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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결혼식> 이석근 감독 - 여러 사람의 손을 탄 연애성장담
2018-08-30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형은 왠지 <너의 결혼식>으로 데뷔할 것 같아.” 10여년 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유성협 시나리오작가에게 SOS를 보낸 이석근 감독은 노트북에 있던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읽은 동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너의 결혼식>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12년 전부터 틈틈이 써왔던 시나리오는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용해 수정을 거듭했고, <너의 결혼식>은 남성 중심의 로맨스물이 안고 있던 일련의 단점이 희석된 작품이 됐다. “영화는 혼자 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귀를 열고 소통하는 자세의 힘을 보여준 이석근 감독을 만났다.

-<너의 결혼식>의 초고를 쓴 건 2007년이라고.

=12년 전 하객으로 간 결혼식에서 울고 있는 신부를 봤다. 거기서 “만약 저 사람이 내가 호감을 느끼고 있던 여자라면 어떨까”를 상상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다른 작품도 썼지만 마음먹고 시간을 내 <너의 결혼식>을 완성시킬 때쯤 <건축학개론>(2012)이 나왔다. (웃음) 다른 시나리오를 쓰다가 다시 <너의 결혼식>을 붙잡으려고 하니 똑같은 하숙집 설정이 등장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나왔다. 그러다 내가 썼던 다른 스릴러 장르 시나리오를 기억하던 친구가 김정민 필름케이 대표를 소개해줬다. 그 스릴러영화는 잘 안 됐지만 함께 보여드린 <너의 결혼식>을 제작사가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박보영 배우가 관심을 가지면서 내 인생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웃음)

-고등학생 때 승희(박보영)에게 첫눈에 반한 우연(김영광)은 여러 이유로 사랑의 결실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너의 결혼식>은 그 원인이 첫사랑에게 있다며 그녀가 나쁘다고 욕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승희’라는 작명에 “감히 남자를 갈아타다니!”라는 분노의 의미가 담겨 있나 했지만 막상 보니 전혀 아니었고. (웃음)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름은 ‘승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환승입니다!” 효과음에서 ‘승희’라는 이름이 들리더라. 승희도 우연이도 흠은 있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친구들이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승희가 악해 보일 수 있다고 하는 부분을 조금씩 만져나갔다. 여러 사람의 손을 탄 거다.

-박보영 배우의 의견도 많이 반영됐다고 들었는데.

=승희에게 현실감과 설득력이 더 생겼다. 남자들의 기억 속에 있는 뭉뚱그려진 느낌으로만 가지 말자고 말이다. 원래 승희는 우연의 기억에 의해 보여지는 수동적인 피사체 같은 인물이었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과 여성 각색 작가들과 보영씨의 의견을 들으면서 점점 색깔이 채워졌다.

-우연이 승희의 생일날 보여준 행동은 너무 미성숙했지만 그외에는 전반적으로 심한 선을 넘지는 않더라.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감정의 끝이 있지 않겠나. 김영광 배우를 캐스팅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첫 미팅을 하는데, 천진난만한 소년 같은 매력이 있었다. 시나리오에서는 우연의 행동이 비호감과 집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데, 이 배우가 하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또한 원래 캐릭터는 샌님 과에 가까웠는데, 실제 배우에 맞게 캐릭터도 많이 바뀌었다.

-우연을 포함한 대학 친구 4인방의 묘사가 매우 현실적이다.

=우리끼리 일부러 술자리를 많이 가졌는데,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변 친구가 우연이 같은 일을 당했다면 같이 고민을 나누나? 다들 아니라더라. 누구나 사랑을 하지만 걔는 걔고 나는 나라고. 그때 나눈 얘기가 영화에 반영됐다. 보통 로맨스물은 주인공의 짝사랑을 친구들이 돕는데, 일부러 그렇게 진행하지 않았다.

-촬영하면서 남녀의 시각 차이가 느껴진 순간도 있었겠다.

=시나리오상에서만 봤을 때의 뉘앙스를 다르게 읽은 적이 있었다. 의상 실습실에서 소정(신소율)이 승희에게 우연을 소개해달라며 혹시 여자친구가 있냐고 묻는 장면이 “그건 아닌데…”라고 답하고 끝난다. 보영씨가 이건 뉘앙스가 좀 다르다고, 여지를 주는 느낌이라는 거다. 진짜 그런가?

-당연하지. (일동 폭소) 그렇게 말하면 소정은 “얘는 나한테 그 남자애를 소개해주는 게 싫나?” 생각할 거고, 이른바 어장관리처럼 보일 거다.

=아직도 모르겠다. 이게 왜 여지를 주는 거지? 남자 언어와 여자 언어가 되게 다르다. 보영씨가 지적해서 현장에서 바로 바꾼 부분도 있다. “저기가 우리 하숙집”이라고 우연에게 굳이 말하는 장면은 확실히 여지를 주는 것 같았거든. (웃음) 아무튼 여전히 잘 모르겠는 부분이 있다.

-남학생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이 영화 초·중반의 유머 코드다. 여성 관객이 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고민은 없었나.

=시나리오를 오래 쓰면서 정말 많은 모니터링을 거쳤다. 배우들도 투자자도 글을 봤고, 그 시간 동안 살아남은 게 지금의 결과물이다.

-결국 <너의 결혼식>은 우연의 성장영화로 보였다. 반면 승희의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일부 편집됐다고 들었는데.

=승희에게는 미용실에서 우연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게 매우 큰 트라우마였다. 원래 우연이 승희에게 왜 나는 안 되냐고 묻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승희가 울면서 널 보면 깨진 유리를 통해 날 보던 그 표정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앞선 미용실 장면에서 보영씨가 보여준 감정 연기가 좋아서 충분하다고 봤다. 또한 고궁에서 두 사람이 유학 문제로 각을 세우며 싸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장례식 내용만으로 충분히 설명돼서 편집했다. 벨기에로 떠난 승희가 페이스북 댓글을 보고 우연이 소개팅을 한다고 오해하는 신도 있었다. 끝까지 두 사람을 엇갈리게 만드는 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에 편집했다.

-<너의 결혼식>의 마무리는 뻔한 자기연민 대신 성장을 보여준다. 반면 엔딩 직전까지 영화가 개그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더 아쉽더라.

=우연과 승희의 희로애락을 다 같이 본 친구들이고, 너희도 모두 주인공이라고 항상 말해왔다. 끝까지 함께 등장시켜서 다 같이 성장하는 인물로 그려주고 싶었다.

-전에는 <범죄도시>(2017), <부라더>(2017) 각색을 했더라. 계속 시나리오 쓰는 일을 해왔나? 지금 구상하는 이야기도 궁금하다.

=원래는 영화와 상관없는 길을 걷다가 제대 후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거기서 다닌 게 방송학과다.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석사까지 하게 됐다. 런던대학교 대학원에서 <내부자들>(2015)을 만든 우민호 감독과 친해졌고, 영화의 꿈을 꾸게 됐다. 귀국 후에는 10년 동안 여러 회사를 떠돌며 시나리오만 썼다. 휴먼 코미디, 범죄, 스릴러, 신파 등 두루두루 다 썼다. 하지만 이번에 후반작업까지 해보고 나니 새로운 눈이 생겨서, 그동안 썼던 글이 마음에 안 들더라. 차기작은 미정이지만 사람 향기 나는 그런 영화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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