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으로 2007년 외국어영화상 부문 오스카를 수상한 바 있는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신작 <작가 미상>(Werk ohne Autor)은 올해 외국어 부문 오스카 후보에 다시금 거론되며 독일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상영시간이 180분이 넘는 <작가 미상>은 현존하는 독일의 유명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생애를 다룬다. 1932년생 동독 드레스덴 출신 리히터는 드레스덴 미술대학에서 당시 사회주의 화풍을 배우지만, 1961년 독일 장벽이 세워지기 전에 서독으로 도주한다. 그 후 리히터는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수학한 후 추상과 구상, 사진과 회화를 넘나드는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영화는 리히터의 일대기를 다루면서도 실제 인물의 이름 사용은 피했다. 그래서 주인공 이름은 쿠르트 바네르트(톰 실링)다. 이 작품은 그가 예술가로 성장하는 일대기를 그리면서 나치 시대, 분단 시대를 아우르며 독일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대하 드라마이기도 하다.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은 주인공의 가족사를 파헤치며 이런 역사와 개인적 체험이 리히터의 작품에 어떻게 스며들었는가를 탐구해나간다. 주인공 쿠르트가 나치 출신 의사인 장인(제바스티안 코흐)과 각을 세우며 생기는 갈등 관계가 스토리를 주도하지만,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한 1960년대 독일미술계의 단면도 엿볼 수 있다. 60년대 당시 뒤셀도르프 미대에서 교수직에 있었던 요셉 보이스도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한편 <작가 미상>은 주인공의 이모가 나치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희생되는 장면에 대한 묘사로 비판받기도 했다. 끔찍한 학살 장면에서 클래식 음악이 흐르도록 했기 때문이다.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트라우마의 납을 예술의 금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연금술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