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상실은 부모에게 어떤 크기의 고통일까.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는 물에 빠진 또래 소년을 구하고 죽은 아들 은찬의 부모 성철(최무성), 미숙(김여진)과 그 ‘희생’으로 살아남은 기현(성유빈)의 아이러니한 만남을 따라가는 영화다. “그 자식이 아니면 우리 은찬이 죽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아내의 원망에 남편은 “내가 물놀이 가라고 허락했다”고 한다. 뼈아픈 희생 속,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를 끊임없이 되묻고 후회하는 과정의 연속. 질타와 원망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시간들을 통해 되묻는 속죄와 용서라는 질문 속에서도 영화는 ‘살아남은’ 작은 불씨, 살아가야 할 희망을 끝내 놓치지 않는다.
누군가가 대신 재단할 수 없는 크기의 아픔을 그려내야 하는 이 영화의 표현력은 이미 부산국제영화제(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 베를린국제영화제, 우디네극동영화제(화이트 멀베리상 수상) 등을 통해 호평받았다. 최무성과 김여진. 두 배우는 사건의 객관적 시선이 아닌, 당사자들의 머리로, 마음으로 들어가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그 마디마디 아픈 대사를 내뱉는다. 두 배우라 가능했던 깊이 있는 연기와의 만남이다.
-지난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고 드디어 개봉한다. 지금은 두 배우 모두 드라마로 바쁜 시간이다. 최무성 배우는 tvN <미스터 선샤인>의 장 포수(김태리가 연기하는 고애신의 스승)를 맡아 바쁘고, 김여진 배우는 곧 방송될 MBC <내 뒤에 테리우스> 촬영에 한창이라고 알고 있다.
=최무성_ 이제 드라마 촬영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다른 건 괜찮은데, 제복을 입으니 정말 덥더라. (웃음) 내 마지막 장면은 스포일러라 밝히면 안 될 것 같다. 역사를 다루는 이야기이자 의병 이야기가 참 강렬한 것 같다. 우리를 울컥하게 만드는 게 있다.
=김여진_ 지금 <내 뒤에 테리우스>를 열심히, 많이 찍고 있는 중인데 주 52시간 근무 환경이라 미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요즘 너무 좋다. 몇년간은 거의 육아만 하며 지냈는데 현장에 오니 즐겁다. 힘들 때도 있지만, 이 일을 하면 자아실현 충족이 많이 된다고 해야 할까. 항상 연기할 때는 즐기게 된다.
-김여진씨는 한동안 활동을 쉬다가 올 초 연극 <리차드 3세>도 하고, 드라마 <마녀의 법정>도 했는데, 스크린은 정말 오랜만이다.
김여진_ <씨네21> 스튜디오도 <아이들…>(2011) 할 때쯤 온 게 마지막이었으니 7년 만이다. 그동안 영화를 안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영화 제의가 안 들어왔다. 여성의 역할이 적기도 하고, 설 자리가 없다는 걸 몇년간 더 체감한 것 같다. 그래도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흐름은 돈다고 본다. 물론 투자가 안 되는 걸 누구 하나가 총대를 메고 갈 수는 없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그래도 타개할 수 있는 작은 방법은 다양성을 가진 영화들이 사랑받는 거다. 다양한 영화들이 살아남을 숨구멍이 트여야 한다. <살아남은 아이>를 제안받고 선택하게 된 데도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5)을 굉장히 재밌게 본 기억이 있어서였다. 기회가 되면 나도 저런 영화를 해보고 싶다, 생각할 때 이 영화가 들어왔다. 알고 보니 <살아남은 아이> 제작사 아토ATO가 <우리들>도 만들었더라. (웃음)
-그럼에도 처음엔 오히려 거절하려는 마음이 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어떤 부분이 걸렸던 건가.
김여진_ 그때 막 최무성씨와 같이하기로 한 영화가 있었다. <살아남은 아이>에서처럼 그 영화에서도 부부로 출연하는 거였다. 촬영 시기도 비슷하고 해서 고민이 좀 됐다. 좋은 영화라는 것에 앞서,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이 먼저 힘들고 무겁게 다가왔다. 아이의 죽음이라는 설정에 두려움이 앞서고. 일주일간 그 마음 때문에 대본을 읽지를 못하고,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나리오를 보고나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많이 울었고, 결이 고운 영화라는 걸 느꼈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섬세하게 쓰여져 있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와 그 아이의 죽음에 연루된 소년의 이야기, 그저 ‘절망’이라는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져 있지 않고, 이들의 일상을 통해서 하나하나 납득할 수 있게 표현되어 있어서 욕심이 났다.
