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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수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전주시장, “권력과 자본에 맞선 단단한 울타리 역할을 하려 한다”
2018-09-06
글 : 주성철
사진 : 최성열

“권력과 자본과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독립, 그것이 진정한 독립이다.”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 김승수 조직위원장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 덕분인지 지난 몇년간 전주국제영화제가 보여준 성장은 눈부시다. 특히 각 영화제의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이전의 개최 결과와 평가 결과를 참고하여 발표한,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제 평가 결과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 등을 통해 영화 제작과 배급에 있어서도 탁월한 성과를 보여준 점도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는 전주영화제에서 <자백>(2016)을 상영하고 <노무현입니다>(2017)의 제작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과 함께 지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세명의 지방자치단체장 중 한명이기도 하다. 그런 진통 속에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영화제 20주년이 되는 2019년을 기다리며 ‘독립 그 이상의 독립, 영화제 그 이상의 영화제’를 꿈꾼다는 그를 전주시청에서 만났다. 푹신한 가죽 소파나 의자 없이 높은 테이블 앞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는 그의 집무실부터 활기가 넘쳐보였다.

-젊은 시장답게 서서 일하는 집무실이 신선하다.

=개인 의자뿐만 아니라 회의실에 있던 소파를 없애고 서서 일한 지 3년 반 정도 됐다. 편하게 앉아 있으면 잡생각도 많아지고 집중력도 덜한 것 같아서 바꿔봤다. 그래서 오늘처럼 손님이 찾아오면 잠깐이라도 앉을 수 있어서 정말 반갑다. (웃음)

-언제나 전주영화제의 조직위원장으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200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시작할 때, 당시 김완주 시장님의 수행비서로 일했다. 그전에 맨 처음 영화제를 제안하셨던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님으로부터도 영화제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전주영화제의 태동기부터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제가 걸어온 길, 가야 할 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본질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걸 못 지키면 전주영화제는 거기서 끝나는 거다.

-그런 마음으로 올해 전주영화제를 치러낸 소감은.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위원장으로서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에 대해 집행위원장 등에게 충분히 설명했다. 전주영화제가 이제 전주를 대표하는 축제가 됐는데, 선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주영화제를 사랑한다. 눈곱만큼도 폐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뒤에서 지켜봤다.

-그래서 내년 전주영화제의 20주년을 준비하는 마음이 남다를 것 같다.

=스무살을 맞이하며 영화제가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제의 독립은 세 가지 차원이다. 권력, 자본, 그리고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세 가지를 지켜내는 게 조직위원장의 역할이다. 내가 영화 전문가는 아니니까 그런 환경 안에서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이 실무를 진행하는 거다. 조직위원장으로 프로그램에 관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래서 <천안함 프로젝트>(2013), <7년-그들이 없는 언론>(2016), <노무현입니다> 같은 작품들이 문제없이 상영될 수 있었다. 조직위원장은 권력과 자본에 맞서 외풍을 막아주는 단단한 울타리 역할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영화라 할지라도, 그래서 일부 시민들의 일상적 가치관과 달라 비난받을지라도 프로그래머들이 보기에 영화적 가치를 위해서 상영할 만한 영화라면 그 또한 감수해야 한다. 20주년이면 꽃이 피는 해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지켜온 그 세 가지 차원의 독립 정신이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영화제 집행부, 프로그래머들과의 관계에 대해 자평한다면.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 더 나아가 전주영화제를 둘러싼 행정과 시민의 팀워크가 지금처럼 잘 맞았던 때가 없는 것 같다. 바로 그것이 행복한 영화제 아닐까 싶다. 어떤 영화를 프로그래밍하건 간섭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외압으로부터 막아줄 것이란 믿음이 있고, 그에 대해 시민들은 물론 공무원들과 시의회까지, 한팀이라는 생각으로 이보다 더 호흡이 잘 맞을 순 없을 것 같다.

-정말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다. (웃음) 타 영화제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이기도 하고.

