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존엄한 취향
2018-07-11
글 : 권김현영 (여성학자)
일러스트레이션 : 정원교 (일러스트레이션)

2018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소공녀>에서 주인공 미소(이솜)의 남자친구 한솔(안재홍)은 웹툰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2년간 5천만원 이상을 모을 수 있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장기출장을 신청한다. “왜?”라는 주인공의 질문에 “남들 다 하는 걸 하기 위해”라고 답한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자신의 꿈을 접는 걸 사람들은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굳이 이해할 생각이 없는 주인공 미소는 점점 오르는 월세와 두배 가까이 오른 담뱃값 사이에서 방을 버리고 담배를 선택한다. 집과 직장, 결혼 대신에 기꺼이 자신의 취향을 지키기로 한 이 선택에 대해 극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특이하다고 놀라워한다. 미소는 방을 뺀 후 잘 곳을 찾기 위해 대학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을 한명씩 방문한다. 흥미롭게도 세명의 여자동창은 모두 직장, 가족, 육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음악과 담배와 같은 취향의 세계와 결별한 생활인으로 살고 있고, 두명의 남자동창은 여전히 기타를 치고 담배를 피우면서 부서진 세계를 방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아직도 담배 피우냐고 묻지만, 남자들은 미소가 왜 그렇게까지 취향을 고수하는지를 아예 묻지 않는다. 이 대비는 취향을 가지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향유하는 행위가 여성에게는 그 자체로 비현실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하지만 취향을 가졌다고 해서 곧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두 남자동창들이 여전히 기타를 치고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이들의 삶이 괜찮은 상태인 건 아니듯이 말이다.

<소공녀>는 생존의 기술을 취득하는 동시에 교양인으로서 취향껏 살아가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 시대에 만들어진 일종의 판타지영화에 가깝다. 미소는 숙달된 솜씨를 가진 살림의 달인으로 청소가 필요한 집에는 청소를 해주고, 요리솜씨가 없는 친구를 위해서는 반찬을 만들어 채워놓는다. 예의바르고 따뜻한 태도를 유지하되, 상대가 선을 넘거나 자신을 불편해하면 망설이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선다. 미소의 취향에 대한 고집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본인이 선택한 삶을 존엄하고 인간답게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인간의 조건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사회의 독립된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공통된 지각과 감각을 교양이라고 하고, 현대적 의미에서의 사교란 더이상 “네 아버지 뭐하시니”라고 교양 없게 묻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를 나의 취향을 통해 드러내어 교류하는 일이다. 교양인으로서 취향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이 되는 길이다. 하지만 여성에게 교양은 과잉 혹은 잉여로 재현되어왔다. 이런 세계에서 여성이 자신의 취향을 고수하는 건, 사치나 허영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 권리를 찾는 존엄의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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