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분기별로 꼭 등장하는 영화, 바로 형사영화다. 2018년 가을엔 <암수살인>이 관객을 찾았다. 2012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소개된 실화를 소재로 한 <암수살인>은 자신의 범죄를 고백한 범죄자와 그의 암수 범죄를 끈덕지게 쫓는 형사를 조명한 영화다. 올해 극장가를 가장 성실하게 드나든 주지훈이 범죄자 강태오를, 러닝타임 내내 단서를 찾느라 바쁜 김형민 형사는 김윤석이 연기했다.
김형민 형사는 김윤석이 연기한 다섯 번째 형사 캐릭터다. 김윤석은 그간 충무로에서 다양한 유형의 형사를 연기해왔다. 형사라는 좁은 범위 안에 모인 캐릭터들이지만 각각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처럼 충무로에서 유독 형사 캐릭터와 연이 자주 닿았던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아봤다. 이른 바 형사 전문 배우들. 그들이 출연한 영화와 필모그래피 속 대표 형사 캐릭터를 소개한다.
형사 캐릭터를 4번 연기한 배우
김상경
출연작 <살인의 추억> <몽타주> <살인의뢰> <사라진 밤>
대표작 <살인의 추억>
<살인의 추억>에서 김상경은 서울에서 파견 온 형사 서태윤을 연기한다. 이성을 중시하던 서태윤 형사는 거듭된 수사 실패 끝에 광기에 휩싸여 제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김상경은 내면 변화가 극심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다.
전혜진
출연작 <더 테러 라이브> <불한당> <희생부활자> <뺑반>
대표작 <불한당>
충무로의 여성 형사.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전혜진이다. 비록 형사는 아니지만 같은 경찰인 경찰청 테러대응센터 팀장을 연기한 <더 테러 라이브>를 시작으로 이후 가지각색 형사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녀의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는 <불한당> 속 천인숙 팀장이다. 작전을 위해서라면 동료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냉혈한 모습은 관객의 뇌리에 남기에 충분했다.
김명민
출연작 <거울 속으로> <무방비 도시>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브이아이피>
대표작 <브이아이피>
김명민이 연기한 <브이아이피>의 채이도는 어떤 상황에서든 범인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한 형사다. 북에서 온 VIP이자 살인마인 김광일(이종석)이 제 권력을 이용해 수사망을 피해나가도, 이도는 끝까지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 <베토벤 바이러스>, <내 사랑 내 곁에>, <파괴된 사나이> 등, 김명민은 주로 자신이 연기하는 분야의 극단에 선 캐릭터를 많이 연기해왔다. <브이아이피>의 채이도는 형사 캐릭터의 극단에 선 인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채이도는 김명민이 전작에서 선보여왔던 지독한 연기가 잘 녹아든 캐릭터다.
설경구
출연작 <공공의 적> 시리즈 <해결사> <감시자들> <루시드 드림>
대표작 <공공의 적> 시리즈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그해 최고의 신인으로 떠오른 설경구는 <공공의 적> 속 강철중을 연기하며 충무로의 스타로 거듭났다. 정의나 사명감은 찾아볼 수 없지만 진짜 악당 앞에선 물불 안 가리는 괴팍함. 강철중은 여태까지도 가장 독보적인 개성을 지녔다 손꼽히는 형사 캐릭터다.
박중훈
출연작 <투캅스> 시리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강적> <체포왕>
대표작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진짜 레전드는 여기 있다. 박중훈은 <투캅스> 시리즈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모두 출연한 배우다. 형사 코미디 영화의 시작을 연 <투캅스>, 상업영화를 넘어 미학적 완성도까지 놓치지 않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충무로 형사 영화 계보의 이정표가 된 작품들이다. 두 작품의 우열은 쉽게 가릴 수 없다.
