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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엘자 디링거 감독 - 진창 속에서도 사랑은 가능할까?
2018-08-23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폭력의 가담자가, 자신의 얼굴을 모르는 피해자와 사랑에 빠졌다. <루나>의 설정은 이토록 센세이셔널하지만 영화는 폭력적인 시선을 배제함으로써 관객이 이 문제를 찬찬히 숙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영화를 연출한 엘자 디링거 감독을 만났다.

“참 집요한 것 같다.” 지난 8월 9일 <루나> 개봉에 앞서 한국 관객과 토크 시간을 가진 한 엘자 디링거 감독은 쏟아지는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을 이어나갔다. 폭행에 가담한 가해자가 그 피해자를 사랑하게 되는 문제적 설정. 죄의식을 가진 가해자는, 또 그 피해자는, 이 사랑을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까? <루나>는 질문을 만들어내는 영화고, 엘자 디링거 감독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의 선택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16살 소녀 루나(레티샤 클레망)는 불량한 남자친구와 어울려 임신하고 낙태를 앞둔 상황. 자신이 학대받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걸 사랑이라 착각하던 소녀는, 어느 날 남자친구의 폭행에 가담한다. 그렇게 피해자인 알렉스(로드 파라도)를 알게 된 루나는, 이후 자신이 일하던 농장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알렉스가 루나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둘의 관계는 끝날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아슬아슬한 서스펜스를 바탕으로 10대들의 성장 드라마와 멜로를 엮어 극을 긴장감 있게 끌어나간다.

루나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남자 알렉스를 만나면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상황 속에서도 사랑이 가능할까. 폭력과 야만성보다 사랑이 더 강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파고들고 싶었다는 디링거 감독. 캐릭터 설정부터 루나가 놓인 상황까지, 어린 시절 루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보면서, 또 최근 중·고등학교에서 촬영 수업을 하면서 알게 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는 감독의 말은, 캐릭터가 생생하게 만들어진 이유를 뒷받침한다.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가장 큰 고민은 역시 “폭력을 당한 피해자인 알렉스를 어떻게 그려야 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폭력의 피해자들이 복수나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론 용서나 저항이 더 강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려운 문제지만 알렉스의 선택을 통해 인류의 긍정성을 기대해보고 싶었다.”

<루나>는 디링거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알랭 레네 감독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에서 사운드 파트 스탭으로 일했던 그녀는 “오디오 작업을 하면서 감독, 배우와 가장 가까이 있으며 호흡을 느낄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지금의 연출에 도움이 됐다”고 전한다. 차기작은 돈 때문에 환자를 죽이는 간호사 이야기로, 코언 형제의 작품처럼 냉소적인 코믹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이번엔 여자만 등장할 것 같다. 고전영화들, 앨프리드 히치콕 같은 영화를 보면 너무 마초 남성들만 나와서 고통스럽다. 시대가 바뀌고, 영화계에도 점점 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시각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여자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지금의 불평등도 균형이 맞춰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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