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서 제주도로 떠나온, 혹은 돌아온 사람들은 무언가 필사적으로 잊으려고 한다. <그림자 먹는 개>의 제주 역시 바다 냄새와 바람의 감촉이 선연한 안식처를 내어주며 망각을 종용한다. 문제는 나모(김남오)가 비대해진 자의식을 지닌 채 고립을 자처하는 예술가라는 점에 있다. 그가 컴컴한 암흑으로 가득한 뒤주를 열어보는 모호한 오프닝 이미지와 같이 영화는 마음 한켠에 봉인해둔 어떤 상자를 열어서 그 안쪽을 고통스럽게 바라본 뒤, 다시 조용히 뚜껑을 닫기까지의 심리적인 여행기다.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한인 화가인 그는 오랜만에 한국을 찾아 전시를 준비하는데, 수익에 목마른 미술품 딜러인 문수(방중현)의 권유로 전에 없던 비즈니스 일정을 소화하느라 고되다. 그에게 선뜻 자기 방을 내어준 이는 배우 서갑숙이 1인2역을 연기한 갑숙이라는 인물.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나모는 자신을 위해 묵묵히 희생한 아내(서갑숙)의 외로움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떠나보낸 아픈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은 제주에 당도한 이후 색과 소리가 제거된 답답한 꿈으로 발현된다. 말로 설명하지 않는 대신 표현주의적인 이미지의 힘을 믿는, 약간 촌스러운 동시에 어쩔 수 없이 귀한 영화다. 중국의 한인 미술가 1세대로 알려진 김남오 작가가 배우로 변신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2003)의 미술을 담당했던 최나니 감독의 데뷔작이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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