형사 캐릭터를 5번 연기한 배우
황정민
출연작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사생결단> <부당거래> <그림자 살인> <베테랑>
대표작 <베테랑>
마초 형, 부정부패 형, 의로움 형… 황정민은 선명한 개성을 지닌 형사 캐릭터를 여럿 탄생시킨 배우다. 그중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는 단연 <베테랑> 속 서도철이다. 한번 꽂힌 것은 무조건 끝을 보는 행동파. 갑질의 끝판왕 조태오(유아인)를 결국 꺾고야 마는 서도철의 끈기와 집념은 관객에게 청량감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조진웅
출연작 <강적> <용의자X> <끝까지 간다> <사냥> <독전> (+ 드라마 <시그널>)
대표작 <독전>
조진웅은 신인 시절 유독 조폭 역을 많이 맡았다. 인지도가 쌓이면서부턴 형사 역 역시 그에 비례할 만큼 많이 연기했다. 형사로서의 그가 가장 돋보였던 영화는 단연 <독전>이다. 그가 연기한 원호는 집념과 지독함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다. 러닝타임 내내 누구를 믿고 의심해야 하는지 갈등하던 그의 내면 연기가 빛난 작품. 물론, 드라마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도 빼놓을 수 없다.
마동석
출연작 <국가대표> <부당거래> <공정사회> <악의 연대기> <범죄도시>
대표작 <범죄도시>
<이웃사람> 등에서 압도적인 피지컬과 눈빛만으로 사람을 제압하던 조폭 마동석은 잊어주시길. 마동석은 주로 누군가의 동료나 후배로 형사 영화에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곤 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만난 인생작이 있었으니 바로 <범죄도시>. 그가 연기한 마석도는 악역이 불쌍할 만큼의 슈퍼 파워를 자랑하는 형사다. 어떤 악역도 가뿐히 제압할 수 있을법한 그의 슈퍼 히어로스러운 매력이 폭발한 작품.
김윤석
출연작 <범죄의 재구성>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극비수사> <암수살인>
대표작 <암수살인>
김윤석 역시 충무로의 형사 전문 배우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형사를 연기해왔다. 성실하게 단서를 모으고 범인을 어르고 달래며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잡아가는 <암수살인>의 형사 형민은 반 이상을 액션 신에 기대는 타 형사들과 다른 길을 걷는 캐릭터다. 묵묵하게 단서를 좇는 과정만으로도 단 한 번의 흐트러짐 없이 극을 이끌어가는 김윤석의 연기력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던 작품. 김윤석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추격자>에서는 전직 형사 역할이었다.
형사 캐릭터를 6번 연기한 배우
성동일
출연작 <아이들...> <특수본> <비밀> <사랑하기 때문에> <반드시 잡는다> <탐정> 시리즈
대표작 <탐정> 시리즈
다작 배우 성동일이 빠지면 서운하다. 그가 형사로 등장한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가장 돋보인 작품은 <탐정> 시리즈다. 형사 노태수는 그간 다양한 작품 속에서 성동일이 만들어왔던 모든 캐릭터의 성향이 고루 녹아든 인물이다. 촌철살인 코믹 연기와 더불어 무심한 듯 상대방을 챙겨주는 츤데레스러운 매력, 범인으로 의심 가는 이의 빈틈을 치고 들어서는 날선 연기, 모두의 공감을 부를법한 가장의 모습까지. 큰 역할, 작은 역할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해온 그의 내공이 빛을 발했던 작품.
형사 캐릭터를 8번 이상 연기한 배우
김민재
출연작 <시> <부당거래> <특수본> <연가시> <26년> <도희야> <우는 남자> <베테랑> (+ 드라마 <리셋>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 <추리의 여왕> 시리즈 등)
그야말로 ‘전문’ 배우다. 2007년 스크린 데뷔 이후 매해 5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해온 김민재는 조·단역 시절부터 주로 형사나 경찰 역할을 맡아왔다. 기억나지 않는다면 다음 작품들을 되짚어보자. <부당거래> 속 최철기(황정민)의 곁을 지켰던 후배 형사가 바로 그였고, <연가시> 속 재필(김동완)의 위에서 사건을 관할하던 형사가 바로 그였으며 <베테랑> 속 서도철(황정민)의 수사를 시시때때로 방해하며 얄미운 짓만 골라 하던 사건 관할 형사가 바로 그였다. 김민재가 형사/경찰을 연기한 영화만 8편, 드라마까지 합치면 10편이 거뜬히 넘는다. 선과 악을 오가는 건 물론 각 캐릭터마다의 디테일을 살려 짧은 분량으로도 존재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그의 다음 형사 캐릭터를 기대할수밖에 없는 이유다.
▶씨네21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