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대저택>(1961)
매혹적인 저택에서 어린이가 등장하는 후대의 심령물들은 대부분 헨리 제임스의 중편소설 <나사의 회전>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중 잭 클레이턴 감독의 <공포의 대저택>은 <나사의 회전>을 직접 각색한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영화다. 기든스(데버러 카)는 몇년 전에 고아가 된 두 아이의 삼촌(마이클 레드그레이브)으로 부터 남매를 돌봐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교구 목사의 딸이자 무엇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에게 블라이 저택의 가정교사 자리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기든스는 주변 경관까지 매혹적인 이 저택에서 만난 소녀 플로라(파멜라 프랭클린)는 물론 가정부 그로스(멕스 젠킨스)를 비롯한 저택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낀다. 다만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후 집으로 돌아온 소년 마일스(마틴 스티븐스)가 걱정이었는데, 막상 접한 그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자꾸 저택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보이고, 플로라와 마일스가 기이한 행동을 하거나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구는 일이 늘어난다. 그리고 기든스는 그로스로부터 과거 이곳의 집사였던 퀸트(피터 위가드)와 가정부 제슬(클리티 제솝)이 서로 사랑에 빠졌었고, 퀸트가 죽은 후 비통에 빠진 제슬이 호수에 빠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기든스는 집 안에서 보이는 유령들이 이들이라고, 퀸트와 제슬의 혼령이 아이들에게 빙의되어 아이들을 해치려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결국 기든스는 마일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저택에서 나가게 만들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마일스와 단둘이 독대하게 된다. 기든스가 남내의 삼촌에게 강하게 이끌리는 원작의 설정은 거의 지워졌지만, 여전히 기든스는 유령의 형태로 등장하는 퀸트, 심지어 어린 마일스와도 섹슈얼한 긴장감을 조성하며 매혹적인 호러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악마의 씨>(1968)
어린이 혹은 갓난아기를 매개로 악이 전이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일상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작품의 시초. 그리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었다. 로즈메리(미아 패로)는 배우로 활동하는 남편 가이(존 카사베츠)와 이제 막 아파트로 이사 왔다. 기대 이상의 조건을 갖춘 새집에 부부는 만족하고, 이웃의 노부부는 그들에게 먼저 저녁 식사 자리를 제안하는 등 친절을 베푼다. 하지만 노부부가 이상한 맛이 나는 디저트를 로즈메리에게 권하고 로즈메리가 악마에게 겁탈당하는 꿈을 아주 생생하게 꾼 이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날 이후 임신을 한 로즈메리는 오히려 체중이 자꾸 줄어들고, 노부부가 소개해준 산부인과 의사 사피어스테인의 조언대로 시중에 파는 비타민 대신 노부부 중 아내인 미니(루스 고든)가 만들어주는 음료만을 먹는데 오히려 건강이 안 좋아진다. 임신을 한 로즈메리는 영화 초반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허치가 전해준 <악마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보게 되고 노부부가 악마의 추종자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이 낳을 아기가 악마를 위해 희생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자신의 진료를 봐준 사피어스테인도 믿을 수 없는 사람임을 알고 다른 의사를 찾아가지만 그는 로즈메리를 정신병자로 취급한다. 결국 로즈메리가 노부부는 물론 남편까지 가담한 악마의 추종자들의 계략에 희생되어 사탄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악마의 씨>에서 악령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거의 없다. 대신 로즈메리의 임신부터 출산에 이르는 과정을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할애해 보여주면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산모의 두려움까지도 호러의 중요한 조각으로 만든다. 국내 비디오 발매명 <악마의 씨>(원제는 <로즈메리의 아기>)라는 제목은 사실 영화 마지막에야 드러나는 진실을 미리 밝히는 명백한 ‘스포일러’다.
<위커맨>(1973)
얼마 전 약혼을 하고 아직 동정의 몸인 독실한 크리스천 하위 경사(에드워드 우드워드)는 12살 소녀 로원 모리슨(게리 코퍼)의 실종 사건을 수사해달라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섬머아일섬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그가 겪는 일은 황당함의 연속이다. 소녀가 실종되어 찾아왔는데 마을 주민들은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하고, 원래 존재했던 인물임을 하위가 밝혀내고 살인을 의심하자 공식적인 사망 신고서를 찾을 수가 없단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무덤을 찾았지만 그 안에는 시체가 없다. 더군다나 이곳은 제대로 먹을 만한 음식조차 없고, 나체의 소녀들이 춤을 추며 성교 없이 잉태를 하는 처녀 생식을 기원한다. 마을에서는 인간의 생명이 다하면 나무나 공기, 불이나 물, 동물로 환원된다고 믿으며 기독교나 부활의 개념을 거부한다. <위커맨>에서는 독실한 기독교인 하위가 추구하는 상식과 신념이 거의 조롱에 가까운 태도로 전복된다. 5월 축제를 준비하는 섬머아일섬의 주민들이 부르는 노래는 음탕한 창녀를 조롱하거나 소녀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멜로디는 무척 경쾌하고 서정적이다. 마치 원시시대처럼 흉작을 이겨내기 위해 신성한 제물로 산 사람을 희생시키는 의식이 존재한다는 예상 가능한 전말 뒤에 허를 찌르는 반전이 하나 더 숨어 있다. 결국 로원의 실종은 극도의 흉년을 이겨내기 위해 더 강력한 제물로 뭍에서 온 하위를 바치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거대한 음모였음이 밝혀진다. 풍요를 위한 제물이 된 하위가 죽기 직전 마치 섬머아일의 비뚤어진 믿음처럼 자신 역시 예수처럼 부활할 것이라고 소리치는데, 스스로가 올곧고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던 그가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광기가 영화의 섬뜩한 정서를 폭발시킨다.
<쳐다보지 마라>(1973)
교통수단으로 수로를 이용하는 베니스의 특성이 어떤 작품보다도 스산하게 승화된 작품. 존(도널드 서덜런드)의 딸 크리스틴은 빨간 우비를 입고 물에 빠져 죽었다. 그리고 존은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상한 사람처럼 사건 현장으로 뛰쳐나갔다. 상실의 아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존과 그의 부인 로라(줄리 크리스티)는 런던을 떠나 베니스로 오게 되는데, 이곳의 한 식당에서 어딘가 수상한 할머니 자매와 안면을 트게 된다. 둘 중 동생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 영혼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영매라고 소개된다. 이 자매는 로라에게 크리스틴이 부부와 함께 있다고 전하는데, 로라는 이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는 반면 이성적인 존은 믿지 않으려 한다. 심령술사 자매는 딸이 죽던 날 존이 뭔가를 알았다는 듯 뛰쳐나갔던 것도 아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존이 계속 베니스에 있으면 위험하다고도 경고한다. 존은 그들의 말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수로 주변에서 물에 빠져 죽은 딸의 혼령을 보는 초현실적인 상황을 자꾸 겪는다. 그리고 존이 베니스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영매의 경고는 그를 위한 진실된 예언이었음이 결말부에 밝혀진다. 겉으로는 이성적으로 보였던 존이 겪는 내적 혼란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편집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영화의 반전은, 그 내용보다 이어지는 압도적인 플래시백 때문에 잔상을 남긴다. 무엇보다 부부가 알몸으로 관계를 맺는 컷과 옷을 입는 장면이 교차되어 편집된 정사 장면이 매우 인상적인데, 이것이 원래 계획에도 없었을뿐더러 실제 정사였다는 구설이 있었다. 당시 줄리 크리스티도 계획에 없던 촬영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이 논란은 수십년 후에야 도널드 서덜란드에 의해 실제 정사가 아니었다고 해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