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2018(이하 BIAF2018)이 올해로 20회를 맞이했다. 만화의 도시 부천의 정체성을 꿋꿋이 지켜내던 영화제가 어느새 스무해를 맞이하며 2017년 12월 21일자로 아카데미 공식 지정 영화제로 선정되는 기쁨도 누리게 됐다. 앞으로 BIAF2018은 그동안 여러 차례 심사위원으로 초청했던 아카데미 회원 감독들은 물론,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협회(이하 아카데미협회)의 엄격한 자격 기준에 걸맞은 양질의 전세계 애니메이션을 국내 관객에게 소개하는 장으로 거듭나게 됐다.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부천 일대에서 열리는 BIAF2018의 상영작을 미리 살펴보고 놓치지 말아야 할 부대행사도 꼼꼼하게 소개한다.
올해 BIAF2018의 가장 큰 변화라면 앞서 언급한 대로 아카데미 영화제를 주관하는 아카데미협회로부터 공식 지정 국제영화제로 승인받은 점이다. 아카데미협회의 지정에 따라 영화제에 출품한 단편 중 대상 수상작은 아카데미 시상식 예비후보로 자동 등록된다. 앞으로 영화제의 작품 선정위원회도 아카데미 기준에 맞춰 구성되며 올해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에는 여러 작품으로 아카데미와 인연을 맺은 감독들이 포진해 있다.
누군가의 마음속을 향하여
또 하나의 변화를 언급하자면, 올해 영화제가 2017년에 단편 사전 제작 지원을 시작함과 동시에 2018년부터 한국 단편경쟁부문을 신설해 모두 10편이 선정됐다는 점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세계시장에 나아가 우뚝 설 수 있도록 기반을 닦고자 하는 BIAF2018의 노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올해 BIAF2018은 장편과 단편, 학생, TV&커미션드, 올해 신설한 한국 단편, 온라인 부문으로 각 섹션을 구분해 진행한다.
BIAF를 자주 찾았던 관객이라면 영화제의 얼굴과도 같은 BIAF2018의 공식 포스터의 캐릭터 이미지가 어딘지 모르게 낯익다고 느꼈을 것 같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2016)로 2017년 일본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작품상,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상과 BIAF2017에서 장편 대상을 수상한 가타부치 스나오 감독이 올해 BIAF2018의 성공적인 개최를 염원하며 직접 그려줬다고. 자신의 영화 속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인 ‘토끼물결’을 의인화한 그림으로,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이자면 “스크린을 뛰쳐나와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향하는 모습”이란다. 토끼물결이 곧 영화란 이야기일까. 아무튼 BIAF2018에는 굳이 아카데미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된 전세계 애니메이션이 잔뜩 모였다.
시대상과 제작 환경, 플랫폼의 변화
개막작 <어나더 데이 오브 라이프>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애니메이션으로 종군 기자 리처드 카푸스친스키의 동명 자서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 작품이 특별한 점은 애니메이션 감독 다미안 네노프와 다큐멘터리 감독 라울 데 라 푸엔테가 협업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것. 앙골라 내전이 일어났던 1975년, 3개월의 여정 동안 전장을 누비는 카푸스친스키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는 전쟁에 관한 사람들의 증언과 그들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상을 실사 기반의 영화가 담아내는 카메라워크 등을 통해 생생한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기술적으로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잡아내는 슈퍼 로토스코프에 3D 모션 캡처를 활용해 전장의 속도감 넘치는 현장감을 잡아낸 것이 특징이다. 올해 9편의 경쟁부문 진출작 가운데, 노동자들의 파업을 강제 진압하는 경찰에 맞서는 사람들의 저항정신을 다룬 올리비에 코쉬 감독의 <한 남자가 죽었다>와 캄보디아 대학살이 일어났던 크메르 정권하에서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을 되찾기 위한 이야기를 다룬 드니 도 감독의 <푸난> 등은 개막작과 함께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을 야기시키는 메시지를 강하게 앞세운 작품이다. 세계 각지에서 폭력과 권력에 맞서는 어떤 경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작화와 캐릭터 디자인이라 여기는 관객이라면 유명한 동명 만화책과 TV시리즈의 인기를 등에 업고 극장판으로 재탄생한 고사카 기타로 감독의 <여주인님은 초등학생>, 스튜디오 지브리와 매드하우스 등 일본의 메이저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줄곧 협업해왔던 한국의 디알무비가 우메하라 다카히로 감독과 협업한 <숲에 숨은 달>을 함께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여주인님은 초등학생>은 IP가 탄탄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이 돋보이는 한 소녀의 씩씩한 성장 스토리이며, 한국의 색채와 디자인 요소를 SF 장르 속 디스토피아와 결합하는 시도를 한 <숲에 숨은 달>은 별똥별 사냥꾼 장구와 소녀 나빌레라의 모험을 그린다. 올해 국제경쟁부문에는 한국영화로는 <숲에 숨은 달>을 비롯해 BIAF 학생부문 대상을 수상한 여은아 감독의 <장미여관> 두 작품이 진출했다. 청소년의 성매매 실태라는 무거운 소재를 정면 돌파하는 <장미여관>도 관객의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전세계 영화제의 최대 이슈인 넷플릭스 영화를 올해 BIAF2018에서도 만날 수 있다. 역시 국제경쟁 장편부문에 초청된 <우리의 계절은>은 <너의 이름은.>을 제작한 코믹스 웨이브의 신작으로 중국과 합작해 만든 신작. <너의 이름은.>의 다케우치 요시타카 CG 감독이 연출 데뷔 무대를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3편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형태로 베이징과 광저우, 상하이에서 각각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열정을 소재로 담았다. 제작사 코믹스 웨이브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실사에 가까운 배경 작화 퀄리티가 이 영화에서도 여지없이 활용된다. <우리의 계절은>은 넷플릭스에 이미 공개됐지만 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출품하기에 아깝지 않을 완성도를 지녔다. 영화제와 넷플릭스가 앞으로 풀어나갈 여러 가지 숙제에 대한 BIAF2018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작품인 셈이다.
