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 세츠코(데라지마 시노부)는 직장에 근속하며 가족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살아간다. 아마 ‘루시’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며 늙어갔을 것이다. 어느 날 조카의 권유로 영어학원에 등록한 그녀는 유독 ‘허그’를 좋아하는 미국 강사 존(조시 하트넷)을 만난다. 가벼운 인사에 불과할지 모를 존의 포옹은 그녀에게 강렬하게 다가온다. 존이 붙여준 이름 루시와 노란 가발로 세츠코는 전에 없던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후 세츠코의 행동은 일종의 해프닝에 가까워 보인다. 세츠코는 LA로 떠난 존을 찾아나서고, 그곳에서 존에게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문제는 상대의 반응이 아랑곳없다는 데 있다. 세츠코의 집착에 가까운 행동은 마치 자신의 상황을 좀 봐달라는 절박한 외침처럼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 세츠코의 출근길 지하철, 역내 방송에서는 ‘위험하니 흰색 선 안으로 물러나 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그 ‘안전선’ 안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던 그녀는 난생처음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 따른 모험을 했다. 이후 그녀의 남은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히라야나기 아쓰코 감독이 미국 교환학생 시절 느낀 소외감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단편을 발전시킨 작품. 데라지마 시노부의 표정 하나하나가 판타지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세츠코의 리얼한 현실을 드러내준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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