최무성_ 난 처음에 PD님과 약속을 잡았는데, 그 자리에 감독님이 함께 나오셨다. 직접 만나기 전에 시나리오를 먼저 받아서 읽고 결이 고운, 세심한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는데, 감독님을 직접 뵈니 시나리오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대본상으로 결이 고운 영화라 봤던 것과 달리 막상 현장에서 연기를 하다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감정의 진폭이 컸다. 마치 대하드라마를 찍는 느낌이었다. (웃음)
-신동석 감독이 초고를 쓰고 나서 캐스팅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이 자리에 없는 성유빈 배우까지, 세 배우가 캐스팅 일순위였다고 하더라. 두 배우는 어떤 지점에서 성철, 미숙으로 신 감독이 자신들을 고려했다고 보나. 최무성 배우는 최근 아버지, 스승의 역할을 많이 해서 연상되는 캐스팅이기도 했을 듯싶다. 과거에 <악마를 보았다>(2010) 출연 이후 한동안 계속 범죄자, 악인 캐릭터가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택이 아빠’를 연기한 뒤 확실히 최근엔 애잔한 아버지 역할에 특화되는 것 같다.
최무성_ 아무래도 내 나이가 아버지 나이기도 하니까 그건 당연한 거 같고. 비슷한 역할이 들어온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아버지만 해도 이런 아버지, 저런 아버지가 들어오면 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니 계속 아버지가 들어온다고 해도 상관이 없는 거다. 아버지 역을 할 때는 비애의 느낌이 묻어나는데 그건 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란 존재, 가장으로 산다는 것 자체에 그런 비애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보살펴야 하는 어떤 존재가 생긴다는 것에 대한 애잔함. 그런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김여진_ 최무성 배우는 커다란 몸집과 감성적인 내면이 부딪히는 배우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항상 멸종 위기 동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고나 할까. (웃음) 같은 배우로 볼 때 부러운 게, 양면성이 있다는 거다. 순한 성품에, 약간은 험악한 외모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반면 김여진 배우는 어떤가. 사회적인 의견을 개진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이 따랐던 시간도 있는데, 작품 외에서 오는 이미지들이 역할을 제안받을 때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
김여진_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제목만 보고 선입견이 있었다. 기존에 내가 사회적인 발언을 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나한테 이런 무거운 시나리오가 오지 않았나 싶더라.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그 안의 미숙을 보면서 그냥 ‘감독님이 캐스팅 잘하는구나’ 싶었다. (웃음) 내가 잘할 수 있는 연기, 내가 했을 때 좋은 캐릭터, 내가 최선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힘을 빼지만 감정에 몰입할 때 미숙이라는 캐릭터에 부합하게 되더라.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임상수 감독(<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이창동 감독(<박하사탕>(1999)), 임권택 감독(<취화선>(2002))과 같이 작업하면서 연기를 배워나갔다.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뭐 별거 안 하는 것 같은데 그 안에서 감정이 오가고 캐릭터가 되는 스타일의 영화들이었다. 미숙을 연기할 때 그때의 작업이 생각나기도 하고 편하고 좋더라. 물론 그동안 방송도 많이 하고, 코믹한 장르도 연기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그 폭을 넓히고 싶은 마음이 있다.
-신동석 감독의 캐스팅 1안이 성사됐다는 이면에는, 두 배우 역시 신인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오는 모험도 있었을 것 같다.
김여진_ 보면 안다. 시나리오 보고 한마디 하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말과 글이 곧 현장으로 이어진다. 감독님은 이번 영화뿐만 아니라 앞으로 영화계의 한획을 그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잘 쓴 시나리오라는 느낌이 드는 게, 여러 인물들의 상황을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쌓아 계산을 잘한 작품이다. 그런데 그 계산이 대본에 안 보이고, 굉장히 문학적으로 표현된다. 인물 역시 남성에 대해 분명히 잘 알고 있고, 여성을 잘 이해한다. 남성, 여성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피해자들을 잘 읽어낸 글이다. 좌뇌와 우뇌가 골고루 발달한 분 같다. (웃음)
최무성_ 영화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할 기회가 세번 있다. 시나리오를 보면 알고, 미팅을 하면 두 번째로 알게 되고, 현장에서 그 두번의 선택이 맞았는지 알게 된다. 캐릭터 구성을 보면 보통 남자들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싸움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의 문제해결 방식은 싸움이 아니다. 성철은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다 죽은 아들을 어떻게든 의사자로 만들어 위안을 받으려는 마음도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걸 바라보는 시각은 미숙에게 있다. 성철에게서 시작해서 미숙의 시선으로 나가는 그 방향성이 흥미롭고 신선했다.
