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작>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영화사의 고전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
2018-08-23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는 인터뷰를 사양했다. 제작자로서 <공작>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윤종빈 감독과 국수란 PD에게 한 유일한 주문은 촬영 전 대본과 예산을 각각 조금만 줄여달라고 읍소한 것뿐이라고 했다. 자신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그의 말과 달리 윤 감독과 국 PD의 말을 들어보면 그의 존재가 얼마나 든든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거친 외모와 달리 영화를 포함한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고 사리사욕이 타 제작자들에 비해 없는 편이다. 영화 제작자가 대부분 관심받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한 반면 한 사장은 자신보다 감독과 배우를 돋보이게 한다.”(윤종빈 감독)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다. 촬영에 들어가면 관여를 일절 하지 않는다.”(국수란 PD) <공작>이 200만 관객(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돌파한 개봉 2주차인 지난 8월 13일, 오랜만에 한재덕 대표는 개봉 첫주라는 큰 고비 하나를 무사히 넘겨서인지 밝은 표정이었다(8월 16일 현재 <공작>은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아는 게 없다'며 사양한 이유가 뭔가.

=대본을 같이 쓴 것도 아니고 제작에 관여를 많이 하지 않았다. 국수란 PD가 도맡아 진행했고, 윤 감독도 똘똘하니까. 연출과 제작 둘 다 잘하는 게 쉽지 않은데 윤 감독은 둘 다 잘하는 사람이라 제작진을 배려할 줄 안다. 제작진도 감독이 원하는 걸 다 해주려고 했고. <공작>은 윤종빈의 영화라 제작자로서 ‘용비어천가’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

-개봉 첫주에 기대만큼 스크린 숫자가 확보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았나.

=경쟁작인 <신과 함께-인과 연>이 워낙 강력하니 어쩔 수 없다. 스크린 숫자가 기대에 못 미친 건 서운하지만 말이다.

-또 뭐가 신경 쓰였나.

=러닝타임이 다소 길다고 느낀 건 있다. 칸국제영화제 상영 버전을 무척 좋아하지만 칸에서 피드백을 듣고 좀 줄였다.

-<공작>은 실화가 가진 무게가 매우 무겁고, 시대물이라 제작비 규모가 적지 않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베이징, 평양까지 구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작 난이도가 높은 영화인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들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다. 윤 감독이 구현하고 싶은 장면을 살리려다보니 제작비가 처음에는 200억원까지 나왔는데 줄이고 줄여서 지금의 165억원 선으로 맞췄다.

-윤 감독으로부터 흑금성 사건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땠나.

=완전 재미있고 좋다고 했다. 그 사건을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진 못했으니까.

-흑금성 사건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진짜 이런 일이 있었나 싶었다.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까닭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윤 감독이 잘 찍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윤 감독에게 한 유일한 주문이 대본을 줄여달라는 것이었다고.

=주문이나 요구를 한 게 아니다. 어차피 편집에서 잘라내야 하니 조금만 줄이면 안 되겠냐고 읍소했다. 대본에 있는 장면을 다 찍으면 돈이 많이 드니까. 원래 시나리오에는 ‘황사마’(동료들이 황정민을 부르는 애칭)가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도 있었는데 그건 수조세트에서 찍어야 한다. 그 돈이 얼마야, 갑자기 꼭지가 도네. (웃음)

-대본을 줄여야 한다는 건 그만큼 대사가 많다는 얘기가 아닌가.

=대사를 축약해야 하는데 어떤 장면이 좋게 나올지 모르니 다 찍어놓고 편집할 때 잘 나온 장면을 쓰려는 감독의 욕망을 이해한다. 그래도 다음 영화는 대본을 짧게 써주십사 간곡하게 졸랐다.

-그때 윤 감독이 대사를 많이 줄이진 않았는데. (웃음)

=시나리오에서 잘려나간 신들을 잘 찍고 못 찍고를 떠나, 편집까지 고려한 계산만 잘하면 완벽한 감독이 되리라 생각한다.

-윤 감독의 파트너로 국수란 PD를 선택했는데 국 PD의 경우 어떤 점에서 <공작>을 잘 진행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나.

