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을 8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 607호.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이곳을 급습했다. 전직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국정원이 정치 관련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에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달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것이다. 증거 인멸을 우려한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경찰을 대동해 오피스텔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오피스텔 문은 굳게 잠긴 채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실제로 그곳에는 국정원 블랙요원 김하영씨가 있었고, 팽팽한 대치를 시작한 지 나흘이 지난 12월 12일 김씨는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왔다.
<더 블랙>은 18대 대선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국정원 여론조작사건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이마리오 감독의 내레이션은 당시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안내하며 짚어나간다. 경찰이 김씨의 노트북을 디지털 포렌식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말들은 당시 경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드러낸다. 재연 장면에서 배우 김중기가 연기한 전직 검사 X씨는 당시 윤석열 검사팀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국정원 등 윗선으로부터 어떤 압력을 받았는지 뒷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공안검사조차 당시 이 사건을 대선 개입으로 보았지만, 당시 집권세력이 이 사건을 막기 위해 벌인 일들이 치졸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