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가 처한 현실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다룬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많은 해외 영화제에서 관심을 받은 화제작이다. 주목할 독립영화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또 현재 유의미한 행보를 보이는 제작사 아토ATO의 영화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데뷔작을 연출한 신동석 감독을 만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준비 중인 차기작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살아남은 아이>는 어떤 기획 의도에서 출발한 영화인가.
=살면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책이나 영화에서 많은 위안을 얻으며 살아왔다. 그때마다 애도라는 감정을 어루만지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아무래도 고통스럽고 힘든 이야기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첫 작품으로 만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마다 가족 중 누군가를 잃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 자연스럽게 영화화해야겠다는 마음의 불씨가 생겨났다.
-처음 구상했던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 사이에 차이가 있나.
=시나리오상에서 지금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결말도 처음부터 확고했고 뭘 바꾸기보다 부모와 기현(성유빈), 세 인물의 감정의 결을 어떻게 하면 더 세심하게 다룰까를 고민했다. 예를 들면 ‘미숙(김여진)을 좀더 날카로운 인물로 그려야 할까’ 같은 고민을 했고 그런 감정의 디테일을 계속 수정해나갔다. 세 인물 중 누구 하나가 부각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있었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은 언제 지었나.
=초고 때부터 정해둔 제목이었다. 제목이 가리키는 인물은 아들이 살려낸 아이, 기현이다. 그런데 결말에 다다르면 이 제목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진정 살아남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것 같기도 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김여진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제목에서부터 굉장히 고통스러운 이야기일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제목의 인상만큼 힘들지는 않더라”라는 의견을 줘서 다른 제목을 잠시 고민한 적은 있었다.
-제목이 가리키는 인물 기현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가 겪게 되는 일상에서의 소요가 더 주된 흐름을 만들어간다.
=부부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영화가 제시하는 모든 정보도 부부의 시선에서 제한된다. 이를테면 회상 장면도 없다. 나한테는 부부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방향이 중요했다.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애도의 방식과 언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갈등을 빚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위로라는 게 정말 어려운 것인가, 라는 질문을 품게 되는 것 같다. 부부 사이의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위로가 상처를 덧나게 하듯, 위로하는 사람들도 노력을 해야 한다. 위로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종종 너무 쉬운 길을 택하게 되는데, 그런 문제를 다뤄보고 싶어서 부부의 관점을 더 중요하게 다룬 것 같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김여진, 최무성 배우를 염두에 뒀다고.
=초고를 쓰고 캐스팅에 대한 고민을 할 때부터 세 사람의 앙상블을 의심한 적이 없다. 시나리오를 읽은 배우들이 너무나 흔쾌히 하겠다고 이야기해서 굉장히 행복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최무성 선배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할 수 있는, 개인적으로는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면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아빠 성철(최무성)이 지닌 상처를 한 방향으로만 표현하지 않으려면, 그러니까 처음엔 따스했다가 나중에 폭발하는 감정을 다루려면 그가 적역이었다. 김여진 배우의 경우 사회적 활동을 왕성히 하는 등 뛰어난 공감 능력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성정을 지닌 배우가 자신의 고통을 넘어서 기현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맡으면 좋을 것 같았다.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편으로 최무성 배우와는 대조적인 이미지의 배우가 함께 부부 역할을 맡았을 때 오히려 좋아 보일 거라 생각했다.
-기현 역으로 성유빈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도 궁금하다.
=우선 기현은 그 인물의 나이와 동년배인 배우가 해주길 원했다. <대호>(2015)에서 유빈군이 보여준 연기를 보고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기현은 일상에서 겉으로 드러내보이는 상황이나 표정 등으로 어떤 사람인지 읽어내기가 어려운 캐릭터다. 영화를 끝까지 봐야 알 수 있는, 복잡한 감정 속에 휩싸여 있는 인물이다. 다행히도 배우가 기현의 감정의 결을 잘 이해했고 연기하던 도중에 ‘뭘 빠뜨리고 연기한 것 같다, 다시 한번 해보겠다’고 하며 준비해온 연기를 재차 보여주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애도와 용서에 관한 인물의 상황이 급변하게 되는 순간은 기현이 마음에 담아둔 진실을 미숙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그 후 미숙의 흔들리는 뒷모습을 따라잡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는 현장에서 실직자 같았다.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들 알아서 해줬기 때문이다. (웃음) 김여진 배우는 시나리오를 읽고 본인이 연구해온 대로라면 분명 감정이 덜거덕거릴 것 같은 장면은 내게 미리 알려줬다. 실제 촬영해보면 그녀의 말이 맞는 게 신기했다. 그런 경험을 서너번 하니 믿고 맡기게 되더라. 미숙의 뒷모습 장면도 시나리오에는 “미숙이 갈지자로 걷는다” 정도의 설정만 있었는데, 손동작에서부터 여진씨가 모두 만들어왔다. 리허설을 해보고 그녀의 연기를 제대로 담기 위해 앵글도 바꿨다.
-그 장면에서만큼은 음악이 도드라져 보인다.
=김해원 음악감독과 그 장면의 음악을 논의하면서 감정을 증폭시키면 안 된다, 감정의 잔향만을 다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나는 그 장면의 음악이 인물의 감정보다 작다고 생각한다.
-두편의 단편영화 <물결이 일다>(2005)와 <가희와 BH>(2006)를 만들고 장편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는데 계속 영화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할 수 있는 게 영화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웃음) 시나리오를 오래 쓰기도 했고. 살면서 버리지 못한 책을 가끔식 꺼내보듯 반복해서 보게 되는 영화가 몇편 있는데 그럴 때마다 영화를 기준으로 이해하는 지점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 나도 그렇게 가끔씩 꺼내보면 좋을 영화를 만들고 싶다.
-다른 공부를 하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6기로 재입학해 그때부터 영화를 공부했다. 언제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중고생 때에는 영화를 심각하게 보거나 생각하지 않다가 대학 들어와서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1976)를 보게 됐다. 영화가 이해는 안 가지만 자꾸만 그 영화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내가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은 강한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에 대한 질문을 품은 영화라면 끊임없이 도전해볼 것 같다.
-현재 준비 중인 차기작은 어떤 이야기인가.
=범죄영화다. 살인범을 쫓는 여성 형사가 주인공인데 장르적인 접근보다는 정서적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살아남은 아이> 만들 때부터 언젠가 한번 꼭 영화화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계약서는 안 썼지만 아토ATO와 함께 작업하게 될 것 같은데, (인터뷰 장소로 찾아온 제정주 프로듀서를 바라보며) 아토ATO가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