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곳에 끌려갔다. 도착하자마자 몽둥이로 맞았다. 강제로 평생 일만 했다. 도망가다가 잡히면 반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의 수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았다. 또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강제로 결혼해야 했다. 이들은 ‘서산개척단’이다.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1961년 국토개발사업에 강제 동원한 대한청소년개척단의 다른 이름이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을 기만했다. 전작 <블랙딜>(2014)을 통해 공공재 민영화의 폐해를 파헤친 이조훈 감독의 신작 <서산개척단>(2018, 개봉 5월24일)은 57년 동안 감춰진 서산개척단을 취재해 그 진실을 끄집어냈다. 서산개척단의 존재를 학교 선배인 이 감독에게 제보한 류일용 PD와 5년 동안 끈질기게 서산개척단을 추적해온 이조훈 감독과의 대화를 전한다.
-현재 KBS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 류일용 PD가 서산개척단의 존재를 이조훈 감독에게 제보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류일용_ 고향이 충남 서산이다. 가족이 농사를 지은 곳도 개척단이 있던 공간이다. 개척단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곳은 어릴 때 살던 동네와 가까웠고, 친구들도 많이 살았다. 집집마다 멀찍이 떨어진 보통 시골 마을과 달리 그곳은 시골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이 양쪽으로 붙어 있어 갈 때마다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왜 그 동네만 풍경이 다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이 동네에 아픔이 있다”라는 정도만 얘기해주셨다가 방송국 PD가 되고 난 뒤 다시 여쭤보니 “전국 각지에서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 집단생활을 했던 곳”이라고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다.
-그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
류일용_ 에이, 설마, 그랬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그분들이 도망가다가 붙잡혀 맞는 것도, 집 근처 묘지에 묻히는 것도 봤다고 했을 때 충격이 컸다.
=이조훈_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집단 수용됐었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놀랐다. ‘피해자들이 있다니 만나봐야겠다’ 싶어 류 PD의 아버님을 찾아가 당시 일을 자세히 얘기해줄 만한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버님의 소개로 영화의 주인공인 정영철, 김인, 이정남 세분을 만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이정남씨였다. 구호반 출신인 그는 끌려온 사람을 관리했던 까닭에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잘 설득해 논두렁에 앉혔는데 자세가 옆으로 돌아가 있었고, 얼굴이 카메라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정영철씨였다. 피해자인 그의 증언은 이정남씨와 반대였다. 황해도 연백 출신인 그는 한국전쟁 때 피난을 왔다가 한강다리가 폭파되는 바람에 어머니가 파편에 맞아 숨지고, 어머니 시체를 흑석동에 있는 어느 산에 묻은 뒤 기차를 탔다가 기차에서 떨어져 가족과 영영 이별하게 됐다. 구두닦이를 하면서 살다가 5·16 군사 쿠데타가 터지면서 개척단에 끌려오게 된 사연을 꺼내셨다. 김인씨도 넝마주이로 지내다가 먹고 살게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까지 끌려가게 되었다. 그들이 길거리에서 살면서 삶을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게 결국은 전쟁과 가난 때문이다. 국가는 그런 그들을 부랑아, 폭력배, 윤락녀라는 덫을 씌운 채 끌고 간 것이다.
-박근혜 정권 초기였던 5년 전만 해도 그들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이조훈_ 어르신들은 반신반의하셨다. 어디에 나오냐, 프로그램은 정해졌냐 같은 질문을 많이 하셨다. 극장용 영화(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고 말씀드리니 “KBS에서 방영되는 거 아니었어?” “<그것이 알고 싶다>여? <이것이 알고 싶다>여? (웃음)” 하시며 이해를 못하셨다. 50년 넘게 간지개척과 개간사업만 해오시던 분들이라 쉽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전에도 대학생들이 와서 인터뷰하고 갔지만 신문 기사 난 것도 없고, 누가 논문 쓴다고 하더니 논문도 안 보내주고, 이걸 열번도 넘게 얘기했는데 어디서 소식이 났는지 알 길이 없으니 자네도 대충하고 갈 거면 밥이나 먹고 가라”고 하셨다. <블랙딜>을 취재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들러 한분씩 만났다. 젊은 친구가 찾아와 질문하는 게 심상치 않았는지 그들은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류일용_ 아버지도 조심스러웠다. 몇 십년 동안 알고 있었지만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한 문제를 내게 ‘제발 다뤄달라’까지 얘기는 못하셨고, 그럼에도 누군가가 이 문제를 다뤄주길 바라셨다.