=경험이 굉장히 많다. 조용하게 일하면서도 추진력이 있어서 윤 감독을 잘 도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번에 되게 잘했다. 영화를 보면 다 아시잖나. 얼마나 고생했을지.

-국 PD한테 예산을 줄려달라고 요구한 것 외에 따로 주문한 건 없었다던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줄여달라). (웃음) 조금 힘들었다. 그럼에도 감독과 제작진이 예산 때문에 스트레스를 안 받게 하려고 몇 억원이라도 더 받아오려고 애를 썼다.

-그만큼 꼼꼼하고 세심하다는 평가가 충무로에서 많이 나오더라.

=쪼잔하다는 얘기구나. 되게 소심하다. (일동 폭소) 세심하지 않으면 예산이 계획보다 넘어가니까. <공작>은 예전에 함께 일했던 스탭들이라 수월한 건 있었다.

-후반작업 때 흑금성의 실존 인물인 박채서씨를 담당해준 덕분에 국 PD가 후반작업에 집중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됐다던데.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전화 잘 받고 열심히 만나면 된다.

-직접 만나보니 어떤 사람이던가.

=되게 친절해서 축구팀 형님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끼리는 박 선생님을 ‘흑형님’이라고 부른다. (웃음) 나 또한 흑형님에게 장난도 잘 치고 편하게 대한다. 우리가 편하게 대하니까 선생님 따님들도 좋아하시더라.

-영화를 보고 뭐라고 하시던가.

=VIP 시사 때 선생님이 어떻게 보실지 되게 긴장됐다. 영화 속 흑금성은 자신이 아니라고 하면 힘들어지니까. 그런데 선생님이 ‘너무 고생했다. 잘 만들었다, 윤 감독과 스탭들에게 고맙다’고 말씀해주셔서 안도할 수 있었다.

-영화사 월광과 <군도: 민란의 시대>(2014)를 시작으로 <검사외전>(2016), <보안관>(2017), 최근의 <공작>까지 4편을 연달아 공동 제작을 하고 있는데.

=월광이 곧 제작하는 <클로젯>(감독 김광빈·출연 하정우, 김남길)은 아티스트 컴퍼니와 한다. (웃음) 신인 박누리 감독의 <돈>도 공동 제작했다. 월광과 함께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그만큼 신뢰도 많이 쌓였다.

-두 회사가 함께 만든 영화들의 타율이 꽤 높지 않나(<군도: 민란의 시대>(477만명,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검사외전>(970만명), <보안관>(258만명).-편집자).

=모두 망하지 않았다.

-궁합이 좋나보다.

=그런 생각을 살짝 하고 있다.

-사실 파트너로서 윤종빈 감독은 컨트롤하기 쉽지 않잖나. (웃음)

=컨트롤이 전혀 안 되지. (웃음) 그런데 윤 감독은 영화를 찍을 때만큼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찍을까라는 생각밖에 안 하는 친구다. 잘 찍고, 열심히 일하고, 딴짓을 안 한다. 친구들과 술 마시며 영화 얘기 하고, 영화나 TV 보는 것 말고 취미가 없을 정도니까.

-윤종빈 감독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를 보고 언젠가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윤 감독의 그다음 영화인 <비스티 보이즈>(2008) 촬영이 조금 진행됐을 때 투자가 완료되지 않아 당시 다니던 회사(옐로우엔터테인먼트)에 투자 의뢰가 들어왔는데 그때 투자하고 싶을 만큼 <용서받지 못한 자>를 잘 찍었다. <비스티 보이즈> 시나리오를 읽고 윤 감독에게 ‘이런 청춘영화는 두번 찍을 수 없으니 강렬하고 세게 찍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주었다. 다른 데서 투자가 들어온 덕분에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이후 다시 만난 작품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였다. <부당거래>(2010)가 끝나자마자 함께하자는 연락이 와서 처음으로 함께 작업하게 됐다.

-<아수라>(2016)를 제작한 뒤 여러 생각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강력한 피드백들이 있었다. 별의별 욕을 다 먹었다. 그럼에도 감독님은 원하는 걸 찍었고, 나도 감독님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부추겼고, 배우들도 대단히 만족하는 영화라 욕먹는 것쯤은 괜찮았다. 대신 조금의 데이터는 쌓였다.

