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영화는 요리 같아요” <아이언 팜> 배우 찰리 천
2002-04-24
글 : 박은영
사진 : 오계옥

<아이언 팜>에서 차인표 못지않게 웃기는 이가 있다. 지니(김윤진)의 새 애인이자, 아이언 팜(차인표)의 연적인 애드머럴 역의 찰리 천. 아이언 팜이 무모함과 패기로 뭉친 무데뽀라면, 애드머럴은 “연애도 비즈니스”로 보는 전략가다. 아이언 팜이 첫사랑 순정의 화신이라면, 애드머럴은 자본주의의 추동력인 승부욕의 화신이다. 애드머럴에겐 ‘페어플레이’ 정신이 없다. 무기력한 패자보다는 야비한 승자가 되겠다는 것. 주연 남녀의 사랑을 망치려는 훼방꾼이지만, 애드머럴은 밉지가 않다. 각본이 의도하고 배려했다 해도, 배우의 연기가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면,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 터. 찰리 천은 <아이언 팜>의 ‘값진 발견’ 중 하나다.

유창한 영어와 여피 이미지가 말해주듯, 찰리 천은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8년째 배우로 일하고 있다. 데이비드 듀코브니와 기타노 다케시를 섞어놓은 듯한 얼굴의 그는, 강인하고 지적인 인상 때문인지, 그간 경찰이나 의사나 변호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를 연기했다. <베벌리 힐스캅3> <덤 앤 더머> <딥 임팩트> 등의 영화와 등의 TV드라마에 출연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지난해 촬영한, 애덤 샌들러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미스터 디즈>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원래 동양인으로 설정돼 있는 게 아니라, 백인이나 흑인 배우가 하게 돼 있는 캐릭터를 맡아 연기한 경우가 많아요. 제가 오디션을 통과하면서부터 역할의 인종과 이름이 수정되곤 했거든요. 그게 제 프라이드죠.” 할리우드에서 동양계 배우들이 악역을 전담하는 건 이제 옛말이고, 뭐든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찰리 천은 다섯살 때부터 배우의 꿈을 품었다. TV를 유난히 많이 봤는데, 극중 인물이 실존하는 게 아니라 배우의 연기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참 잘 노는구나, 나도 저 사람들처럼 저기서 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연극무대에 서고, 현대무용을 배우면서도, 직업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코네티컷대학에서 동양학과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후회하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깨달음이 들어, 덜컥 배우아카데미에 등록했고, 그게 시작이었다고. “영화는 요리 같아요. 여러 가지 재료와 양념을 섞지만, 익기 전까지는 그 맛을 알 수 없잖아요. 모르는 걸 찾고 배워가는 재미, 그게 매력이죠.”

배우가 되기 전, 찰리 천은 뉴욕에서 행정문제를 연구하며, 한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참정권 행사를 유도하는 한인협회 결성을 주도한 적이 있다. 배우가 되고 나서도, ‘미국 속의 한국인’이라는 자각은 여전하다. 미국에서 촬영한 ‘한국영화’ <아이언 팜>의 출연은 그래서,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난 늘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문화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 영화를 하면서, 감을 잡았지요.” 그는 최근 영화제작은 물론, 한국과 할리우드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프로덕션도 세웠다. 이름하여 ‘원스피릿’(한겨레보다 넓은 개념으로, 한인류쯤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영화를 통해 하나됨을 꿈꾼다”는 찰리 천의 목소리가 힘찼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