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정 CJ CGV 대표, "관람객의 영화 트렌드가 점점 바뀌고 있다"
2018-07-19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2020년까지 11개국에 1만개 스크린을 확보한다는 사업 목표를 세웠다.” 지난 7월 10일 CGV강변에서 열린 ‘20주년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이하 미디어포럼)에서 서정 CJ CGV 대표는 향후 사업의 그림을 공개했다. CGV 브랜드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컬처플렉스로 재단장한 CGV강변에서 열린 행사다. 미디어포럼 전날 서정 대표를 따로 만난 자리에서 그는 지금이 극장산업의 위기임을 강조했다. 넷플릭스 같은 뉴미디어가 나타나고, 한국 영화시장 사이즈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으며, 10대와 20대 젊은 관객의 선호 매체가 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CGV를 포함한 극장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여전히 유통사업이 산업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한국 영화산업에서 그는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CGV 브랜드 출범 20주년을 축하한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성인이 된 셈이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서 또 한번 변화와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국가와 산업 내부에서 성장을 위한 조력을 받았다면, 이제는 더욱 국민에 기여하는 시점이 된 것 같다. 20년을 맞이하기까지 의미 있는 활동도 있었지만 정부 규제 속에서 어려운 나날도 있었다. 짧게는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도 있었고.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던 20년이라 생각하고 싶다. 앞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지금은 산업을 더 키울 수 있는 이정표를 구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아닌가 한다.

-7월 10일 CGV 20주년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이 CGV강변에서 열렸다. CGV강변은 멀티플렉스 시대를 연 상징적인 곳 아닌가.

=그렇게 이해해준다면 영광이다. CGV강변11이 오픈했던 1998년은 IMF 사태 이후 삼성, 대우가 영화산업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때였다. 그룹 차원에서 보면 “문화가 없다면 나라가 없다”는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말부터 시작해,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CGV강변에 투자한 이재현 회장의 노력으로 CGV가 꾸준한 투자와 확장을 이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2006년 중국, 2010년 미국에서 해외사업을 시작했고, 2017년 7월 CGV용산이 재개관했다. 20주년을 맞아 리뉴얼한 강변은 CGV가 이보다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지난 20년 동안 CGV가 한국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공과를 각각 꼽는다면.

=먼저, 영화판이라 불리던 영화계를 산업화했다. 가족이나 젊은 세대가 문화를 경험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기회를 제공했다. 학창 시절 자주 갔던 노량진과 강남 극장은 분위기가 꽤 어두웠다. 극장 안에서 쥐가 나오고,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암표에 대해선 말도 못한다. (웃음) CGV는 영화를 보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했고, 영화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반대로 산업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영화계 구성원들과 소통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있었음은 반성한다. 내가 잘 만나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감독과 배우들이 특히 그렇다.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스크린 편성 같은 해결하기 어려운 부탁을 받기 때문이다.

-한번도 만난 적 없나.

=<남한산성>(2017)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예외였다. (웃음) <남한산성>이 800만~900만 관객은 들 줄 알았기 때문에 위로 차원에서 밥을 함께 먹었다. 공정거래와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둠으로써 이해 관계자들과 오래 갈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극장을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 이상의 문화적 공간으로 조성하려는 이유가 뭔가.

=일반 가정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영화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끊임없이 제공해 왜 극장에 와서 영화를 봐야 하는지 그 이유를 채워주지 않으면 안 된다. 플랫폼이 많아져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든 영화를 볼 수 있지 않나. 그럼에도 꼭 CGV에 와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문화, 기술, 디자인, 서비스 등 모든 측면에서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CGV의 앞날은 어두워진다. 우리 구성원들이 머리를 쥐어짜서 고민한 결과의 단편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힐링 컨셉의 이번 CGV강변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강변에 이은 넥스트 버전도 크게 준비 중이다. 기대해도 좋다.

-극장이 위기에 처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데.

=척박하다. 영화산업이 위기다. 영화산업은 투자, 제작, 배급, 상영 모두 한배를 탄 입장 아닌가. 극장의 역할은 콘텐츠와 관련된 비즈니스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그릇이라고 보면 된다. 위기를 극복하는 혜안, 영화가 좋아서 뛰어든 미래의 영화인을 위해서 조금 더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하는 게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의 활동이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활동하다가 발을 뺀 극장도 있었는데, 한배를 탄 입장이라면 부율조정 같은 문제에 대해 같이 움직여주는 게 한국 영화산업을 성장시키는 십시일반의 태도라 본다.

-한국 영화산업이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대표 초기 시절에 비해 지금의 극장산업은 정체기에 접어들었는데.

=고객의 형태 변화에 맞춰 4DX, 스크린X, VR 시네마 등 집 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극장 경험을 계속 시도하려고 한다. 그건 해외 경쟁 사업자들이 손댈 수 없는 부분이기에 ‘온리 원’ 정신으로 승부한다. 극장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교육적, 오락적 목적 등 다채로운 요소들을 사이트의 특성에 맞게 제공할 예정이다.

-극장산업이 정체기에 접어든 이유가 한국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인 것 같나, 아니면 극장이 전세계적으로 넷플릭스 같은 뉴미디어에 밀린지 오래돼 이미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라고 보나.

