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른바 영화광 시절을 겪지 않고 지나왔다. 문화원을 오가며 희귀영화를 뒤져보곤 하던 선배들이나 영화동아리 후배들의 얘기를 귀동냥하며 가끔씩 훔쳐보기는 했지만, 그들 속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문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이동시키기에 영화가 그리 매혹적이지 않았던 탓일까. 더구나 그때는 다양한 분야의 관심이 ‘운동’으로 통합되어 있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오묘한 동굴 속의 판타지에 깊게 빠져들지 못했다.그래서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영화의 빛과 어둠이 짙게 투영된 유년 혹은 청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영화를 직업으로 삼기 훨씬 이전의 그 땟구정물 가득한 추억은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가. 어려운 시절을 견뎌온 그 열정 그윽한 추억이 지금의 한국영화 중흥을 이끌고 있는 기반이라면 과장일까.
<섹스, 거짓말…>을 본 것은 방위 시절이다. 89년인지 90년인지 기억이 분명치는 않다. 부대 교육 때문에 청주에 갔다가 퇴근(?) 뒤에 후배랑 영화관을 찾았다. 군복 입은 두 사내가 야한 영화를 보자고 합의하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앤디 맥도웰이 비교적 섹시한 포즈로 앉아 있는 극장간판과 ‘섹스’로 시작하는 영화제목이 단박에 우리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음, 그래 바로 이거야.”
물론 나는 앤디 맥도웰이 누군지, 제임스 스페이더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감독인 스티븐 소더버그는 더더욱 알 리가 없었고, 선댄스영화제가 있었는지조차 몰랐으니까 그곳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고,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라는 것도 까맣게 몰랐다.
한 스무명쯤 됐을까. 간판 이미지와 잘 안 어울리는 음악과 함께 영화가 시작됐다. 앤의 쓰레기 타령이 시작되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쓰레기, 일주일 동안 그 생각만 했어요. 세상이 쓰레기로 가득 차버릴 것 같아요. 존이 쓰레기를 치우면서 자꾸만 흘리잖아요. 그것을 어떻게 거두어야 하나.” 배우와 분위기와 음악과 대사가 기대했던 ‘쌈마이 에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같이 간 후배가 투덜대기 시작했다. 앤의 여동생이 언니의 남편인 존과 섹스를 한 뒤 “언니 침대에서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 잠시 ‘혹시나’ 했던 관객이 영화가 반도 채 지나지 않아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즈음 나는 이 영화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어갔다. 뭐랄까. 솔직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대사들, 각기 다른 개성으로 살아 있는 네명의 남녀, 소외와 커뮤니케이션을 둘러싼 녹록지 않은 성찰이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후배는 기어이 잠이 들었고, 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이 반짝이는 눈으로 스크린을 응시했다. 앤이 “내 인생은 똥이야. 존은 개새끼야”라고 소리칠 때 덩달아 후련함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가 스물일곱살 때였으니까 소더버그는 동갑이거나 나보다 한살 많았을 것이다. 다음날 넓은 극장에 혼자 앉아서 조조를 한번 더 봤다.
이후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영화 관련 책들을 사들이고, 영화계 뉴스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닥치는 대로 영화를 빌려다 보았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도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직배반대 투쟁이 한창일 때 괜히 극장 앞을 서성이고, 서명도 하고, <레인맨>을 볼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포기했던 기억도 그 즈음이다. 제대하고 이런저런 일로 수배됐을 때 일년여 동안 동네 비디오숍에 있는 거의 모든 영화를 빌려다 보았고,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영화쪽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면서 우디 앨런, 빔 벤더스, 마틴 스코시즈, 코언 형제 등 명감독들의 영화들을 섭렵해나가기 시작했다.<섹스, 거짓말…>이 거짓말처럼 나를 영화로 이끈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