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타샤 튜더>에 담긴 자연주의자 타샤 튜더의 삶
2018-09-12
글 : 임수연
타샤의 정원

타샤 튜더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그의 그림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들 것이다. 혹은 그가 가꾼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른다. 타샤 튜더는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삽화를 그리고 <호박 달빛> <1은 하나> <코기빌 마을축제> 등의 동화책을 쓴 작가다. 그의 생전 인터뷰가 담긴 다큐멘터리 <타샤 튜더>가 사후 10년이 되는 해에 한국에서 개봉한다. 영화는 타샤 튜더가 동화작가로서 쌓은 경력보다는 그의 정원부터 인형의 집에 이르기까지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공간에 집중한다. <타샤 튜더>에 담긴 그의 인생을 미리 정리해보았다.

사교계보다는 농사짓기에 관심 있던 어린 시절

“그림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혼자 있는 게 좋다.” 1915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타샤 튜더의 집안은 헨리 소로, 마크 트웨인, 에머슨 등 유명인사와 친분이 있는 명문가였다. 하지만 사교계보다 집안일에 관심을 보이고, 농사를 짓거나 우유를 짜면서 살고 싶었던 그는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를 따라 뉴욕에 가는 대신 코네티컷에 있는 어머니 친구 가족과 살게 됐다. 그곳에서 체험한 자유로운 가풍은 타샤 튜더의 어린 시절 기억을 구성하며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인형은 창작의 원천

타샤 튜더는 어릴 때부터 인형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했고, 직접 인형 옷을 디자인해 제작하기도 했다. 7살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어머니가 만들어준 미니어처 인형 집은 타샤 튜더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이후 그는 80여년간 인형과 인형의 세계를 손수 만들었다. 강연료나 초상화 작품비 대신 인형의 집에 놓을 물건을 받기도 할 만큼 그는 인형의 집에 애정을 바쳤지만,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인형놀이는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고, 인형과 함께 어떤 세계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특성은 창작의 원천이 되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가능케 만들었다.

타샤 튜더의 집

타샤 튜더의 정원을 취재해달라는 잡지사의 요청으로 그의 저택을 찾은 포토그래퍼 리처드 브라운은 “1930년 뉴햄프셔와 버몬트 사이에 있는 마법의 공간 속에 들어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숫염소와 줄에 널린 빨래가 풍기는 짙은 냄새는 이상적이면서도 명확하게 현실적이었다. 풍상을 겪은 낡은 농가와 옥외 건물들이 언덕 경사면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담쟁이덩굴과 장미, 라일락이 건물을 휘감고 있었다.” 여전히 구식 무쇠 스토브로 요리를 하는 이 집은 19세기 농가 풍경과 닮았으면서, 타샤 튜더가 그린 삽화의 한 장면이기도 했다. 미국이 가장 번성했던 1830년대의 생활방식과 골동품에 관심을 보이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의 가치를 믿은 그는 작품에서도 이를 계승하고자 했다.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그리다

타샤 튜더는 초상화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내 그림의 모델은 모두 곁에 있는 인물과 동물 그리고 현실의 풍경이다.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사진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본 사물이지 내 눈으로 본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그의 작품세계 역시 어머니의 조언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다. 뉴욕에 있는 많은 출판사들을 찾아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고, 아동출판계의 여왕이라 불리던 편집자 메이 메시는 “당신 그림은 꽃 카탈로그 같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옥스퍼드대학교출판부에서 <호박 달빛>을 받아주면서 그는 동화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타샤 튜더는 직접 쓰고 그린 동화 20여편을 포함해 70년간 100권이 넘는 책의 삽화를 그렸다.

30여년간 가꾼 정원

동화책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타샤 튜더는 미국 버몬트주 산골에 있는 30만평 대지를 구입했다. 이후 18세기 영국식으로 30여년간 가꾼 정원은 전세계 원예가들이 주목하는 명소가 됐다. 직접 씨를 뿌리고 키워낸 꽃 중에는 원래 가꾸기 어렵다는 1930년 품종 장미도 있다. 타샤 튜더는 “정원을 가꿔본 사람들은 안다. 꽃은 사람을 배반할 줄 모른다. 공을 들이면 반드시 답례를 해온다”며 꽃이 주는 의미를 말한다. 또한 꽃이 행복한지 아닌지는 바라보면 알 수 있듯, 우리 역시 좋아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믿는다. 매 순간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그의 신조는 그가 가꾼 정원과도 일체화됐고, 타샤의 정원은 예술 작품만큼이나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영감을 주는 공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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