거장과 문학을 품은 애니메이션
요절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의 추모를 기리는 특별전과 토크 클래스는 올해 BIAF2018에서 꼭 챙겨야 할 행사 중 하나다. 곤 사토시 감독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퍼펙트 블루>와 <천년여우>가 각각 리마스터와 4K 버전으로 상영되며, 관련 스페셜 토크 ‘곤 사토시: 몽중인’도 마련된다. 제작사 매드하우스의 설립자로서 곤 사토시 감독과 오래 작업했던 마루야마 마사오 프로듀서와 <천년여우> <동경대부>를 제작한 마키 다로 프로듀서가 곤 사토시의 작품 세계를 조명할 예정이다. 사실 두 사람은 곤 사토시 감독의 미완성작인 <꿈꾸는 기계>를 함께 진행했던 인연이 있다. 이번 토크에서는 그의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꿈꾸는 기계>의 제작에 대한 염원을 담아 기획된 만큼, 그와 관련한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특별전으로는 문학작품과 애니메이션의 만남을 꾀하는 ‘문학+애니메이션’ 섹션이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쓴 다섯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엑스트라오디너리 테일>에는 크리스토퍼 리, 로저 코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등이 목소리 출연한다. <알 수 없는 여인에게>란 작품은 로베르 데스노스의 시를 소재로, 프랑스 애니메이션 학교의 젊은 애니메이터들이 만든 13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기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담당하는 가수로도 활동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성우 호리에 유이가 진행하는 스페셜 토크 <호리에 유이=미스 모노크롬>에 관심을 기울일 관객도 많을 것 같다. ‘순수의 귀환-애니메이션의 감성’을 주제로 인문,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 애니메이션만이 가지는 어떤 감성이 현대인의 삶을 담아내는지를 연구 발표하는 자리인 아시아 애니메이션 포럼도 진행된다.
그 밖에 가족 단위 관객을 위한 부대행사 ‘애니투게더’도 마련되어 있다. 지난해 상영작이었던 <빅 배드 폭스>가 부천시청 야외잔디광장에서 상영되며, 올해 깜짝 놀랄 인기를 얻었던 극장판 <신비아파트: 금빛 도깨비와 비밀의 동굴>와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띠띠뽀 띠띠뽀> 등 6편도 상영한다.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마리이야기> <소중한 날의 꿈 감독판> 등은 무료로 상영한다.
아카데미협회와의 협업은 물론 올해 BIAF2018이 초청작과 부대행사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을 키우는 기반이 됨과 동시에 애니메이션이 단순히 소수의 팬만 거느리는 서브컬처의 요소로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꿈의 매개체라는 것. 가장 기본에 충실한 영화제 본연의 모습을 올해 부천에서 다시 한번 기대해봐도 좋겠다.
디즈니의 뿌리를 찾아서
미키 마우스가 탄생한 날짜는? 바로 1928년 11월 18일이다. BIAF2018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기리는 것은 물론 미키 마우스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했다. 디즈니 애니메이터들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영화제가 애니메이션 명가를 기리는 방식인 것. 우선 디즈니 최고의 핸드 드로잉 애니메이터로 꼽히는 에릭 골드버그 감독이 내한해 디즈니 마스터클래스를 연다. 에릭 골드버그 감독은 1990년 디즈니 입사 후 <포카혼타스> <환타지아 2000>을 연출하고 지금까지 <공주와 개구리> <헤라클레스> <주먹왕 랄프> <모아나> 등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는 인물. 그가 수잔 매킨지 골드버그 미술감독과 함께 <환타지아 2000>의 제작과정을 소개한다. 디즈니 본사는 워낙 철저한 보안을 거치는 조직이기에 아이디어 노출을 이유로 애니메이터들의 외부 활동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번 행사에서는 디즈니의 재능 있는 애니메이터들의 여러 노하우가 소개될 예정이다. 마스터클래스는 두개의 파트로 진행되는데 파트2 행사에서는 ‘미키 마우스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에릭 골드버그 감독이 직접 미키 마우스의 역사와 미키 마우스의 핸드 드로잉 과정을 선보일 예정이다. BIAF2018이 준비한 디즈니행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에릭 골드버그 감독의 <환타지아 2000> 메인 테마 7곡을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을 수 있는 연주회도 함께 연다. <디즈니 환타지아 2000 클래식> 공연은 10월 20일(토) 오후 5시부터 부천시청 2층 어울마당에서 열리며 디즈니 마스터클래스는 10월 21일(일) 오후 5시에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다.