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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 이환 감독 - 누구나 10대인 때가 있었다
2018-07-26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첫 장편 연출작을 내놓은 신인감독의 얼굴이 어쩐지 낯익다면 당신의 예감이 맞다. <박화영>을 연출한 이환 감독은 배우 출신이다. 그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직폭력배가 되는 <똥파리>(2008)의 영재를 비롯해 <암살>(2015), <밀정>(2016) 등에 출연해왔다. 최근에는 박정범 감독의 신작 <이 세상에 없는>의 배역을 위해 머리를 초록색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메가폰을 잡게 된 계기는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10대 비행 청소년들의 삶을 가감 없이 조명한 이환 감독의 첫 연출작 <박화영>은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보다 더 가혹한 현실의 목격자가 되게 한다. 술과 담배, 섹스와 욕설, 폭력으로 점철된 세계 속을 배회하는 10대 소녀 화영(김가희)의 모습을 통해 그는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기를 권한다.

-첫 장편영화 개봉을 준비하는 소감은.

=이 영화로 사람들을 만난다니 설레면서도 두렵다. 일반 관객은 영화제 관객과 또 다르니까. 극장 개봉을 준비하며 편집을 다시 했다. 영화제 상영 버전에서는 10대 아이들의 전반적인 일상을 더 적나라하고 길게 묘사했다면, 개봉 버전에서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돕기 위해 중심인물 네명(화영, 미정, 영재, 세진)의 캐릭터에 집중했다. 음악도 더 많이 썼고.

-<박화영>은 지난 2013년 연출한 단편 <집>의 이야기를 확장한 작품이다. 10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누구나 한번쯤 관통했을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떤 사람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거칠고 어두운 시기를 보냈을 테고, 또 나처럼 10대 시절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다. 10대 문제에 국한된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10대의 은어와 정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 관계, 책임, 부모라는 키워드를 관통하는 영화가 됐으면 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캐릭터 영화다. 박화영이라는 인물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때 실제로 박화영을 닮은 친구가 있었다. 화영이보다 더 왜소하고 두꺼운 안경을 낀 친구였는데, 영화 속 화영이처럼 엄마 행세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모든 걸 자기가 책임질 수 있다는 식으로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 친구가 해결할 수 있는 건 결국 아무것도 없었고, 학급 친구들은 그런 그 친구를 보며 재미있어 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인물이 특정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를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화영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10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를 청한 10대 청소년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인물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떤 10대 시절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던하지도 않았다.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말 잘 듣고 순탄한 10대 시절을 보내진 않았다. 극중 화영과 미정, 영재를 고루 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대사가 굉장히 세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10대 특유의 적나라한 은어와 욕설이 난무하는데, 어떤 취재 과정을 거쳤나.

=다양한 지역의 청소년들을 만나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친구들을 만난다고 하면 무서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은어를 많이 쓰고 감정의 기복이 심할 뿐이지 어떤 면에서는 이 친구들이 더 순수하다. 명함을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반영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를 하니 흥미로워하며 앞다투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분위기였다. 취재를 하다보니 지역마다 쓰는 은어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더라. 극중 인물들이 쓰는 대사는 서울의 강북, 양평 지역에서 많이들 쓰는 말이다.

-화영은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 영화는 우리가 가까이 보기 싫은 것을 직접 보고 알아가는 ‘목도’의 의미가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봤다’는 표현을 화영의 대사에 넣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화영의 말을 통해 상상보다 더 끔찍한 현실에 대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으면 했다. ’니네 지금 봤어? 봤냐?’ 이렇게 말이다.

-친구 미정(강민아)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든지 하고, 그녀 때문에 위기에 처하는 화영의 모습이 빈번하게 보인다. 비행 청소년을 다룬 영화 중에서 이런 방식으로 여성간의 의리를 보여준 영화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 화영과 미정의 관계를 통해 여성의 모성 본능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부모에게 무책임하게 버림받은 소녀(화영)가 자신이 평생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누군가에게 베풀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모성 본능으로 어디까지 인내하고 감당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 배우들과 오랜 워크숍 과정을 거치며 두 사람의 관계를 완성해나갔다.

-김가희 배우는 단편 <집>에 이어 다시 한번 주연을 맡았다. 그녀의 어떤 점이 화영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캐스팅할 때 배우 각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평소 살면서 느낀 것들을 굳이 연기하지 않고 살릴 수 있는 배우였으면 했다. 화영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쏟아내면서 동시에 굉장히 많은 것들을 참는 인물이다. 가희가 화영과 닮은 점은 평소 정말 많이 참고 산다는 거였다. 박화영 이전에 김가희가 가지고 있는 지점을 살리되 감정을 표출하는 대목에서만큼은 가희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캐스팅했다.

-<똥파리> <암살> <밀정> 등 다양한 작품에 배우로 출연해왔는데 감독을 꿈꾸게 된 계기는.

=20대 후반에 연애를 지독하게 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감정 정리가 좀 필요하더라. 친구와 술을 먹고 헤어진 여자 친구가 살던 집 앞을 걸었는데 그다음날 깨보니 핸드폰에 영상이 하나 찍혔다. 친구가 걸어가고 있고 내가 뒤에서 횡설수설하는 영상이었다. 그걸 보고 불현듯 영상을 통해 내 감정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만에 시나리오를 써서 70만원짜리 단편 <지랄>(2011)을 완성했고 그게 시작이었다. 아직까지는 앞으로 감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지만, 내가 만든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감독으로서의 관심사는.

=인간의 성장과 사회파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크다. 결국 이 두 가지 요소에 전제되는 관심사는 인간에 대한 물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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