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톰 오브 핀란드>의 실존 인물 토우코 라크소넨 알아보기
2018-08-29
글 : 김소미
가죽 재킷을 입은 게이 문화의 아이콘

20세기 게이 문화의 아이콘 토우코 라크소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등장했다. ‘호모에로틱’한 일러스트레션의 거장으로 불리는 라크소넨은 20세기 말의 성소수자 사회에 횃불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핀란드 출판업계의 슈퍼스타가 무민이라면, 라크소넨은 게이 컬처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세계적 아티스트로서 중요도를 달리한다. 퀴어 예술의 역사를 시작한 토우코 라크소넨의 주요 연대기를 살펴봤다.

토우코 라크소넨은 누구

토우코 라크소넨은 핀란드어로 5월을 뜻하는 단어 토우코쿠(Toukokuu) 앞 글자를 따서 토우코(Touko)라 불렸다. 지극히 평범한 이름을 부여받은 것과 달리 그는 보수적인 핀란드 사회에서 동성애자로서 배척당하는 험난한 투쟁의 삶을 살았다.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것이 1917년, 그로부터 3년후인 1920년 핀란드에서 태어난 라크소넨은 10대 시절부터 척박한 토양을 개척해나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교사였던 부모님의 영향 아래 라크소넨은 유년 시절부터 다양한 음악과 미술을 접했다. 이후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엔 농부와 목수가 젊고 유혹적인 게이 아이콘으로 표현된다. 그는 20살 무렵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훈장까지 수여받으며 독한 승부사의 기질 또한 내보인다.

헬싱키의 유명 인사, 세계를 떠돌다

1945년 종전 후 고향에 돌아온 그는 헬싱키대학 시절의 전공을 살려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등 낮에는 닥치는 대로 돈을 벌고 밤에는 카페나 클럽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 그림 작업에도 열심이어서 1940년대부터 1991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완성한 그림이 수천장에 이른다.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베를린을 포함해 유럽의 주요 도시에 뿌리내린 게이 커뮤니티의 활동지를 찾아다니며 방랑 생활을 거듭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이 환호를 보내다

1956년 말,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여 ‘올 누드 올 메일’(All nude, All male)을 내세운 미국 최초의 게이 매거진 <피지크 픽토리얼>(Physique Pictorial)에 자신의 그림을 보낸다. 보디빌딩을 다루는 잡지였던 <피지크 픽토리얼>은 라크소넨의 그림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이윽고 1957년 봄호에 상의를 탈의한 채 명랑하게 웃는 벌목꾼의 누드가 표지로 공개됐다. 라크소넨이 직접 붙인 톰이라는 가명이 미국에서 ‘톰 오브 핀란드’라는 인기 브랜드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1970년대 이르러 정체를 밝힌 라크소넨은 197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첫 전시회에서 그림 한점을 도둑맞아 상심에 잠긴다. 이후 몇년간 전시를 망설이다가 1978년 미국 LA를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뉴욕 전시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80년대 미국이 에이즈의 공포로 들끓는 동안에도 그는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등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백발에 가죽 재킷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현재 그의 작품 대다수를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하고 있다.

<톰 오브 핀란드>

핀업 보이를 사랑한 톰 오브 핀란드

라크소넨은 매우 힘차고 건강한, 전형적인 남성성을 극대화하기를 즐겼다. 근육질의 몸매, 바이크를 탄 불량배, 상의를 탈의한 채 해맑게 웃는 남성, 가죽 재킷과 제복 등 핀업 걸이 남성 버전으로 전복된 이미지가 주를 이뤘다. 이는 동성애 혐오를 일삼는 일반 사회의 권력과 대등하게 맞서려는 과장된 미장센처럼 읽힌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라크소넨이 전시한 남성 누드는 지나치게 편향적인 판타지일 수도 있지만 당시로서는 금기에 대항하고 게이의 욕망을 분출하는 창구로서 일대 반향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사진 UPI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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