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전시 투어 마감한 <데이비드 보위 이즈>에 다녀오다
2018-08-02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데이비드 보위는 거기에 있었다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열린 <데이비드 보위 이즈>(David Bowie is) 전시회를 찾은 건 평일 오후였다. 관람객이 몰리는 피크 타임이 아니었음에도 전시회장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로 전시회 내부의 열기는 바깥의 찜통더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전시회장을 찾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그곳에 펼쳐진 데이비드 보위의 세계에 깊이 몰입했다. 돋보기안경에 지팡이를 짚고 <Rebel, Rebel>의 공연 실황 영상에 매료된 할머니, 소형 콘서트홀을 연상케 하는 전시회 바닥에 앉아 보위가 입었던 의상들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 보위의 노래를 듣고 자랐다고 하기엔 다소 어려 보이는 젊은이들, 가족 단위로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그곳에 있었다. 2년 전 지구를 떠난 ‘지기 스타더스트’는 그렇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당신에게 데이비드 보위는 어떤 존재인가? 뉴욕의 전시 관객이 현재형으로 받았던 질문을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던져본다.

데이비드 보위는 ( 아티스트 )다

<데이비드 보위 이즈>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팝스타, 데이비드 보위(1947~2016)의 50년 커리어를 집대성한 전시다.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에서 기획해 지난 2013년 3월 23일 시작된 이 전시는 토론토와 상파울루, 베를린과 시카고, 파리, 멜버른, 볼로냐, 도쿄, 바르셀로나 등을 거쳐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2018년 3월 2일~7월 15일)에서 기나긴 투어 일정을 마감했다. 매 도시 관람객 기록을 경신한 이 전시회는 지난 6월 20일 브루클린 뮤지엄 전시기간 중 전체 투어 관람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뉴욕에서만 20만명가량의 관람객이 <데이비드 보위 이즈>전을 찾았는데, 이는 브루클린 뮤지엄 역사상 가장 빠른 매진과 가장 많은 관객수를 기록한 행사라 한다.

흥미로운 건 이 전시를 처음 제안한 사람이 바로 데이비드 보위라는 점이다. 그는 살아생전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의 큐레이터에게 그가 평생 수집해온 개인 소장 7만5천여점이 담겨 있는 아카이브를 최초로 오픈했다고 한다. 그가 공개한 아카이브에는 보위의 유년 시절 사진과 그가 직접 그린 그림부터 2016년 발매한 마지막 앨범 《Blackstar》에 이르기까지 그의 무대의상과 자필 가사, 일기, 편지, 팩스, 스케치, 컨셉 아트, 뮤직비디오, 세트 디자인, 앨범 아트워크, 콘서트 실황, 출연영화 및 연극 장면, 포스터 등 다양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아카이브는 그야말로 데이비드 보위가 걸어온 인생과 그의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총망라하는 것이었다. 그 중 500여점의 아이템을 소개하는 <데이비드 보위 이즈>는 단순히 한 팝스타에 대한 회고전이 아닌 아티스트 데이비드 보위의 일대기를 다각도로 조명한 전시다. 각 전시품들은 특정 컨셉과 시기로 나눠져 오디오-비주얼 헤드폰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회를 큐레이팅한 건 음악 전문가나 데이비드 보위 연구자가 아닌 무대 디자인 전문가들이다. 미국 평단에서는 연극과 뮤지컬, 오페라라는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무대 전문가들이야말로 객관적인 눈으로 보위의 커리어를 볼 수 있었을 거라는 해석이 대다수다.

전시회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선 관객.

데이비드 보위는 ( 디테일에 강하 )다

전시 <데이비드 보위 이즈>는 보위의 기나긴 커리어와 성공 요인 중 하나가 작은 부분에도 심혈을 쏟고, 관심을 기울인 보위의 성격 덕분이라고 전한다. 그는 새로운 캐릭터를 자주 창조했고, 과감한 변화로도 유명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순수주의자에 가까웠다. 보위는 10대 때부터 10여개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로큰롤 가수를 직업으로, 음악을 아트로 생각했다. 그는 데뷔 초부터 노래의 사운드는 물론이고 앨범의 재킷 컨셉과 의상 등에 관심을 가졌다. 말하자면 보위는 커리어 초반부터 앨범의 커버 디자인이 인기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며 창조적인 행위라는 것을 인지한, 아트 디렉터로서의 감각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 이즈>전에서는 밴드 활동을 위해 보위가 세심하게 계획한 기록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앨범 아트가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쳤는지 단계별로 볼 수 있었으며, 무대의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위가 기록한 일부 노트에는 콘서트 투어 기간 동안 해당 도시까지의 이동 거리가 촘촘히 기록되어 있어 그의 철저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그는 오래전부터 본인의 스케치나 자필 노트, 가사, 악보, 캐릭터 분석, 무대 의상 등을 체계적으로 아카이브화해왔다. 콘서트 투어에서 사용한 의상은 투어가 끝나도 훼손되지 않도록 전문적인 보관을 해왔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는 자신과 관련된 아이템을 경매에서 하나씩 구입하기 시작했다. 보위의 생애를 망라하는 7만5천여점의 아카이빙은 그렇게 가능할 수 있었다고 전시는 보여준다.

