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공작> 제작기 - 진짜 북한보다 진짜같이, 실화를 극화하는 법
2018-08-16
글 : 김성훈
국수란 프로듀서·최찬민 촬영감독·박일현 미술감독·채경화 의상감독

“시나리오에 감독님의 꿈을 펼쳐놓으셨더라. (웃음) 제작 난이도가 높아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럼에도 시나리오에 힘이 있어서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싶었다.” (국수란 프로듀서) “흑금성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고? 당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제작하기가) 두려웠고, 또 한편으로는 무모해 보였지만 이런 시나리오를 쓴 윤종빈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박일현 미술감독)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영화인으로서 이런 작품에 동참하는 게 의미가 있고, 영화를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최찬민 촬영감독) “애니콜 광고를 봤던 세대로서 소재가 흥미로웠다. 북한을 구현하는 작업도 흥미로울 것 같았다.”(채경화 의상감독) 제작진의 말처럼 <공작>은 1990년대를 그린 시대극이고, 한국·중국·북한 세 공간을 담아내야 했으며, 무엇보다 흑금성 사건이 가진 실화의 무게가 무거웠던 까닭에 제작진 누구에게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경험과 열정 덕분에 베일에 가려 있던 흑금성 사건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국수란 프로듀서, 박일현 미술감독, 최찬민 촬영감독, 채경화 의상감독 등 충무로에서 내로라하는 스탭들로부터 이 영화를 어떻게 작업했는지 생생한 얘기를 들었다.

강력한 첫 만남 152개의 공간

제작부의 발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전국 방방곡곡뿐만 아니라 중국 남부와 대만까지 다 뒤졌다. <공작> 제작부가 장소 헌팅에 공들인 이유는 이야기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첩보물인데 액션 신이 없고 대사량이 많은 까닭에 관객의 눈을 붙잡아두기 위해선 공간이 쉴 새 없이 바뀌고 진짜 같아야 했다”라는 게 국수란 PD의 판단이다. 헌팅 과정에서 제작부가 찾아낸 공간은 총 152군데고, 이중에서 최종 130여곳이 영화에 등장한다.

흑금성 박석영(황정민)과 리명운 북한 대외경제위 처장(이성민)이 영화에서 베이징에서 처음 만나는 장소는 고려관이다. 중국 베이징 시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북한 음식점인데 실제로 촬영한 곳은 대만 타오위엔 석원활어식당이다. 실내가 넓은, 북한 식당 같은 분위기를 가진 식당이 한국에 없었던 탓에 대만 전역을 뒤져 겨우 찾아낸 곳이다. 국 PD는 “헌팅할 때만 해도 식당 밖 교통 소음이 심할 줄 몰랐는데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니 그렇게 시끄러울 수가 없었다”며 “감독님도 배우도 신경이 예민해 있는 촬영 초반 회차라 PD 경력 처음으로 ‘멘붕’이 왔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제작부가 식당 밖을 나가 거리를 전면 통제하면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진짜보다 진짜같이 김정일 별장

흑금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선 김정일의 등장만큼이나 별장의 위용에 놀라게 된다. 반짝반짝 빛나는 대리석과 높은 천장 그리고 운동장만큼 넓은 응접실이 흑금성을 얼마나 압도했는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박일현 미술감독은 김정일 별장을 “북한 사회의 지배자인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김 부자의 독재하에 건설된 사회주의 낙원을 과장된 벽화와 신전의 기둥양식을 통해 괴이하게 보여주고 싶었고, 북한 건축의 특징과 북한 사회주의 벽화를 참고해 세트를 만들었다”는 게 박 미술감독의 설명이다.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 영변 구룡강 장마당

장마당은 개혁·개방을 시도한 시장경제체제치고는 초라하다못해 처참한 풍경을 가진 공간이다. 장마당은 시장을 뜻하는 말인데, 1990년대 말 북한이 대기근을 겪자 사람들이 가진 걸 서로 교환하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선 외화벌이에 더욱 골몰해야 하는 리명운의 딜레마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박일현 미술감독은 장마당을 “북한의 현실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보고 “몹시 추운 날씨, 낡고 바랬지만 화려한 색감과 강력한 어구의 프로파간다 문구들이 적힌 선전벽이 길게 늘어선 그곳에 배급을 기다리는 힘없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서 있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마당을 촬영한 곳은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한 탄광소 사택으로,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다. 늘어선 사택 건물들은 오래전 풍경을 보존하고 있었고, 여러 자료에서 접했던 북한의 집합주택의 형식을 닮았다. 또 광장이 있어 장마당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박 미술감독은 “광장 한쪽에 50m정도 늘어선 관상수(향나무)가 장마당 분위기에 안 맞았다”며 “나무를 제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전 문구가 적힌 벽을 만들어 관상수를 가리면 어떨까 싶어 나무들을 덮는 긴 구조물을 만들었고, 그 구조물 앞뒤로 벽화와 선전 문구를 넣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박 미술감독의 아이디어 하나가 실제 공간을 해치지 않는 동시에 더욱 사실에 가깝게 구현한 셈이다.