-아이를 잃은 부모. 그 규정할 수 없는 크기의 고통을 신 안에서 표현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성철과 미숙 같은 상황에 처한 부모들의 마음을 부쩍 헤아려보게 된다.
김여진_ 단 한순간도 내 아이를 생각하지 말자는 마음이었다. 감독님이 죽은 은찬의 사진이 영화에 나오는데, 우리 아이 사진을 쓰면 어떨까 물었는데 그 부분은 거절했다. 그렇게 가져오면 안 된다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역할 안에서의 감정이 나와야 한다. 미숙은 아들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엄마다. 슬픔의 감정이 응축되어 있는 상태다. 물론 아이가 없어도 알 수 있는 슬픔이지만,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와닿지 않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주의한 건 우는 장면에서 감정이 과잉되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너무 감정에 빠져 있다보니 오히려 울지 않아야 하는 신에서 상황에 몰입해 울음이 나와서 엔지가 난 적이 많았다.
최무성_ 부모가 되면 자식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다. 그 상실감으로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지는 상상해서 되는 건 아니지 싶다. 연기를 하면서 특정한 역할이나 모델을 떠올리며 하지는 않았다. 원래 역할을 할 때 다른 연기를 참고하지 않는 편이다. 나도 모르게 그 연기에 영향을 받게 되니까. 이번 캐릭터를 하면서도 떠오르는 영화나 배역은 특별히 없었다.
김여진_ 결국 부모의 마음을 나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담담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드러내거나 표현하지 않아도 이 아픔이 어떤 형태인지 한 아이의 엄마로서 표현되는 부분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밝아 보이시네요”, “많이 괜찮아지셨나봐요” 하고 말하기도 한다. 웃으면 웃는다고 그렇게 말하고, 울면 너무 과하게 애도한다고 한소리를 한다. 이 연기를 하기 전에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뵀는데, 그분들이 가진 일상성이 많이 생각났다. 공연을 할 때 웃는 모습을 보이시다가도 어느 순간 왈칵 슬픈 감정을 쏟아내시더라.
최무성_ 슬픔을 과도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럴 수가 없다. 그러면 죽게 된다. 버티려면 그렇게 덤덤해질 수밖에 없을 거다. 모두가 죽을 수는 없으니, 그래도 삶을 살아야 하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사실 각오를 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감정적 흐름을 잡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전체적인 시나리오 구성이 좋아서 감정의 흐름이 끊기지 않더라. 성철의 감정이 어떻게, 또 왜 그런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컷이 많지 않은 영화, 긴 호흡을 따라가는 영화다. 감정을 쉽게 유추할 플래시백도 주지 않는다. 감정의 기복이 큰 작품이고 반전이 거듭되는 스토리라인임에도, 연출의 스타일은 그걸 자꾸 삐져나오지 않게 누르고 있다. 연기를 할 때 그 호흡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했나.
김여진_ 미숙이 기현을 찾아가서 “네가 정말 그랬니?” 하고 분노하는 장면이 있다. 감독님이 어떻게 찍을지 디테일하게 이야기해주지는 않았는데, 미숙과 기현이 마주 보고 일어서 서로를 붙잡고 하는, 감정과 동작이 큰 장면을 원신 원컷으로 갔다. 감독님이 ‘이걸로 된 것 같다’고 하시더라. 사실 불안한 마음에 나중에 쓰지 않더라도 테이크를 여러 번 가기도 하고, 배우가 울면 그걸 담으려는 욕심에 카메라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감독님은 그냥 그렇게 하고 끝내더라. 촬영을 쭉 하면서 보니 내가 생각하는 연기 호흡과 감독님의 스타일이 잘 맞았다.
최무성_ 촬영을 하면서 신동석 감독의 스타일이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게 기현이가 다른 아이들하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 성철이 봉고차에 탄 채 창문을 내리고 그걸 보는 장면이 있다. 사실 이 신에서 이야기의 주체는 기현이고 성철은 관찰자다. 그런데 앵글은 성철이 더 크게 받는다. 바닥을 보수하는 장면에서 기현이 소리지르면서 내려갈 때도 액션의 주체는 기현인데, 앵글은 성철이 더 크다. 화자가 되는 사람을 축소하는 앵글이다. 그렇게 하면 화면에 보이는 것보다 내면에 더 집중하게 된다. 내 연기도 뭘 더 많이 드러낼 수 없고, 오히려 생각할 여지를 주게 된다 싶더라.