-다큐멘터리가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구호반 등 다양한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배치해 개척단 문제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류일용_ 고등학생 때 개척단을 포함한 지역 농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낸 적 있다(박정희 정권이 ‘가분배’라는 명목으로 서산개척단 335세대에 약 3천평씩 20년 상환조건으로 나눠줬지만 나중에 정부가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빼앗았다.-편집자). 당시 가해자, 피해자 할 것 없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시청에 몰려가 한목소리를 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들이 가진 고민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특히 가해자는 땅을 주겠다고 한 국가의 말만 믿고 이곳에 왔고, 나중에는 국가로부터 사기를 당했다. 그 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건 큰 의미가 없고, 구분하는 건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결국 개척단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잡아다 서산에 내려보낸 최종 결정권자에게 책임이 있다.
이조훈_ 이정남씨 같은 중간 관리자든, 정영철씨나 김인씨 같은 피해자든 그곳 농민들이 왜 동지가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눌까 했는데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누기에 그들이 가진 사연이 복잡했다. 개척단 사람들을 피해자, 중간 관리자, 민정식 단장의 손발이었던 손연복씨 같은 관리자, 민정식 단장 같은 배후자로 나눌 수 있다. 이야기 초반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반된 증언을 구분해 보여주다 울산에 살던 이상범씨의 인터뷰를 기점으로 이분법적 구분이 하나로 모아지게 된다. 위아래를 관통하는 중간자로서 그는 아직도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줄곧 부인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는데 그때 무척 놀랐다.
-이상범씨가 끝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얘기하면서 눈물 흘리는 장면은 영화적인 순간이었다.
이조훈_ 카메라가 줌아웃을 하다가 갑자기 줌인을 한다. 카메라 감독도 놀란 거다. 컷 하고 다시 갈까 하다가 우리가 느낀 감정까지 전달이 된 것 같아 그냥 가기로 했다. 1분가량 눈물 흘리는 걸 지켜본 뒤 조심스럽게 왜 울었냐고 물어보니 “죽은 친구들이 생각난다”며 계속 우셨다. 사람들을 관리했건, 그들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동원되거나 사실을 묵과했건 간에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게 중요한데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자기 손으로 그런 일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얼마나 부정하고 싶었을까. 온전한 마음까지 그걸 부정할 수 없으니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감정이 이 공동체 안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감정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피해자들에게 서산개척단을 소재로 한 연극 <언덕을 오르는 마삼식을 누가 죽였나>를 보여준 이유가 무엇인가.
이조훈_ 영화로서 당시 상황의 무엇을 더 보여줄 것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사진이나 자료영상밖에 없었다. 현장감 있게 보여주는 방식은 재연일 텐데
-서산개척단 민정식 단장을 추적하는 이야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영화에선 비중 있게 다뤄지진 않더라.
류일용_ 과거 그가 마을에 올 때마다 서슬이 퍼렜다고 한다. 동네 유지를 비롯해 모두 그를 보면 벌벌 떨었단다. 국가사업을 위탁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걸로 벌어들인 돈을 빼돌린 사람으로 모든 악행의 정점에 있었다. 어떤 인간인지 궁금했었는데 감독님이 추적을 많이 했더라. 마을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좀더 밝혀줬으면 하는 기대감이 컸던 것 같다.
