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변산> 눈에 밟혀 자꾸 돌아보게 되는 고향
2018-07-04
글 : 송경원

고향이라는 단어에는 상반된 울림이 뒤섞여 있다. 지긋지긋해 도망치고 싶다가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학수(박정민)는 어머니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던 건달 아버지와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래퍼의 꿈을 키우고 있다. <쇼미더머니> 도전만 6번째, 계속된 탈락에 지칠 무렵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많은 것이 변했다. 자신을 남몰래 좋아했던 선미(김고은)는 작가가 되었고, 자기가 괴롭혔던 친구 용대(고준)는 건달이 되었으며, 자신의 시를 훔쳐간 교생 원준(김준한)은 지역신문기자가 되어 나타난다. 흑역사와 차례로 마주한 학수는 도망칠 곳이 없다.

영화는 세련된 연출과는 거리가 있다.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이 수시로 삽입되는 탓에 극적인 긴장감이 고양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형식적인 야심과는 거리가 먼 이 평이함이 도리어 보는 이의 마음을 잡아끈다. <변산>은 눈에 밟혀 자꾸 돌아보게 되는 고향을 닮았다. 전반적으로 오래된 농담 같은 감성으로 넘쳐나는데 이를 촌스럽다고 느낄지 귀엽다고 받아들일지에 따라, 고향의 포근함에 젖어들지 지긋지긋함으로부터 도망칠지가 결정된다.

이준익 감독의 연출은 언제나 정직하고 투박하게 스트레이트를 뻗는다. <변산> 역시 그에 따른 장단이 선명하다. 청춘을 위무하는 따뜻한 이야기는 유쾌한 웃음으로 감싸여 있고 몇몇 대사는 진하게 각인될 만큼 좋다. 반면 지나치게 설명이 많고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 몇몇 캐릭터들은 평평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럼에도 이런 아쉬움들이 영화를 크게 방해하지 않는 것은 온기의 방향이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투박하게 툭 던지는, 에둘러 가지 않는 진심이 층층이 쌓여 변산의 노을마냥 번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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