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너와 극장에서> 유지영·정가영·김태진 감독 - 누구나 자기만의 극장이 있다
2018-07-05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정가영, 김태진, 유지영 감독(왼쪽부터).

누군가는 극장을 가다 미로 같은 길 속에 갇히고, 누군가는 극장에서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관객과 싸우고, 누군가는 극장이라는 낙원에 숨어버린 후배 직원을 찾아다니느라 진땀 뺀다. 옴니버스영화 <너와 극장에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극장이라는 공간을 공유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극장/영화를 사유한다. 유지영 감독의 <극장쪽으로>, 정가영 감독의 <극장에서 한 생각>, 김태진 감독의 <우리들의 낙원>이 <너와 극장에서>라는 제목의 옴니버스영화로 개봉한다. <너와 극장에서>는 서울독립영화제의 독립영화 차기작 프로젝트 인디트라이앵글을 통해 완성된 다섯 번째 작품이다. 서울독립영화제가 2008년부터 진행한 지원사업 인디트라이앵글은 젊고 유망한 감독을 발굴해 단편 제작을 지원하고, 이를 장편 옴니버스로 개봉·배급하는 프로젝트다(2017년 프로젝트인 <너와 극장에서>에는 네이버가 제작 및 배급·개봉지원금 5천만원을 지원했다). 인디트라이앵글을 통해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세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유지영, 정가영, 김태진 감독을 만나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엿보았다. 동갑내기 정가영 감독과 김태진 감독의 티격태격 속에, 솔직한 고백과 귀여운 농담이 편히 오간 그날의 대화를 전한다.

-극장이라는 공통된 제시어로 시작했지만 사뭇 다른 세편의 영화가 완성됐다. 서로의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들려준다면.

=김태진_ 1차 편집 시사 끝나고 기분이 좋았다. 세편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았다. 소심한 성격이라 면전에서 말을 잘 못하는 편인데, 그날 집에 돌아가서 문자를 보냈다. 영화 좋았다고.

=유지영_ 그 문자를 나한테만 보낸 게 아니었구나?

=정가영_ 난 문자 받은 기억이 없는데?

김태진_ 유지영 감독에겐 그날 바로 문자를 보냈고, 정가영 감독한텐 그날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나서 문자를 보냈다. (웃음)

정가영_ 장편 <비치온더비치>(2016), <밤치기>(2017) 등을 만들었다. 발칙하고 도발적인 대사로 채워진 롱테이크, 영화 속 정가영 캐릭터를 직접 연기하면서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특징들이 <너와 극장에서>의 두 번째 에피소드 <극장에서 한 생각>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극장에서 한 생각>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정가영 감독(이태경)의 이야기와 유부남과 몰래 극장 데이트를 즐기는 정가영 감독(정가영)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정가영_ 극장이라는 제시어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내가 만들 수 없는 영화를 두분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영화 세편이 묶여 있어서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는 옴니버스로 완성된 것 같다.

유지영_ 정가영 감독의 영화는 재기발랄하고 당돌한 매력이 있고, 김태진 감독의 영화는 이전에 만든 단편영화처럼 여자주인공을 섬세하게 다루는 게 눈에 띄었다.

-서울독립영화제 인디트라이앵글 제작지원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된 건 ‘극장’이라는 제시어가 마음에 들어서였나.

정가영_ 각 영화에 1천만원을 지원해주는 그 기회가 감독들에겐 소중하다. 어떻게든 아이디어를 쥐어짜서 시나리오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극장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까운 주제이긴 하지만 막상 그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려니 어렵더라. 그러면서 이런저런 경험들을 떠올렸다. 영화 끝나기 5분 전에 극장을 나와서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다른 관에 몰래 영화 보러 들어갔던 적이나, <곤지암>을 청소년 요금으로 표 끊었다가 극장 직원이 ‘청소년 맞으세요?’ 하고 물어봐서 <곤지암>보다 더 무서운 상황을 경험했던 일이나.

김태진_ 이건 우리 삼촌 세대에서나 할 법한 일인데.

정가영_ 아무튼 그러다 ‘관객과의 대화’(GV) 관련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김태진_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없잖아!

유지영_ 우리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웃음)

-정리하자면 극장이라는 제시어보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더 소중했다는 이야기인가.

