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의 한 철>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 “차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국가다”
2018-06-07
글 : 김소미 | 사진 : 오계옥 |
<프랑스에서의 한 철>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 “차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국가다”

“마치 질병처럼 영화의 바이러스에 전염됐다.”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과의 대화에서 받은 의외의 놀라움은 그가 갖은 역경 속에서 오히려 낭만의 언어를 키워온 점이었다.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은 세계 최빈국이라는 고단한 수식어와 함께 지난해에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국 금지 조치로 몸살을 앓은 아프리카 차드공화국 출신 감독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다라트>(2006),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절규하는 남자>(2010) 등 세계 영화계 내의 인지도 면에서 볼 때 여전히 차드의 ‘유일한’ 영화감독으로 불리기도 한다. 올해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초청된 신작 <프랑스에서의 한 철>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삼은 그의 첫 번째 작품. 종교 분쟁을 피해 두 자녀를 데리고 프랑스로 건너온 압바스와 그의 연인 캐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이미 두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적 있는 이력을 두고 “다음 생에는 한국인으로 환생할 모양”이라며 웃었다.



-<프랑스에서의 한 철>은 차드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당신의 자전적인 스토리가 일부분 반영된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작은 신문 기사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차드의 한 남성이 프랑스에 난민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고, 이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실패해서 결국 분신자살한 내용이었다. 나 역시 차드의 오랜 내전(1960년에 프랑스에서 독립한 후 이슬람교가 대다수인 북부와 기독교를 믿는 남부 사이의 종교 갈등이 극심해졌다. 오랜 내전과 학살, 1980년대 들어선 이센 아브레의 독재 정권은 살레 하룬 감독이 피부로 겪은 차드의 가장 큰 비극이다.-편집자)을 피해 나라를 떠나온 난민이라는 점이 영화를 만드는 강한 동력이 됐다.



-10대 시절에 차드 내전을 피해 파리로 가게 된 자세한 과정이 궁금하다.



=탈출 과정에서 오발탄이 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아버지가 나를 수레에 싣고 카메룬과 인접한 국경지대의 강을 건넜다. 그 직후부터 나는 공식적인 난민이 된 거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무일푼 상태였는데, 내 바지 주머니에 파리의 영화학교 주소가 적힌 쪽지가 있더라. 당시로부터 2년 전쯤, 잡지에서 프랑스 유학 중인 아프리카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기사 하단에 학교 주소가 있기에 찢어서 넣어두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지. 난민 생활의 절박한 순간에 쪽지를 발견하면서 이게 운명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에 도착한 후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병원에서 야간 근무를 했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많은 청년들이 그렇듯이 가능한 한 낭만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저널리즘 공부를 하고 기자 생활을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영화학교 주소가 적힌 잡지를 찢어서 보관할 정도면 어릴 때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9살 때 처음 영화와 만났다. 삼촌이 나를 극장에 데리고 갔다. 당시는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외부 세계의 그 어떤 이미지도 접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야외극장에 모인 500명 정도의 관객에 둘러싸여서 발리우드영화를 봤다. 카메라를 향해 웃는 인도 배우의 클로즈업이 스크린에 등장한 순간, 짧은 몇초간이었지만 그녀가 꼭 나를 향해 웃는 것 같더라. 그 여인과 그리고 영화와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다.



-1999년 <바이 바이 아프리카>로 데뷔한 이래 여전히 차드와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꼽힌다. 세계 영화계에 차드의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늘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어떤 면에서 나는 약간 고립되어 있다. 가끔은 혼자서 가정을 책임지는 연장자의 마음가짐 같은 것을 느낀다. 내가 차드의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차드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세계 영화산업을 큰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면, 나는 그중에서도 매우 작은 나만의 악기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당신의 영화는 늘 차드의 현재를 재현해왔는데, 이번 <프랑스에서의 한 철>은 처음으로 유럽을 배경으로 찍었다.