1974년 <다이아몬드 도그스> 투어 세트 컨셉 디자인 스케치(오른쪽)와 보위가 기획했으나 실현시키지 못한 장편영화 <헝거 시티>의 스케치와 노트들(왼쪽).

데이비드 보위는 ( 시어터와 영상을 사랑한 )다

보위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해왔는데, 그와 함께 작업한 예술가 중에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있다. 1988년 보위는 백남준의 <Wrap Around the World> 공연에 자신의 곡 <Look Back in Anger>로 참여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일주일 앞두고 전세계에 생방송된 이 프로그램에서 보위는 댄스그룹 라라라 휴먼 스텝스와 함께 3분짜리 비디오아트로 오프닝을 장식했다.

영화 팬들이라면 보위의 영화 출연작을 편집한 섹션도 반가울 것이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데이비드 보위가 니콜라 테슬라를 연기한 <프레스티지>(2006), 앤디 워홀 역을 맡은 <바스키아>(1996), 본디오 빌라도 역을 맡은 1988년작 <예수의 마지막 유혹>, 고블린 왕 자레드를 연기한 <라비린스>(1986), 잭 셀리어스 소령 역의 <전장의 크리스마스>(1963), 토머스 제롬 뉴튼 역의 1976년작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등의 장면들이 편집돼 상영됐다. 이 장면들 속에는 1980년 보위의 뉴욕 브로드웨이 데뷔작인 <엘리펀트 맨>의 연극 공연 실황 장면도 포함돼 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일본 버전 포스터와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의 클립보드, <라비린스>에서 보위가 사용했던 크리스털 볼 지팡이와 부츠도 함께였다.

지난 5월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개최된 코스튬 파티. 데이비드 보위에게 영감을 얻은 의상과 분장을 한 팬들이 파티에 참여했다.

데이비드 보위는 ( 모두에게 영감을 받는 )다

보위와 14개 앨범을 함께 제작한 레코드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는 뉴스 매거진 방송 <CBS 뉴스 선데이 모닝>과의 인터뷰에서 보위의 첫 미국 차트 1위 곡인 <Fame>이 탄생한 일화를 들려줬다. 1975년 필라델피아에서 제작한 《Young Americans》의 수록곡인 <Fame>은 가장 마지막에 앨범에 추가된 곡이다. 존 레넌이 보위의 뉴욕 아파트를 방문했고, 함께 있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며칠 뒤 <Fame>을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게 됐다고. 유명세를 노래한 이 곡은 보위와 레넌,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알로마가 함께 작사, 작곡했다. 보위를 “새 같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으로 기억하는 비스콘티는 “<Fame>이 탄생한 그날 밤은 말해주기 힘든 X등급의 일들이 있었던 ‘광란의 밤’”이라고 기억했다. 레넌은 이후에도 보위와 가깝게 지냈는데, 그는 매니저를 바꾸고 싶어 하던 보위에게 매니저가 구태여 필요 없다는 조언을 해 이후 보위가 직접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에는 존 레넌과 데이비드 보위의 관계에 대한 더욱 사적인 일화도 포함되어 있다. 보위가 뉴욕 브로드웨이 연극 <엘리펀트 맨>을 공연하던 중 레넌이 뉴욕의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살해당한 것. 보위는 큰 충격을 받았으나 정해진 기간까지 공연을 했다. 그리고 1983년 12월 8일 <더 시리어스 문라이트> 투어의 마지막 날, 존 레넌 사망 3주기를 추모하며 마지막 곡으로 <Imagine>을 불렀다.

데이비드 보위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던 또 다른 아티스트는 이기 팝이다. 1976부터 78년까지 이기 팝과 함께 베를린에서 거주한 보위는 마약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미국과 영국에서의 유명세를 피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보위는 《Low》 《Heroes》 《Lodger》 등 3개 앨범을 발표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보위가 당시의 이기 팝을 그린 초상화 여러 점이 소개됐다.

1976년부터 78년까지 베를린에서 이기 팝과 함께 작업할 때 보위가 그린 이기 팝 초상화.

