도 물 흐르듯 살려고 노력하고, 내 바깥의 일들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려는 편인데 그런 모습이 전달된 것 같다. 약하고 부서질 것 같은, 유리 같은 이미지지만 실은 ‘방탄 유리’인 사람을 찾고 있었다고 하시더라.

-얼핏 멜로에 어울리는 얼굴일까 싶지만 <고死>, <신촌좀비만화>(2014), <데자뷰>까지 꾸준히 장르물의 호출을 받았다.

=가수로 데뷔해서 약간은 팬시한 첫인상이 있는 것 같다. 그에 비해 막상 만나보면 의외로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이라는 데 매력을 느끼신 게 아닐까. 평소에 혼자 밥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의외로 멘털이 강한 편이다.

-그에 반해 지민은 환각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인물인데. 어려움은 없었나.

=매우 불완전한 인물이면서 스스로를 강박적으로 몰아붙이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하다. 처음 <데자뷰>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이동 중에 읽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대사가 나올 정도로 바로 몰입이 됐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준비할수록 점점 더 모르겠더라. 당시에 혼자 운전해서 매일 제작사를 찾아가 감독님과 만났다.

-교통사고의 환각과 약물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의 내면 세계는 어떻게 준비했나.

=약은 물론이고 술도 안 마시는 터라 자료 조사에 꽤 공을 들였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사이드 이펙트>(2013)는 루니 마라의 연기가 무척 훌륭해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봤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약물 중독 에피소드와 외국 다큐멘터리들도 참고가 됐다.

-나이대가 비슷한 이천희, 이규한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나.

=하나에 몰입하면 여러 가지 일을 못하는 성격이다. 분량도 많고, 어두운 역할이다 보니 현장에서도 내내 진지하고 침울했나보다. 나중에 들었는데 두 배우가 나를 피했다고 한다. (웃음) 물론 싫어서가 아니라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극한의 혼란을 느끼는 장면에서 세번 정도 거의 공황 상태에 가까웠던 적이 있었는데, 이규한 배우가 “너 이거 마지막 작품 아니야. 몸 잘 챙겨야 해”라고 다독여주더라. 일부러 나를 위해서 장난도 치고, 여유를 주려고 노력한 점이 고맙다.

-영화에서 지민은 주변 인물들과 신체적, 심리적으로 내내 대립하고 상처받는다.

=마냥 사랑받고 행복한 인물은 이입이 잘 안 된다. 드라마 <49일>을 찍을 때 행복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잘되지 않아서 김해숙 선생님께 도움을 구한 적도 있다. <데자뷰>에선 오히려 크게 발산하고 소리치는 연기가 힘들었던 편이다.

-지민이 겪는 초반의 환각 장면은 공포영화에 가깝기도 한데, 평소 담력은 센 편인가.

=처음 커리어를 공포영화로 시작해서인지… 실은 보면서 웃는다. (웃음) 오히려 카메라 뒤편에서 어떻게 연출했을지 상상하면서 즐거워하는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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