정가영_ 맞다. 그 말을 하려고 했다. (웃음)

유지영_ <수성못>을 찍고서 당분간 쉬려고 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대부분 영화인이라 이런 공모 소식이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후배가 공모에 낼 시나리오를 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나도 ‘되면 좋고 안 되면 말지’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가 떠오르면 시나리오를 써서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접수 마감일 아침에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시간 만에 시나리오를 써서 접수했고 결국 선정이 됐다.

김태진_ 이건 영웅담인데.

정가영_ 친구 오디션에 따라갔다가 본인만 합격한 이야기인 거네. (웃음)

김태진_ 나 역시 극장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둔 건 아니었다. 영화가 찍고 싶었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다행히 극장이란 소재가 현실감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좀더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전에도 극장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정가영_ 한달쯤 전에 극장에 관한 단편영화를 하나 찍었다. 인천에 있는 미림극장에서 찍었고, 제목도 <극장미림>이다. 나의 개인 유튜브 채널 ‘가영정’에 가면 볼 수 있다. 채널 구독자 수가 1천명 정도 되는데, 홍보가 좀 덜 된 것 같다. 기사에 ‘가영정’ 얘기 좀…. (웃음)

유지영_ 김태진 감독은 평소 극장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봤을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많은 영화를 본 시네필이다.

정가영_ 그럼 <씨네21>에 ‘내 인생의 영화’ 한번 써야겠다. (웃음)

김태진_ 극장에 관한 영화나 영화에 대한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영화에 대한 영화의 경우 영화과 다닐 때 주변에서 많이 쓰지 않나. 그런 얘기는 괜히 낯부끄럽기만 하고 신선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극장을 키워드로 시나리오를 써보니 재밌긴 하더라.

-극장이라는 제시어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너와 극장에서>의 각 영화는 어떻게 구상했나.

유지영_ 극장이라는 공간이 악몽처럼 표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모에 지원한 많은 영화들이 극장을 데이트 장소나 낭만적인 스케치로 표현하지 않을까 싶었고, 오히려 그런 생각을 뒤집어서 싸늘하고 건조한 톤으로 이야기를 쓰려 했다. 거기에 이방인, 고립, 외로움, 관계에 대한 불안 등과 같은 키워드를 생각했다. 극장이 일종의 신기루나 오아시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막상 영화의 주인공이 극장이라곤 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시나리오 면접 때 극장이 너무 부각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런 방향으로 수정하면 의미 없는 영화가 되기 때문에 더 바꾸긴 힘들다는 얘기도 했다.

정가영_ <비치온더비치>(2016) 개봉하고서 GV를 많이 했는데 극장에서 긴장이 되더라. 그때는 관객이 내 영화를 심판하는 심판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긴장하는 게 싫어서 괜히 충동적인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GV에 대한 부담감과 충동적 행동에 대한 생각, 내 영화들이 사적인 이야기처럼 보이는 지점이 있는데 거기서 비롯되는 질문과 생각들을 GV라는 구성 안에 녹여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GV라는 설정 안에서 정가영이라는 사람이 끝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이야기가 뻗어나갔다.

김태진_ <이미지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을 쓴 레지스 드브레의 말 중에 ‘텔레비전은 시청자를 안방의 정주인으로 만들지만 영화는 관객을 거리의 유목민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극장을 향해 가는 여정,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사람, 그날의 공기와 기억들이 합쳐져 영화에 대한 감상이 완성된다는 말이다. 때로는 영화 자체에 대한 미학적 평가나 기억보다 영화 감상 전후의 과정이 더해졌을 때 훌륭한 감상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극장 자체가 주인공이 아닌, 극장을 가기 위한 여정과 소동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 영화에 모두 주인공이 영화를 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극장쪽으로>에선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트메어>(1984)와 아녜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가 사운드로 삽입되고, <우리들의 낙원>에선 프랭크 카프라의 <우리들의 낙원>(1938)이 등장하고, <극장에서 한 생각>은 가상의 영화 <극장 살인 사건>을 보고 정가영 감독이 GV를 한다는 설정이 있다.

