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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많은 소녀> 김의석 감독, “영희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8-09-13
글 : 김현수
사진 : 최성열

한 소녀의 실종사건을 둘러싸고 부모와 경찰, 교사와 학생들이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는다. 과연 누가 사라진 소녀를 어둠 속으로 내몰았을까. 즉 죄가 가장 많은 인간은 누구인가. 한국영화아카데미 27기인 김의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 <죄 많은 소녀>는 관객으로 하여금 때로는 피하고 싶었던 우리 인간성의 어떤 속살을 직면하게 만든다. <죄 많은 소녀>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뉴커런츠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작품. 영화를 완성한 뒤 개봉을 앞두고 1년여를 보낸 김의석 감독을 다시 만나서 자신의 첫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인간성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죄 많은 소녀>가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이후 올해 스위스 프리부르영화제에 초청되어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영화보다 받은 상이 더 커서 과연 내가 자격이 되는지를 많이 생각했다. 해외 관객은 한명의 캐릭터에 이입하기보다 관조적인 시각에서 사회 드라마에 초점을 맞춰 보더라. 한국에서와는 다른 칭찬을 받았다. 시각이 다양하구나, 의도한 바를 놓치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한편, 더 넓은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이미 지나가버린 경험, 영원히 오지 않을 경험일 수도 있겠더라.

-지난해 부산에서 개봉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곤 했다. 이제 곧 더 많은 관객과 만나게 될 텐데.

=아직도 무섭긴 하다. 뭔가 충족되지 않아서 이미 완성된 영화의 시나리오를 한번 더 고쳐봤다. 그 정도로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부담스럽긴 하다. 주변에 조언도 많이 구해봤는데 평생 그렇게 사는 거라고 하더라. (웃음)

-영화제 상영본과 개봉 버전이 달라진 점도 있나.

=두컷을 바꿨다. 하나는 처음 타이틀 로고 뜰 때 한컷을 추가했는데 이미 찍어놨으나 쓰지 않았던 어떤 ‘소녀’의 의미가 담긴 컷을 추가했다. 나머지 하나는 색보정실에 가서 몇 프레임을 바꾼 정도라서 언급하기가 애매하다.

-지난 인터뷰(<씨네21> 1128호, ‘한국영화감독 7인’ 특집-<죄 많은 소녀> 김의석 감독 “모두가 패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쓰게 된 영화라고 밝힌 적 있다.

=소중했던 친구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는 과정에서 느꼈던 점들, 담당 경찰들을 쫓아다니면서 했던 경험들에서 인간적인 한계를 느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벽하고 안전하지 않구나, 질서라는 건 그저 우리를 통솔하기 쉽게 만든 것이란 걸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누군가가 소리치다가 죽어가는 모습, 하지만 영희(전여빈)라는 개인을 다루기보다 엄마에게도 그 마음을 계속 투영했다. 두 사람에게 분배해서 개인이 세상에 속아 망가져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

-여고생이 주연인 영화지만 “모두가 겪게 되는 일, 불안하고 불가해하며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들의 심리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힌 적 있다. 아무래도 제목이 지칭하는 대상이 죄 많은 ‘소녀’이기 때문에 첫인상이 고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영어 제목은 성별을 지칭하지 않고 ‘after my death’라 지었다.

=시나리오 쓸 당시 제목의 여러 후보가 있었다. 그러다가 영희에게 힘을 실어서 만들면 사람들이 영희에 이입해서 보다가 서서히 그 파장이 퍼지는 걸 느끼고 자연스레 주변사람에게로 관심이 옮겨갈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런데 영희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심을 받지만 실은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자기를 더 많이 의심하고 있다. <죄 많은 소녀>는 사람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야기다. 처음엔 마녀사냥에 대한 복수극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자신의 죄책감을 벗어나는 방법을 몰라 발버둥치는 이야기다. 꼭 영희만 그렇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 얽힌 모두가 실은 죄책감을 갖고 있고 그것을 느끼면서도 떨쳐내려는 이율배반적인 감정, 똑같은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촬영장에서 경찰 역할의 배우들에게도 한 말이다. “일만 하시면 안 됩니다. 억울함과 복수심에 도취된 듯 보이면 안 됩니다.” 그게 엔지와 오케이 컷의 기준이었다. 영어 제목은, 해외 배급사에 ‘after death’라고 써서 보냈는데 누군가가 ‘my’를 덧붙이면 좋겠다고 제안을 줘서 ‘아, 이 영화를 다 알고 있구나’ 싶어서 그렇게 정했다.

-배우 오디션을 볼 때 역할을 특정해서 만나지 않고 배우들과 대화하면서 그 사람의 성격과 경험을 고려해 어울리는 역할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배우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이 지닌 성격과 경험이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걸 마주할 때가 있었다. 감독의 특별한 디렉션이 없어도 배우들이 스스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캐스팅에 최대한 반영했다. 교사 역할의 경우에도 악역으로 보이지 않길 바랐다. 서영화 배우는 이전부터 내가 워낙 팬이었다. 그 분과의 대화는 영화와 같은 과거를 이겨낸 어른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이 영화가 시나리오보다 더 진짜 같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뮤지션 선우정아와 함께 작업한 계기도 궁금하다.

=내 첫 번째 단편 <죄를 묻다>(2008)의 주인공이자 음악감독이었다. 그녀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뭔가 엄청나게 분출하고 있는데 분출되지 않아 안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시기의 여고생들 감정같았다. 그녀가 음악을 통해 감정을 폭발시킬 때의 카타르시스를 영화음악에 담고 싶었다. 처음에는 원래 그녀가 선보이는 음악 스타일로 영화음악도 부탁을 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좀더 모호하고 장르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영화가 너무 관조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사회 드라마처럼 보이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사실 첫 영화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가진 무기를 다 써보자는 심정으로 음악도 꽉 채웠다. 베이스가 이렇게까지 몰아치는 한국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느끼게 하고 싶어 믹싱도 꽤 오래 직접 만졌다.

-<죄 많은 소녀>로 한국영화아카데미 10기 장편 제작연구과정에 참여하기 전에 만들었던 단편영화 작업 연도를 비교해보니 한동안 활동이 뜸 했더라.

=어느 날 단편영화를 만들던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영화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구나, 영화를 찍으려면 세상에 대해 뚜렷이 할 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흉내내는 데 급급한 나 자신에 대해 반성했고 <곡성>(2016) 연출부를 하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됐다. <죄 많은 소녀>의 시나리오는 <곡성> 들어가기 전부터 쓰고 있었는데,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나홍진 감독의 현장에 다녀온 뒤 더욱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제를 지나 관객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될 현재 심경이 어떤가.

=두려움이 크다. 적당히 욕먹었으면 좋겠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극중 영희는 죄가 없기 때문에 억울한 것이 아니다. 여빈씨의 연기가 좋았던 이유이기도 한데, 영희는 죄책감이 있음에도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치졸한 방식까지 써보려 하는 인물이다. 다른 인물들 또한 그런 인간성을 지닌 인물들로 묘사했다.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봐주신 어느 관객의 리뷰를 읽고 노파심이 들어 한번 더 강조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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