=그게 바로 ‘전주’라고 생각한다. 눈으로 볼 순 없어도 이 도시에 흐르는 정신이 있을 것 아닌가. 나 또한 오랫동안 전주의 정신이라는 것을 고민하던 가운데 ‘꽃심’이라는 단어가 추출됐다. 전주 한옥마을에 최명희문학관이 있는데, 바로 그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에 나오는 ‘꽃심’이 그것이다. 동토의 땅을 뚫고 나와 부드러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게 바로 꽃의 심지, 꽃심이다. 전주영화제 또한 전주가 결코 만만하지 않은, 역사정신이 뚜렷한 도시라는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추진 중인 전주 ‘독립영화의 전당’ 건립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전주영화제가 영화진흥위원회 평가 1위를 기록하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제 기간에만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365일 24시간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전주 독립영화의 전당을 통해 전주가 진정한 독립영화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만드는 사람과 관람하는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고 대화하는,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상영하는 진짜 독립영화관이 되어야 한다. 지금 전주는 구도심이 활발하게 살아나고 있는데, 바로 그곳에서 꽃심의 정신을 담은 멋진 건물로 지어지길 바라며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주는 ‘교육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그것은 영화 인재를 육성한다는 측면에서도 특화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과거에는 교육의 도시라는 게 공부 잘하고 대학 진학률 높은 도시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는 학생들 저마다의 다양성을 키워주는 교육도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아이들을 생태놀이터 같은 숲에서 놀게 하자는 것이고, 다음으로 각각 도서관과 미술관에서 놀게 하자는 것이다. 11개 도서관을 리모델링하고 있고, 팔복동 공단에 있던 60년 된 카세트테이프 공장을 미술관으로 오픈했다. 영화쪽으로는 전북독립영화협회를 꾸준히 지원하면서 마을미디어를 만들어 공동체를 키워가려 하고 있다. 전주는 총 35개동으로 이뤄져 있는데, 노송동을 시작으로 각 마을의 인물과 전설 같은 것들을 조사하고 있고, 올해까지 하면 전체 동을 다 마친다. 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도 쓰고 마을영상제도 해보려고 한다. 전주영화제에서 접했던 일본 독립영화들을 보면 조그만 마을의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들이 많더라. 우리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 본다.

-영화 바깥으로 민선 7기 첫 번째 결재사업이었던 ‘천만그루 나무심기’와 불우한 이웃 아이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엄마의 밥상’ 사업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타 지방 분들이 전주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오면 8차선 도로가 있었다. 거기서 1km를 반절로 잘라서 곡선 광장을 만들고 숲을 만들었다. 시행 초기 논란도 많았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을 만들고 도심 속 숲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천개 넘는 버스 승강장을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으로 꾸미고 있다. 그렇게 전주에 천개의 도심 속 미술관이 생기는 거다. 그리고 점심 급식은 이미 이뤄지고 있지만, 점심만 해결하고 아침과 저녁을 굶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3년 반 전부터 소외계층·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매일 따뜻한 아침밥을 배달하고 있다. 그 아이들이 굶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올해 극심한 폭염을 겪었는데, 폭염의 사회학이라고나 할까, 결국 폭염에 쓰러지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거의 자포자기한 청년들의 소외 문제도 심각하다는 생각에 ‘청년 쉼표’라는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1년에 100명 정도 뽑아서 50명씩 3개월 동안 기본소득 개념으로 지급하여 우리 사회로 들어오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5천명씩 전국 최초로 건강검진도 해준다. 청년들은 막연하게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시행 결과 25%가 재검을 받아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아동 복지, 청소년 소외, 일자리와 건강과 주거 안정 문제가 문화예술과 결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포괄적으로 고민하고 있고 대안을 찾고자 한다.

-끝으로 ‘내 인생의 영화’가 있다면. 그리고 조직위원장으로서의 목표도 듣고 싶다.

=<귀향>(2015)이다. 내 정치적 색깔을 가져가는 너무나 중요한 영화이자, 전주가 용기를 내어 상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전주 풍남문에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는데, 전국에서 가장 이른 시일 내에 가장 많은 시민이 참여해서 만든 소녀상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허스토리>(2017) 상영회도 가졌다. 물론 <노무현입니다>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시청 앞에서 앙코르 상영할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올 줄 몰랐다. 반신반의했던 이창재 감독도 크게 놀랐다. 시민들 사이에서 ‘전주에서 만든 영화’라는 애정이 큰 것 같았다. 좋아하는 배우는 딱히 없는데 조승우를 되게 좋아한다. (웃음) 올해 너무 바빠서 영화를 보지 못해 좀 갈증이 있다. 우선은 내년 20주년을 잘 준비하자는 생각뿐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위로받고 즐겁게 일하고 꿈도 실현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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