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셨나요?” 행사장에서 만난 구정아 교수는 기자의 반응부터 물었다. 부산아시아영화학교(AFiS) 국제 영화비즈니스 아카데미 과정의 학생들이 기획·개발한 작품을 선보이는 ‘AFiS 프로젝트 피칭’은 LINK OF CINE-ASIA의 대표적인 행사이자, 학생들에겐 부산에서 보낸 8개월간의 여정이 종착역에 다다랐다는 걸 알리는 이벤트다. 이들의 기획·개발 워크숍을 총괄 담당한 구정아 교수는 피칭이 진행되는 내내 각국의 영화 전문가들 앞에 선 학생들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그는 <리틀 포레스트>(2018), <여배우는 오늘도>(2017), <더 테이블>(2016) 등의 작품에 참여하며 충무로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온 현업 프로듀서다. 그가 AFiS에 합류하게 된 건 아시아 신진 영화인들의 현재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체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AFiS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지난해 기획·개발 워크숍에 게스트 멘토로 참여했다. 한 학기에 한번 정도 와서 내가 담당한 학생들의 작품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 돌아가는 식이었는데, AFiS로부터 올해 기획·개발 워크숍을 총괄 진행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받았다. 평소 한국에서 영화를 하다보면 산업적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나라, 다른 세대의 프로듀서는 요즘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있을지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AFiS에 합류하게 됐다.
-피칭 막간마다 학생들을 격려하는 멘트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어머니의 심정인 건 아니다. 물론 오랜 시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학생들과 정이 많이 쌓였지만, 프로듀서와 프로듀서 사이에는 멘토링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AFiS에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이번 워크숍으로 알게 된 학생들과 기회가 되면 영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 교육생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AFiS에서의 경험을 통해 발전적인 관계를 구축하길 바랄 것이고.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말이 있다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들이 누군지 판단하고, 많은 욕심을 부리지 말고, 일단 영화를 찍으라는 것. 제작 기간이 늘어지면 어떤 이야기는 시의성을 잃어버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힘만 빠지게 된다. 이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얘기인데, 안전한 기획이란 없다. 그러니 주변에서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할 수 있는 걸 지금 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올해의 피칭작을 살펴보니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늘어나고 로컬 프로젝트로서의 특성이 강화된 것 같다.
=피칭작의 대다수가 기본적으로는 독립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학생들 자신이 발딛고 있는 지역으로부터 발견한 소셜 이슈들로부터 출발하되, 그것을 굉장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나 관점과 결부해 드라마화하는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올해의 피칭작을 돌아보면 재미있는 것이 국가를 대표하는 이미지와 또 다른 지역적 특색이었다. 인도네시아나 타이 등은 한국과 달리 지역마다 다양한 언어와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떤 지역을 주목하는지에 따라 굉장히 색다른 영화가 나온다. 그런 요소들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다. 또 올해 참가자 중에는 여성 기획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그들에게 익숙한 여성 캐릭터의 삶에 주목한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듯하다.
-AFiS 졸업식을 앞둔 소감은.
=졸업식이 열리는 10월 19일이면 모든 일정이 끝난다. 지난 8개월간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아시아 각국 영화인들의 글로벌 마인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해외에 나가 감독, 프로듀서, 배우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프로젝트를 개발할 수 있을 정도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춘 인력들이 아시아에 굉장히 많더라. 많은 아시아인들이 한국 영화산업을 부러워하지만 문화 개방도는 그들에 비해 우리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AFiS에서의 경험이 앞으로 영화를 하는 데 많은 자극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