=이제 프랑스에서 살게 된 지 30년이 넘었다. 영화에는 만든 사람의 기억이 자연스레 담길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영화에 난민이 등장하면 난민으로서 처하는 어려움 외에 다른 삶은 아예 없는 것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난민들에게도 일상적이고 내밀한 생활에서 보이는 진짜 얼굴이 있다. 이런 시각이 개개인이 겪는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를 가까이서 보여주기에 더 적합한 방식이라 생각했다.



-<다라트> <절규하는 남자> 같은 대표작에서 드넓고 황량한 아프리카의 풍경을 정제된 이미지 속에 담아냈다. <프랑스에서의 한 철>에서도 카메라가 매우 신중히 움직이고 롱테이크숏 역시 돋보인다.



=사실 이번 영화는 기술적인 면에서 그동안과 차이점이 있었다. 차드에선 거의 모든 장면에서 광활한 공간감을 다뤘던 반면,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을 땐 좁은 장소에서 촬영하는 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했다. 로케이션이 좁을 때는 카메라 위치에 약간의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그 밖에 내가 노력하는 부분은 모든 얼굴이 각각의 풍경으로 전달되는 일이다. 사계절의 이미지처럼 감정과 분위기가 천천히 보였으면 한다. 그제야 비로소 인물이 처한 극심한 고뇌(anguish)가 전달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0년에 <절규하는 남자>가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후 영화산업을 바라보는 차드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나. 2013년에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영화학교 개설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내비치기도 했는데.



=칸 수상 직후에 차드 정부와 영화학교 건립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통신 세금의 일부를 떼와서 영화 지원 사업에 투자하는 방안도 추진되었고. 이후 학교를 세울 부지까지 정했는데, 유가 하락이 지속되면서 현재는 계획이 중단된 상태다. 2017년 2월부터 1년간 차드로 돌아가 문화부 장관으로 일했다. 예산 부족으로 기대했던 프로젝트를 추진하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방안을 찾는 중이다.



-<프랑스에서의 한 철>은 프랑스영화계의 제작비 지원이 있었나.



=배경이 프랑스이긴 하지만 내 영화는 근본적으로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행히도 프랑스 정부는 예술 작품을 개방적인 태도로 받아들인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와 두개의 텔레비전 방송국으로부터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신 말대로 이번 영화에서는 이주민을 배척하는 냉혹한 유럽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난민과 외국인 노동자 등 이방인을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정치적인 구호들이 곳곳에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류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다. 인류의 이동과 흐름을 막거나 제어하는 것은 내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주 단순하게 접근해서 초창기 인류는 사는 곳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나. 그런 자연의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은 다시 차드로 돌아가서 찍을 계획인가.



=차드에서 불법인 낙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중이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15살 소녀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부조리한 시스템 아래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나온다. ‘링기’라는 차드의 전통적 개념과 연결해보고 싶기도 한데, 링기란 특히 여성간의 단단한 의리, 유대감을 칭하는 개념이다. 깊이 있는 앎, 신뢰, 변하지 않는 마음을 통해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관계를 등장시키고 싶다.



-그동안 일관적으로 남성 중심의 서사를 구축해왔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서고, 그들의 세계를 너르게 그리는 첫 번째 시도가 될 것 같은데. 변화가 흥미롭다.



=장관직을 위해 1년간 차드로 돌아가 있을 때 차드의 여성들, 특히 어린 소녀들이 어떤 생활 속에 놓여 있는지 보게 됐다. 사소한 예를 들어 차드는 50% 이상이 이슬람교인데, 이슬람교 여성들은 낮에는 히잡을 쓰고 살지만 밤에는 몰래 히잡을 벗고 클럽에 놀러 가기도 한다. 거기엔 오로지 개인의 독자적인 세계와 자유에 관한 문제가 얽혀 있는 거다. 모든 여성에 대한 헌사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