김여진_ 첫 번째 컷에 오케이된 적이 또 있었는데. 성철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부부가 불을 끈 채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첫 촬영인데, 이미 영화상으로는 감정적으로 정점을 찍는 장면이라 빠져들기 쉽지 않은 장면이었다. 감독님이 유튜브로 야나체크의 음악 영상을 보여주는데, 그 감정이 잘 전달됐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는데, 허하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그 음악을 듣고 순간적으로 몰입이 됐다. “이게 맞아요?” 했더니 좋다고 하셨다. 감정을 잘 조절해야 했는데 항상 감독님을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
-은호의 죽음과 기현의 등장 사이에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 어떤 비밀이 존재한다. 영화를 보면 이 비밀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긴장감을 형성한다. 그 안에서 성철은 아들이 구한 기현과의 만남을 아내인 미숙에게 숨기려 하고, 미숙 역시 이후 성철에게 기현의 비밀을 숨긴다.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서 라기보다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또 가까스로 얻은 이 평화를 깨기 싫어하는 안타까운 매달림으로 보인다.
최무성_ 완성된 영화를 보니 그 긴장감이 살았는데, 막상 연기를 할 때는 내 캐릭터가 하는 행동이 비밀이 된다거나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가게 된다. 이 영화는 미숙의 감정 변화를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다. 각자 성격도 다르고 그래서 애도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마음을 오픈하지 않고 가는 것이 깔려 있다. 미스터리 장르도 아니고 반전을 주자는 마음으로 하지는 않았다.
김여진_ 시사 후 더 스릴러로 가지, 더 긴장감을 주지, 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결의 영화는 아니라고 봤다. 결국 이 영화의 주제기도 한데, 아이를 잃은 부부인 성철과 미숙의 마음은 같다고 본다. 그런데 각자 드러내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그렇게 다른 애도의 방법, 위로의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세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게 될까.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 영화의 결론이 주는 의미를 나눠보고 싶다. 사실 가장 독한 장면이 될 수도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따뜻한 희망으로 비치는 이 영화의 좋은 장면이자 이 결론의 숨통을 위해 영화가 앞선 시간을 달려왔다는 생각도 든다.
김여진_ 촬영하면서 꿈을 여러 번 꿨다. 세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그런 간절함이 생기더라. 미숙이,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한 기현이를 처음에는 원망하다가 순식간에 애정으로 돌아서는 감정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갈 곳 없는 모성애가 결국 그 아이한테로 갈 수밖에 없겠구나. 머리는 아니더라도 마음은 그대로 갈 수밖에 없는 거다. 감독님께 그래서 “이렇게 세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최무성_ 영화를 보며 고통과 용서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삶의 고통을 어떻게 이 세 사람이 이겨나가고 용서하게 되는지에 대해 관찰해야 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컷이 흥미로운 건 미숙과 기현의 관계라고 봤다. 거기에 각자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모습들이 응축되어서 표현된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그래서 끝이 아닌, 영화가 온전히 새로 시작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할 이야기는 이제부터구나. 그래서 이 영화의 힘이 여기 있다 싶었다. 시나리오 읽을 때도, 촬영하면서도 이 부분을 크게 못 느꼈는데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 영화를 보면서 알겠더라. 신 감독이 내 뒤통수를 이렇게 한대 쳤구나 싶었다. (웃음)
-각종 영화제에서 이미 호평받고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영화에 참여한 의미도 남다를 것 같다.
최무성_ 기존 상업영화가 획일화되는 느낌이 있다면, 독립영화에는 재밌는 주제들이 많다. 감독들이 더 온전하게 사이즈 작은 영화를 하면 좋겠다.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독립영화를 기성감독들도 기회를 찾아서 찍으면 좋지 않을까. 높은 목표를 두고 기획하는 게 아니라 시작부터 작은 마음으로 만드는 영화들도 나왔으면 한다. 그래야 관객이 주류영화와는 또 다른 영화를 볼 기회가 생길 것 같다. 배우들도 출연 기회가 많아지고.
김여진_ 남편이 드라마 PD지 않나.(<신돈> <개와 늑대의 시간> <달콤한 인생> <결혼계약> 등을 연출한 김진민 PD다.) 친분 있는 이들과 모여서 우리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제작비를 얘기했더니 깜짝 놀라더라. 그 기간에, 그 제작비로 어떻게 영화를 찍을 수 있냐고. 내가 ‘당신도 하면 되겠다’ 며 남편에게 권유했다.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예산이 작아서다. 대작을 하는 감독들이 이런 규모가 작은 영화도 만들어주면 어떨까. 좋은 배우들과 같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 시도가 비록 잘 안 될 때가 있어도 거기서 그만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해나가 영화의 저변이 확대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