=6년 전 CGV 대표직을 맡을 때도 한국 시장이 성숙 혹은 정체 시장으로 바뀔 거라는 고민은 하고 있었다. 글로벌 사업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도 그래서다. 구성원들과 늘 하는 이야기지만 한국 영화시장은 예상보다 위기가 빨리 왔고, 글로벌 시장은 기대보다 기회가 천천히 온다는 것이 지금 CGV가 겪고 있는 딜레마다. 하지만 전략적인 방향성은 맞다고 본다. 국내 시장의 정체를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 또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 엔진을 어떻게 더 폭발적으로 점화시킬 것인가의 두 가지 고민을 2015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0, 20대 젊은 관객은 1시간40분 동안 스크린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미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콘텐츠를 열광적으로 소비하고 있지 않나. 이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고민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관람객의 영화 소비 트렌드가 점점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에 비해 드롭률이 커졌다는 게 단적인 예다. 스마트폰을 통한 입소문의 영향,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주 소비자층이 영화에 인내심을 발휘하려는 의지와도 관련이 있다. 블록버스터들의 입지보다도 몰입해서 따라가야 하는 예술영화나 중저예산영화, 모르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들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가 점점 극단화되고 있다. 작은 영화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점점 더 힘든 상황으로 바뀌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해묵은 논쟁이지만 스크린 독과점 얘기도 해보자. 영화계 구성원들은 “극장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될 것 같은 영화만 밀어주기 때문에 스크린 독과점이 발생한다”는 의견인데.

=잘되는 영화에 상영관을 수요만큼 적절히 주는 것, 잘 안 되는 영화들은 자연스럽게 시장 내에서 서큘레이션되어 대기하고 있다가도 다시 상영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편성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린 독과점에 관해서는, 영화 상영업이 1년에 몇번의 중요한 시즌을 갖고 있지 않나. 추석, 설, 여름과 겨울방학 시즌, 그리고 중간에 마블 영화가 튀어나오는 5월이 있다. 특히 5월은 국내 배급사들이 피하는 시기다. 이런 시기에 일부 스크린 편성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나 역시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5월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시즌에 발생하는 스크린 독과점은 굉장히 일시적이고, 통상 일주일로 그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지난 7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스크린 독과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상·하한 복합 규제를 두고 각각의 규제 효과와 영향을 분석 중이다. 정부 지침이 결정되면 CGV도 적극 협조할 건가.

=시장의 공정성에 대한 규제는 마땅히 따를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 배정에 있어 상한과 하한을 둔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가 하한을 두고 있지만, 사업자가 부담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만큼 국고 지원을 해준다. 상한 문제에 관해서는 CGV의 스크린 배정이 천만영화의 동력이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해주면 좋겠다. 현재 대한민국이 2억2천만 관객에서 계속 횡보를 하고 있는데, 40% 캡을 씌운다는 가정으로 마케팅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관객이 최대 920만~930만명에서 그칠 것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전체 영화 관람객이나 박스오피스가 줄어들 위험성이 있다. 정부가 고민을 하게끔 만든 것은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한편으론 시장 개입보다 정부가 해외 시장 진출 등과 관련한 지원에도 신경을 많이 써주기 바란다. 현재 CGV는 할리우드와 협력해서 스크린X기술에 몇 백억원 단위의 투자를 진행 중이다. 지금 수준도 아직 걸음마 단계인데, 이런 부분에서 영화진흥위원회나 문체부의 조력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말씀을 쭉 듣다보니 CGV의 노력에 비해 영화계가 그 마음을 잘 몰라준다는 섭섭함도 느껴진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 입장에선 2, 3년에 한번 일생일대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 아닌가. 스크린 배정에 관련된 컴플레인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CGV 역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이 아닌 고객의 눈높이와 작품에 대한 선행 지표들을 판단해 작품을 객관적으로 대한다는 사실 또한 알아줬으면 한다. 아쉬움을 느끼는 쪽이 80%, 만족하는 쪽이 20% 정도인 것 같다.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은 서운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상영사업의 숙명이다. CGV 역시 매출의 균형을 위한 상영의 최적화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해외 시장 진출 실적은 어떤가. 3년 전 인터뷰에서 “해외 시장 매출이 국내의 그것을 곧 추월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낸 적이 있지 않나.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와 해외의 매출 비율이 50대 50이 됐다. 이번 주말(7월 8~9일)을 기준으로 하면, 관객수가 토요일에는 총 109만명 중 국내가 54만명, 해외가 55만명이고 일요일에는 총 100만명 중 국내가 47만명, 해외가 53만명이다. 해외가 앞으로 더 커지리라 본다. 매출로 보면 국내가 약 1조원, 해외가 1조2천억원 정도 된다.

-투자·배급 사업이 극장사업에 비해 리스크가 훨씬 큰데도 아트하우스를 통해 투자·배급 사업을 하고 있는 이유가 뭔가.

=아트하우스 투자·배급의 원칙이 몇 있다. 폭스 서치라이트처럼 명확한 색깔이 있는 영화, 다른 회사는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우리에겐 의미 있는 영화를 찾는다. 한마디로 흥행의 불투명성이 높지만 한국영화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영화들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기대만큼 잘 안 된 작품이 나오면 부담이 되긴 하지만, 한두편 가지고서 흔들리는 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다. 특히 아트하우스 사업은 지속성이 중요하다.

-CGV 대표가 된 지 올해로 6년째인데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웃음)

-영화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한국 영화산업 파워 순위를 매기면 1위는 서정 CGV 대표라는 말도 있던데.

=파워 1위가 아닌 영화계 서포터 1등이라고 해준다면 기꺼이 영광스럽게 생각하겠다. (웃음) 파워 1위는 처음 들어본다. 서포터 1등이란 말도 아직까진 들어보지 못했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CGV가 한국영화의 서포터스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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