유지영_ 장편 <수성못>(2017)을 만들었고 대구에서 꾸준히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너와 극장에서>의 첫번째 에피소드 <극장쪽으로>를 연출했다. <극장쪽으로>는 자립과 고립의 중간 어디쯤에 자신의 자리를 위치시켜놓고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던 직장인 선미(김예은)가 어느 날 ‘6시 오오극장에서 만나요’라는 포스트잇을 발견하고 극장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유지영_ 누가 봐도 <나이트메어>라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 장면을 사용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해서 결국엔 영화 사운드만 사용했다. 혼자 사는 여자들이 느낄 법한 불안감이 있는데, 오히려 공포영화를 보면서 그걸 극복한다는 의미로 주인공이 밤에 집에서 혼자 노트북으로 보는 영화가 <나이트메어>다. 기왕이면 관객이 단번에 무슨 영화인 줄 알았으면 해서 <나이트메어>를 떠올렸다. 영화 마지막 즈음 오오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인데 선미(김예은)가 하루 동안 극장 주변을 헤매는 이야기가 클레오가 파리를 배회하는 것과 매칭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사운드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선미가 상영관에 들어가면 공원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주인공이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들려오는데, 마치 낙원 같은 극장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섬처럼 홀로 영화를 보고 있다. 그렇게 혼자 영화 보는 사람들의 모습, 그 이미지를 영화에 넣고 싶었다.

김태진_ 극장으로 향하는 여정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은정(박현영)과 민철(오동민)이 함께 보는 영화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프랭크 카프라를 떠올렸다. 유토피아적인 세계와 이상적 가치를 표현해온 사람이 프랭크 카프라이고, 마침 그의 영화 중에 <우리들의 낙원>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어서 그게 딱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의 낙원’이라는 게 극장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고, 로케이션으로 삼고 싶었던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에 있었던 시절도 있었으니 말이다.

-<극장쪽으로>는 오오극장, <극장에서 한 생각>은 이봄씨어터, <우리들의 낙원>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촬영했다. 로케이션으로 삼고 싶은 특정 극장이 있었나.

유지영_ 대구 동성아트홀과 오오극장 두 군데 중에서 고민을 했다. 그런데 동성아트홀이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내가 원한 극장의 느낌이 나지 않았고 그렇다면 선택지는 오오극장밖에 없었다. 오오극장은 대구에서 영화하는 친구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고, 극장 직원들과도 가족같이 지내고 있어서 섭외에 어려움이 없었다. 더불어 지금 시대의 변해가는 독립예술영화관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오극장이 영화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정가영_ 중요하게 생각한 건 촬영하기 좋은 극장, 대관료가 비싸지 않은 극장에서 찍는 거였다. 이봄씨어터에 대한 기억으로, <비치온더비치> GV를 하러 갔는데 관객이 딱 한분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분마저 영화가 끝나고 자리를 뜨시기에 붙잡아서 일대일 GV를 한 적이 있다. (웃음) 아무튼 극장에서 대관료도 싸게 해주고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줘서 고마웠다. 이봄씨어터에서 <너와 극장에서> GV도 진행하니 많이 와주시기 바란다.

김태진_ 주인공 박민철이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인물이라 그가 갈만한 극장으로 자연스럽게 서울아트시네마를 떠올렸다. 또 현재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극장 내부에 있는데, 서울극장과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가 별개의 극장이란 것을 잘 모르거나 헷갈려하는 분들도 있더라. 낙원상가에 있을 때나 서울극장 건물에 있는 지금이나 건물의 구조가 복잡해서 극장을 처음 찾는 사람은 상영관 앞에 제대로 도착하기 쉽지가 않은데, 그런 요소들이 영화의 서사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 서울아트시네마쪽에서 많은 협조를 해줘서 수월하게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실제 나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극장이 있나.

정가영_ 영화에서도 극장형 인간이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집에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최근엔 넷플릭스를 깔았다. 거기 접속하면 뭐든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영화를 더 안 보게 되더라. 그래서 해지했다. (웃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극장은 따로 없고, 의정부에 살아서 의정부 근처 멀티플렉스를 주로 이용하고, 노원구에 예술영화전용관 더숲 아트시네마가 생겼는데 거기서도 영화를 종종 본다.

김태진_ 내가 좋아했던 극장들은 지금은 다 사라져버렸다. 고향이 부산인데, 수영만 요트경기장 안에 시네마테크 부산이라고 단관 극장이 있었다. 건물도 낡았고 좌석도 딱딱하고 매점에서 파는 커피도 전기 커피포트에서 오래 데운 커피였지만 그곳이 개인적으로는 각별했다. 시간이 잘 맞으면 영화를 보고 나와서 일몰의 바다도 볼 수 있었고. 그런 것들이 영화를 더 애착할 수 있게 해준 이미지였던 것 같다. 서울에 올라온 뒤론 하이퍼텍 나다, 스폰지하우스, 씨네코드 선재에 자주 갔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 좋아했던 극장들이 사라지는 걸 경험하면서 요즘은 어디 한곳에 특별히 정을 못 붙이고 있다.

