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 도중 상대 여배우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우 조덕제의 유죄가 확정됐다. 지난 9월 13일, 대법원은 무고죄 및 강제 추행죄로 2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4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을 선고받은 피고 조덕제의 상고를 기각해 유죄 판결을 확정지었다. “신체의 일부 노출과 성행위가 표현되는 영화 촬영 과정이라 하더라도 연기를 하는 행위와 연기를 빌미로 강제추행 등의 위법행위를 하는 것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고, 연기나 촬영 중에도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충분히 보호되어야 한다.” 이처럼 항소심 판결문은 감독의 지시에 따른 가상의 연기 또한 성폭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고, 대법원은 그 내용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사건의 피해자인 배우 반민정의 변호를 맡은 이학주 변호사(법무법인 참진)는 대법원 판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판결은 그동안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졌던 문화예술계 내 잦은 성폭력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그 기준점을 제시하는 중요한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앞서 영화 <사랑은 없다>(2015) 촬영 중 발생한 조덕제의 강제추행 및 무고에 대한 사건에서 1심은 피고인 조덕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가 상대 배우와 합의하지 않은 채 신체 부위를 만지고 속옷을 찢은 것은 맞지만 연기의 구체적 내용을 여배우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감독의 책임이라며, 감독의 지시를 따랐을 뿐인 피고에겐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1심의 판결이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조덕제가 감독의 지시에 충실히 따랐다 하더라도, 연기 내용에 관한 사전 승낙 없이 피해자에게 상당한 성적 수치심을 안긴 행위는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민사소송 제기와 무고로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켰고, 그럼에도 범행을 부인하고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어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영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희생을 강요했던 영화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또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상대 배우를 배려하고 소통했어야 한다는 상식적인 판단을 확인해주었다”며 “이를 계기로 영화 현장의 변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상식적인 판단이란 다시 말해 영화 작업의 특수성 및 연기의 즉흥성을 감안하더라도, 상호 합의 없이 이루어지는 폭력적 연기나 상대에게 성적 모욕감을 주는 연기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안병호 위원장은 말했다. “특히 저예산영화의 경우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합의 없이 연기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베드신이나 강간 장면의 경우 액션과 리액션에 대한 철저한 합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촬영 여건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소통과 배려의 과정이 쉽게 간과되어왔다. 하지만 판결문은 영화를 찍는 행위가 사회의 기본 법규를 벗어나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연기’와 ‘연기를 빌미로 한 강제추행’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영화 현장에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그 어떤 현장에서도 사람보다 영화가 먼저일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