장르적인 공간 밀레니엄 호텔

흑금성이 리명운, 정무택(주지훈)을 주로 만나는 공간은 베이징 밀레니엄 호텔이다. 밀레니엄 호텔은 실제로 베이징 루프트한자 센터에 위치한 캠핀스키 호텔을 모델로 했다. 캠핀스키 호텔은 독일인이 운영하는 독일식 호텔로 방음 시설이 좋고, 중국 공안이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는 까닭에 실제로 박채서와 북한 고위직은 이곳에서만 만났다. 박일현 미술감독은 “캠핀스키 호텔은 참고만 했을 뿐”이라며 “영화 속 밀레니엄 호텔은 장르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어두운 톤의 벽 장식들, 단순한 스타일의 남성적인 가구들을 구성해 인물들의 긴장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빠르게 변하고 베이징 야시장

베이징 야시장은 대북 사업가로 위장한 흑금성이 수개월 동안 수없이 오갔던 거리다. 리명운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박일현 미술감독은 “베이징 거리에 1990년대 당시 시대와 베이징이라는 공간의 특징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를 드러내는 광고판과 그것을 가로지르는 홍등을 통해 개혁·개방을 향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중국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공간을 찍은 장소는 대만의 신주 중앙시장으로 실제 상점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국수란 PD는 “시장 상인들의 협조를 구해 장사를 마치고 문 닫을 시간에 세팅하고, 보조 출연자들을 투입해 찍었다”고 설명했다.

장소도 변신한다 안기부 안가

겉은 세탁소고, 속은 안기부 안가다. 흑금성이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조진웅)으로부터 북핵 실체를 파악하라고 명령을 받는 공간이 이곳이다. 박일현 미술감독은 “일반적으로 안가는 으슥한 곳에 숨겨진 느낌인데 이 영화 속 안가는 북적대는 도시 속 의외의 공간의 이면으로, 비밀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가를 촬영한 곳은 인천시 가좌동에 위치한 썬스타다. 미싱 기계, 의자, 자동차 부품 등을 제작하는 공장들이 밀집된 곳이다. 안가뿐만 아니라 안기부 부장실, 안기부 취조실, 장성택 조카인 장성훈의 사무실 등 서너공간을 찍은 ‘일당백’ 장소인 셈이다.

눈으로 말해요 안경과 클로즈업

최찬민 촬영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밀레니엄 호텔에 혼자 남아 있는 박석영의 외로움과 두려움이 가장 먼저 이미지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박석영이 공작을 하기 위해 밖을 돌아다니는 장면 모두 안경을 쓰고 있는 반면, 호텔에 혼자 있는 시간만큼은 안경을 벗고 있다. “그 시간만큼은 박석영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는 게 최 촬영감독의 설명. 안경이 흑금성과 박석영을 구분하는 기준이라면 안경 너머의 눈은 스파이로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상대와 ‘밀당’하기 위한 무기라 할 만하다. 최 촬영감독은 “<공작>은 눈이 다 말하는 영화인 까닭에 앵글 사이즈가 넓든 좁든 간에 인물의 눈을 기준으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며 “관객도 그걸 즐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클로즈업숏을 많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속을 알 수 없도록 빛 설계

빛을 인위적으로 설계하는 보통 첩보영화와 달리 이 영화의 조명은 사실적이어야 했다. 그러면서 인물 심리에 영향을 줄 만한 광원을 찾는 게 현장에서 최 촬영감독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것은 “관객을 실존 인물들이 벌이는 심리전에 생생하게 안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빛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최찬민 촬영감독은 “안경에 조명이 비칠까봐” 유독 애를 먹었다. “흑금성, 리명운, 최학성 등 안경 쓴 인물들과 그들의 클로즈업숏들이 많았던 탓에 조명이 안경에 비쳐 화면에 나올까봐 무척 힘들었다.” 조명 외에 안경에 비치는 건 그대로 다 찍었다고 한다. 그건 “반사가 겹쳐서 인물의 속내를 오히려 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사실적으로, 평양은… 한국과 베이징 그리고 평양

흑금성의 눈에 비친 한국과 베이징 그리고 평양, 이 세 공간은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진 공간이다. 실화를 재구성한 이야기인 만큼 한국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흑금성이든, 리명운, 정무택 같은 북한 사람이든 베이징은 혼재된 느낌을 가진 공간으로 묘사됐다. 최찬민 촬영감독은 베이징을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간”이라고 보고 “이런 곳에서 남과 북이 치열한 심리전을 펼치면 어떨까 싶었다”고 전했다. 평양은 “차갑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무채색 계열의 공간”으로 구현됐다. “김정일 별장을 가장 채도가 많이 빠진 공간”으로 카메라에 담아낸 것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는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라고 한다.