이조훈_ 당시 민 단장의 아들 민병철은 개척단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쳤고, 교재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남미에 위치한 파라과이에 가서 간척지를 개간하자고 꼬드기면서 말이다. 개척단 사업을 끝내 완수하지 못한 민정식 단장과 민병철이 파라과이까지 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파라과이 한인회에 민정식 단장, 그의 아들 민병철, 조카 민병수 삼각 라인이 있는지 확인해보니 없었다. 미국 LA한인회에 민병철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해서 확인해보니 역시나 아니었다. 민병수가 나중에 경찰서장을 했던 탓에 퇴직 경찰관 모임인 경우회에도 알아보았는데 의심이 가는 세명을 압축했지만 개인 연락처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민 단장을 찾는 데 실패한 취재기를 보여줄까, 아니면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정체를 자세히 드러낼까 방향을 정해야 했다. 그래서 민 단장의 심복인 손연복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증명하고, 민 단장의 족적은 미스터리로 남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감독이 목소리로만 등장하다가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국회도서관에서 <프레이저 보고서>를 찾아내 박정희 정권과 부역자들이 미국 원조사업 PL480에 따라 어마어마한 원조금을 받았고, 그 돈을 공화당 정치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이조훈_ 개척단에서 강제로 노동하던 그들이 민주화가 된 뒤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하게 된 건 국가가 독려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짧게 언급한 대로 어르신들은 국가로부터 또다시 사기를 당했다. 그때까지 국가가 PL480을 이용해 자신들을 완전히 착취했다는 사실까지 알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자마자 어르신들에게 달려가 그들이 알기 쉽게 일장연설을 했다. 어르신들은 “아, 그래서 미국이 했건, 박정희가 했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당했잖아” 그러시는 거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과거니 말을 하지 않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국가로부터 사기를 당한 거네, 안되겠다, 청와대로 가자”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된 거다. 인터뷰를 처음 할 때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가 잘못한 걸 잘 해결해주시겠지”라고 말했다가 영화 마지막에는 “박정희가 (경제를) 살렸다고? 개뿔”이라는 반응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그들의 역사를 재구성한 거다.
류일용_ 농민의 억울함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인데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놀랐다. 이 모든 일이 정부의 계획대로 자행됐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였던 것 같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어르신들의 반응이 어땠나.(<서산개척단>은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편집자)
이조훈_ 총 9분이 오셨다. 지난 5년 동안 그들과 공감했고, 그들 또한 이제는 자신의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서산개척단은 큰 문제였고, 전국 140개 사업장 중 하나며,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2015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자 100여명을 인터뷰해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출간해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작은 영웅들이 얘기한 각각의 역사들은 재구성되면서 발견되고, 큰 틀에서 생략됐던 개개인의 역사의 디테일이 복원되면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영웅들의 역사를 재구성해주는 게 작가의 몫이다.” 나 또한 그의 말대로 어르신들의 증언을 충실히 전달하려고 했다. 감독으로서 개입할 수밖에 없을 때 카메라 앞에 들어가 <프레이저 보고서>를 찾아냈고, 나중에는 어르신들이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하러 갈 때는 활동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변호사들과 국제법으로 소송이 가능한지 따지고 있다.
류일용_ 첫 제보자이지만 이 감독에게 큰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에 제작했던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거나 프로젝트가 중간에 엎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조금 있었다. 전주에서 영화를 보신 아버지는 현실은 영화보다 더 잔인했는데 그걸 좀더 극적으로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의견을 주시기도 했다. 어쨌거나 결과물을 내놓은 것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국민적으로 관심이 높아지면 이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다음 프로젝트는 뭔가.
이조훈_ 긴 시간 준비해온 프로젝트가 있다. 아직 밝힐 수 없다. (류일용을 쳐다보며) <1박2일> 멤버들이 영화가 개봉한 주에 서산으로 여행가는 건 어때? (일동 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