데이비드 보위는 ( 감각적인 디자이너 )다

지난 5월 브루클린 뮤지엄에서는 보위 전시회를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코스튬 파티가 열렸다. 팬들을 통해 그의 비주얼적인 행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던 이 행사야말로 그를 기념하기에 가장 적합한 행사가 아니었을까. 보위는 늘 공연에 시각적인 면을 강조해왔는데, 이 때문에 그는 의상 디자이너들과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했다. 1997년에 발매된 《Earthling》 앨범 커버 속에서 보위가 입은 유니언잭 코트는 그가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과 함께 디자인한 의상이다.

전시에서는 그가 아방가르드 문화에 심취한 시기의 자료도 있는데, 이중 하나가 <NBC>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서 클라우스 노미와 함께 공연한 <The Man Who Sold the World>다. 이는 다다운동의 영향을 받은 공연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디자인된 의상 때문에 백업 싱어들이 그를 무대에 데리고 나와야 했다. 전시에는 <SNL> 생방송 공연 실황과 당시 보위가 큰 영향을 받았던 시인 휴고 볼과 트리스탕탄 트자라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졌다. 이외에도 <Life on Mars?> 뮤직비디오에서 그가 입은 슈트와 <Space Oddity> TV 공연 중 입었던 우주복 등도 볼 수 있었다.

1970년대부터 제작된 보위 팬들의 팬아트 작품들. 유일하게 관람객에게 포토존으로 할애된 공간이다.

데이비드 보위는 ( 뉴욕이 고향이 )다

<데이비드 보위 이즈>의 전세계 투어 전시 중 오직 브루클린 뮤지엄 전시회에서만 추가된 뉴욕 관련 아이템은 100여점이나 된다. 유작 앨범 《Blackstar》와 관련된 자료들과 보위의 그림,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시나리오와 클립보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보위의 미국 내 활동에 포커스를 맞췄는데,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녹음한 《Young Americans》 등을 비롯해 브로드웨이 연극 <엘리펀트 맨>, <SNL> 밴가드 퍼포먼스 등 자료 화면과 아이템들이 추가됐으며, 70년대 초반부터 보위의 팬들이 그린 팬아트도 전시됐다. 또 보위와 앤디 워홀의 첫 번째 만남을 담은 비디오도 소개됐다. 1971년 9월14일 보위와 친구들이 워홀의 스튜디오인 ‘더 팩토리’를 방문한 것. 이들은 서로에게 큰 영감을 주었지만 실제로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이후 보위는 영화 <바스키아>에서 워홀을 직접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이 밖에도 보위가 뉴욕 베이스 작곡가 겸 예술가이자 음악가, 영화감독인 로리 앤더슨과 함께 1998년 둘의 생각을 전화 통화가 아닌 그림으로 그린 후 서로 팩스로 주고받은 <LINE>이라는 스케치도 함께 소개됐다. 놀랍게도 그림의 내용을 미리 논의하지 않았음에도 이들의 스케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뉴욕이 데이비드 보위 전시 투어의 마지막 장소로 선정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보위는 2016년 숨을 거두기까지 24년간 뉴욕에서 거주했다. 보위에게 뉴욕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는 앤디 워홀이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이후에도 뉴욕 출신 뮤지션과의 교류를 계속했다. 그에게 뉴욕은 한마디로 ‘홈’이었다.

<지기 스타더스트> 공연에 사용됐던 퀼트로 제작된 투피스 슈트가 당시 공연 실황 비디오와 함께 전시됐다.

데이비드 보위는 ( 현재 )다.

데이비드 보위는 25번째 앨범인 《Blackstar》를 그의 69번째 생일에 발매했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이 음반을 제작한 비스콘티에 따르면, 보위는 《Blackstar》가 마지막 앨범이 될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보위는 암 투병으로 힘겨워하는 가운데서도 “머릿속에 다음 앨범에 대한 아이디어가 이미 있다”고 비스콘티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현재형의 뮤지션이었다. 음악을 퍼포먼스로 생각한 첫 번째 뮤지션이자 로큰롤을 새롭게 쓴 장본인이며, MTV와 SNS 이전에 트렌드를 이끌었던 데이비드 보위의 진보적인 가치와 사상은 지금도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고 있다. 그가 상징하는 것들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한 데이비드 보위는 언제까지나 현재형으로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전시는 계속된다

데이비드 보위 전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와 데이비드 보위 아카이브, 플래네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은 <데이비드 보위 이즈 버추얼>이라는 제목으로 올가을부터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전시를 연다. VR(Virtual Reality)과 AR (Augmented Reality) 방식을 이용했기 때문에 헤드셋이 필요하다. 3D로 스캔한 공간으로 완벽한 전시회 관람은 물론이고, 보위의 의상을 직접 입어보고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능도 포함될 예정이라 한다. 오디오 가이드는 9개 국어로 번역될 예정이며, 정확한 사용료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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