한벌처럼 여러 벌을 흑금성의 패션

“군복 하나를 입더라도 비슷한 색 여러 개를 넣어 그러데이션이 느껴질 수 있도록 디테일에 신경 썼다.” 촬영 전 채경화 의상감독은 박일현 미술감독과 함께 색과 관련된 논의를 많이 나눴다. 흑금성이 “차가운 색보다 가을 낙엽 같은 따뜻한 색의 의상을 입은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간첩이나 스파이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좀더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퇴역 군인 시절의 박석영, 베이징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북한 고위직에 접근하는 대북 사업가 박석영, 안기부 대북 공작원 박석영 등 여러 얼굴을 가진 사나이인 만큼 그가 입는 옷 또한 티 나지 않는 선에서 계속 변화한다. “그가 입는 바바리코트는 디테일이 제각기 다른 옷을 여러 벌 준비해 한 벌처럼 보이도록 입혔다”는 게 채 의상감독의 설명이다. 바바리코트 색은 브라운 계통에서 시작해 베이징, 평양을 거치면서 점점 흐려진다. 또 실내든 실외든 흑금성이 코트를 쉽게 벗지도, 입지도 않는 설정 역시 언제, 어디서든 도망갈 수 있는 그의 처지를 대변한다.

전작 <아수라>(2016)에서 안경을 썼던 황정민은 이번에도 안경을 썼다. 채 의상감독은 “<아수라>와 달리 사업가나 엘리트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이베이에서 힘들게 구한 빈티지 무광 안경을 씌웠다”고 말했다.

똑같이, 진짜처럼 북한 의상

예나 지금이나 북한 옷은 원단만 다를 뿐 디자인은 거의 비슷하다. 채경화 의상감독은 충북에 있는 한 시장에 나온 북한 군복 샘플을 구해 진짜에 가까운 옷을 직접 제작했다. 리명운이 입은 북한식 슈트는 소재가 고급 실크인데, 이태원에서 오랫동안 양복을 만든 장인에게 북한 옷과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맡겨 제작됐다. 정무택 보위부 과장은 영화에서 인민복과 슈트를 번갈아 입는다. 젊은 북한 사람이고, 해외로 파견 근무 나온 설정인 까닭에 그가 입는 옷을 좀더 정장에 가깝게 디자인했고, 슈트색은 군복색과 비슷하게 제작했다. 촬영 전 의상 피팅하는 날, 이성민과 주지훈이 준비한 의상을 입었을 때 딱 떨어지는 걸 보고 무척 뿌듯해했다고 한다.

주요 공간 촬영지 리스트(공간 | 촬영지)_ 국가안전기획부 | 인천 가좌동 썬스타, 베이징 야시장 | 대만 신주 중앙시장, 베이징 고려관 | 대만 타오위엔 석원활어식당, 장성훈(장성택 조카) 사무실 | 용산 철도병원, 평양 초대소 외경 | 충북 괴산군 중원대학교, 김정일 별장 | 경북 안동시 안동호 도목 선착장, 영변 구룡강 장마당 | 강원도 동해시 동부사택

세트와 로케이션(오픈 세트 포함) 촬영의 비중은?_ 100% 세트로 지은 공간은 전체 분량의 15%에 해당된다. 김정일 별장 내부, 밀레니엄 호텔 내부, 흑금성 호텔 방, 평양 초대소 내부, 리명운 집, 안기부 안가가 100% 세트로 지은 공간에서 촬영됐다.

사용 카메라와 즐겨쓴 렌즈는?_ 최찬민 촬영감독은 아리 알렉사 노멀(Arri Alexa Normal)과 알렉사 미니(Alexa Mini) 두대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계속 어딘가로 가는 흑금성을 따라가며 담아낸 카메라는 알렉사 미니다. 렌즈는 “숏의 미묘한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아리 마스터 프라임 16mm와 20mm 세트 두 종류를 즐겨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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