-어떤 데이터인가.

=우리가 보고 싶다고 해서 관객도 보고 싶은 건 아니다, 라는.

-다음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그 데이터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그렇다.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욕을 덜 먹는 방법을 연구하는 거다. 답은 없지만.

-최근 IPTV를 포함해 2차 부가판권에서 수익을 올린 덕에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거의 다 맞췄다.

-<아수라>를 끝내고 난 뒤 시네필처럼 하루에 고전영화를 많게는 서너편씩 챙겨보기 시작한 이유가 뭔가.

=제작자로서 밑천이 떨어진 것도 있고, 밀린 방학숙제를 몰아서 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뭘 알아야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 챙겨볼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다.

-작가 지망생 시절 함께 공부했던 전철홍 작가는 ‘어린 시절 한 사장은 고전영화를 매우 열심히 챙겨본 시네필’이라고 귀띔해주었는데.

=그렇게까지 챙겨본 건 아니고 조금 봤다. 영화를 학교에서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았던 까닭에 항상 결격사유가 있다고 생각해 영화를 봐야 뭘(제작)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늘 생각했었다.(한재덕 대표는 군 복무 시절 영화 일을 꿈꿨고, 제대한 뒤 영화학교 시험에 도전했으나 세번이나 떨어졌다. 이후 시나리오 교육기관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전철홍 작가를 만나 함께 시나리오를 공부한 적 있다.-편집자)

-영화를 즐겨보는 오승욱, 김성수 감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다.

=우리 회사의 그 두분은 영상자료원 수준이라 영화를 같이 보고 얘기하는 재미가 있다. 출시 안 된 영화를 미리 보고 얘기를 나누는 재미도 있고. 영화 제작이 비즈니스잖아. 사람 만나는 일이니까. 진짜 신경 써야 하는 일인 영화는 가끔 시사회나 가서 보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비닐도 안 뜯고 모아둔 DVD들을 꺼내 보기 시작한 거다.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챙겨 봤나.

=지난해 200편, 올해는 바빠서 100편 조금 넘게 봤다. 재미있는 영화도,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고, 예전에 봤던 영화도, 새로 본 영화도 있다. 며칠 전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필립 드 브로카 감독의 <리오에서 온 사나이>(1964)를 다시 봤는데 엉망진창이었다. (웃음)

-재미있게 본 영화는 뭔가.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의 <알제리 전투>(1966)는 영화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데 지금은 찍을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몰아서 본 뒤로 일을 하는 데 어떤 변화가 생겼나.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영화들의 특징이나 공통점을 찾으려고 한다. 그 영화들의 서사 전개 방식이나 촬영 등 기술들을 눈여겨보고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다. 특히 고전 누아르영화들을 주로 챙겨보는데 러닝타임이 2시간을 넘지 않는데도 이야기의 몰입감이 높더라. 많이 배우고 있다.

-영화들을 보면서 하는 고민들이 이후 사나이픽처스가 내놓는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 같나.

=고민들이 제작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고전은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잖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모두 자신이 만든 영화가 오랫동안 살아남길 원한다. 더 늦기 전에 고전들을 챙겨보는 것도 오랫동안 사랑받는 영화들을 계속 만들고 싶어서다.

-차기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돈>은 후반작업이 거의 마무리됐고, 독립영화 <양치기들>(2015)을 연출했던 신인 김진황 감독의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오승욱 감독의 <가솔린>(가제)은 각색을 거듭하고 있다. 1950년대 후반 미군 부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풍경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작품이 될 것 같다. 김성수 감독의 신작은 임화수, 이정재, 시라소니, 김두한 등 해방 전후 대한민국 주먹들의 흥망성쇠를 그린 프로젝트다. 원래 3부작으로 계획했다가 2부작으로 바뀌었고 1부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가 개봉한 뒤 일본에서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를 내놓았는데, 그 영화의 야쿠자 이야기를 좋아한다. 김성수 감독의 영화도 그런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공작>이 2주차에 접어들었는데 장기 흥행이 될 것 같나.

=영화가 재미있으면 계속 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흥행이 억지로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애써서 만든 작품이라 손해를 안 봤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났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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