유지영_ 22살 때 동성아트홀에서 지금의 남자 친구를 처음 만났다. 예술영화를 보러 동성아트홀에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과거 내 절친과 그 절친이 좋아했던 남자인 지금의 내 남자 친구를 만난거다. 당시 서로 호감은 느꼈지만 각자 연인도 있고 해서 우리는 아닌가보다 하고 6년을 연락도 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상경했다 대구로 다시 귀향해선 ‘앞으로 어떻게 영화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하며 동성아트홀에 영화를 보러 갔다. 관객은 나밖에 없었다. 오늘도 혼자서 영화를 보나 싶었는데 앞에 누가 앉아 있더라. 지금의 내 남친이었다.

정가영_ GPS를 장착한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이!

유지영_ 그때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지금 7년째 연애 중이다. 그리고 내년에 결혼한다. 그러니 동성아트홀이 내겐 각별한 공간일 수밖에.

-그렇다면, 나에게 극장이란.

김태진_ 단편 <겨울꿈>(2015), <영원한 여름>(2012)을 만들었다. 서울예술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했다. <너와 극장에서>의 마지막 에피소드 <우리들의 낙원>은 출납리스트를 들고 무단결근한 후배 직원이자 영화광인 민철을 찾아 헤매는 은정(박현영)의 로드무비다.

김태진_ 애증의 공간인 것 같다. 좋은데 싫은, 싫은데 좋은. 예전엔 극장이 기회의 공간이기도 했고, 사회와의 통로나 창구로서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었는데 영화를 업으로 삼은 이후엔 극장에서 순수하게 영화를 보고 즐기기가 어려워졌다. 공부 차원에서 영화를 볼 때도 있고, 의무적으로 봐야 할 때도 있고. 극장에서 책임감이나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극장과도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며 밀당을 하는 것 같다.

정가영_ 나에게 극장이란 전 남친이다. 내가 찾아가고 싶을 때만 찾아가니까. (웃음)

유지영_ 나에겐 예배당이다. 극장에 가서 각 잡고 영화를 보는 편이다. 누가 조금만 떠들어도 ‘저기요!’ 그런다. 한 장면도, 한컷도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집중하고 몰두하고 체험하기를 바란다. 일종의 의식처럼.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와야지만 영화를 본 것 같다. 예를 들면 <쥬라기 월드> 같은 상업영화를 볼 때도 뭔가 얻을 게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본다. 한컷 한컷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려고 하기 때문에, 내겐 극장이 팝콘 먹고 데이트하는 장소는 아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유지영_ 지금은 좀 쉬고 싶다. 탐욕적인 독서여행을 가고 싶다. 게걸스럽게 책만 읽고 싶다. 그러다보면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정가영_ 우선 <밤치기>는 하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지금이 에너지가 넘칠 때라서 상업영화도 준비하고 있고 독립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빨리 들어가는 놈으로 얼른 찍고 싶다. 앞서 언급한 단편 <극장미림> 말고는 올해 영화를 찍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김태진_ 그동안 찍은 단편은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는데, 이번엔 욕심을 좀 내서 장기 미제 사건을 다루는 수사극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한창 진행하다보니 모든 일상이 범죄사건과 연관돼 보이기 시작하더라.

정가영_ 진짜 흥미로운 소재인 것 같다. <탐정: 리턴즈>도 ‘장기’ 소재던데 흥행이 잘되는 것 같더라.

김태진_ 우리가 말하는 장기(長期)는 그 장기(臟器)가 아닌 것 같은데.

정가영_ (복부를 가리키며) 이 장기가 아냐? 나 학교 다시 가야겠다. 아직 졸업을 못해서. (웃음)

유지영_ 나도 관심 있는 소재이긴 한데 쓸 엄두가 안 난다.

김태진_ 엄두만 안 나지 쓰면 또 잘 쓰지 않나.

정가영_ 친구 따라 오디션 갔다가 혼자 합격하는 게 장기(長技)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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