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형숙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제가 소통과 담론 형성의 장이 되도록”
2018-09-13
글 : 이주현 | 사진 : 최성열 |
홍형숙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제가 소통과 담론 형성의 장이 되도록”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002), <경계도시2>(2009)의 홍형숙 감독이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이하 DMZ영화제)의 신임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힘든 시기 중책을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자리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집행위원장이 되고 난 이후 받은 축하인사는 대개 ‘중책’을 맡은 그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올해 2월 조재현 전 집행위원장이 불명예 사퇴한 이후 DMZ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자리는 4개월가량 공석이었다. 그 기간 홍형숙 집행위원장은 ‘DMZ국제다큐영화제 정상화를 촉구하는 영화인 모임’의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이제는 외부인이 아닌 내부인으로 영화제를 이끌게 된 그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청취해 영화, 영화인, 관객이 중심에 놓인 축제의 장을 만들려 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려 깊은 시선,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해온 홍형숙 감독이 집행위원장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지난 8월 6일 집행위원장에 임명됐다. 영화제 업무를 파악하고 구상을 실현하기엔 시간이 짧았을 텐데, 어떤 사안들에 집중하며 한달을 보냈나.



=우선 DMZ영화제 9년의 역사와 조직의 면면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문제를 바로잡을 것인가. 그 답을 구하기 위해 DMZ영화제 미래비전TF를 구성했다. 또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10회 영화제를 맡게 된 만큼 관객에게 어떻게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세부 업무에 신경 썼다.



-여성감독이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큐멘터리 진영의 대표성뿐만 아니라 여성 영화인으로서의 대표성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이 집행위원장을 맡았다는 게 주목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것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님에도 아직까지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성 집행위원장으로서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있다. 여성으로서의 장점이 어떤 식으로 발휘될 수 있을 지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의 중요한 숙제 중 하나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닐 텐데, 그동안 기관의 장으로서 행정 업무를 담당한 적이 없다. 감독으로 현장에 남고 싶었기 때문인가.



=지금까지는 그랬다. 지금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행정 업무를 맡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독립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을 위한 기반과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의 좋은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했고, 창구가 필요했다. 의외로 감독과 집행위원장은 닮은 지점이 많더라. 다큐멘터리 감독은 자기 세계가 분명한, 사유와 통찰이 깊은 철학자여야 한다. 또한 스탭들과 협업을 잘해나가야 하는 유능한 조직가이자 행정가로서의 역할도 요구받는다. 그것은 집행위원장도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경험한 것들을 영화제 업무에도 잘 반영하려 한다.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선 경기도지사인 이재명 조직위원장 및 경기도와의 협업이 중요한데, 조직위원회와는 손발을 잘 맞춰가고 있나.



=이재명 조직위원장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영화제에서도 자체적으로 DMZ영화제 미래비전TF를 구성했는데, 경기도의회에서도 DMZ영화제 발전방안TF를 따로 만들었다. 영화제 차원의 TF와 도 차원의 TF가 ‘따로 또 같이’ 진행되고 있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와 대화하는 상대가 영화에 대한 어떤 이해와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인데, 그런 점에서 출발이 좋은 것 같다. 참고로 미래비전TF를 통해 영화제의 조직 체계 및 정책 재정비를 해나갈 것이고, 영화제가 어떻게 담론을 생산하고 플랫폼 기능을 강화할지 방법을 강구할 계획이다. 영화제는 영화를 중심에 놓고 영화인과 관객이 만나는 축제의 장이다. 뿐만 아니라 소통의 장이자 담론 형성의 장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영화제가 어떤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지, DMZ영화제에 가장 잘 맞는 옷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에겐 어떻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영화제가 되고자 하나.



=DMZ영화제의 제작지원금 3억3천만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런데 제작 지원이 전부면 곤란하다. 프로젝트가 제작 완료된 이후의 과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영화가 거칠 수 있는 플랫폼은 한정적이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영되거나, 극장 개봉 또는 공동체 상영을 하거나 일정 기간 웹상에 공개하는 방식 정도가 전부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도 소수지만 개봉까지 하는 영화는 더 소수다. 프로덕션이 완료된 좋은 영화의 경우 국내외 다양한 플랫폼과 채널에 어떻게 소개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국내외 플랫폼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킹 작업에 주력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들에게 ‘다음’이 있도록, 창작자와 함께 그다음을 상상하는 작업을 하는 게 영화제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DMZ영화제의 비전과 관련해선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나.



=비전의 세부 내용은 포럼을 통해 정리해나갈 텐데, 우선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할 것이다. 포럼의 2부가 ‘집행위원장과 부집행위원장이 듣는다’이다. ‘말한다’가 아니라 ‘듣는다’다. 일단 들어야 한다. (웃음) 기본적으로는 영화제의 본질에 충실한 영화제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DMZ영화제의 중요 구성원인 다큐멘터리 영화인, 관객뿐 아니라 1380만명의 경기도민이 모두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는 영화제로 자리 잡길 바란다. 더불어 ‘DMZ’라는 단어를 새롭게 해석할 때가 됐다고 본다. 최근 뉴스에서도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9월이 왔다’고 하던데, 변화하는 남북 관계에 따라 DMZ라는 말의 성격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얘기한 것처럼 남북 관계가 변화하는 시기에 10회 영화제가 열린다. 여러 영화제들이 북한영화 상영과 남북영화 교류 사업을 추진 중이다. DMZ영화제 또한 남북영화 교류 사업에 대한 구상이 있을 텐데.



=여러 가지 구상이 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공통의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남북 청소년 영상 캠프도 추진하고 싶고, 남북 감독들의 공동 작업이나 남북영화 교환 상영 등도 구상하고 있다. 이 모든 구상이 실현되려면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제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는 얘기다. 사실상 중요한 열쇠를 쥔 분들은 남북정상회담 혹은 북미정상회담에 있다. (웃음) 유관 기관의 관계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논의한다면 우리의 구상이 실현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추천작 혹은 추천 프로그램이 있다면.



=추천 프로그램은 ‘내 생애 최고의 다큐 10’이다. 10명의 명사들이 추천하는 다큐멘터리 10편을 소개하는 섹션인데, 10분의 명사 중 7분이 영화제에 참석해 관객을 직접 만난다. 스탭들의 훌륭한 기획력, 추진력, 네트워킹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추천작으로는 개막작인 지혜원 감독의 <안녕, 미누>를 꼽고 싶다. 18년간 한국에 살았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미누가 불법체류자로 단속돼 강제 추방당한 이야기다. 중요한 이슈를 다루는 영화고,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워낙 매력적이다. 그의 이야기 자체가 가진 울림이 크다. 우리 사회의 현안 중의 현안인 ‘공존’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작품으로서 손색없는 개막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